익명의 학자가 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대전』
Ignoti Auctoris Summa totius Logicae Aristotelis
유대칠 옮김
(토마스 철학 학교 틀 밖 연구소)
[Corpus Thomisticum website로부터 라틴어 원문을 가져왔으며, 한국어 번역은 토마스 철학 학교 유대칠이 직접했다.].
PROOEMIUM |
서론 |
Omnes homines natura scire desiderant. Scire autem est effectus demonstrationis; est enim demonstratio syllogismus apodicon, idest faciens scire. Ad hoc autem quod tale desiderium naturale compleatur in homine, necessaria est demonstratio: non enim potest esse effectus, in quantum huiusmodi, sine causa. |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알기를 원한다. 또한 ‘앎이란 행위’(scire)는 논증의 결과다. 왜냐하면 논증은 논증적 삼단논법이며, 이는 앎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자연적 열망이 인간 가운데 완성되기 위해 논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원인 없이 결과가 있는 한에서 그것이 결과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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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quia, ut dictum est, demonstratio est syllogismus; ad cognoscendum eam, necesse est praecognoscere syllogismum. Syllogismus autem cum sit quoddam totum aggregatum ex partibus, cognosci non poterit partibus ignoratis. Ad cognoscendum ergo syllogismum oportet primo cognoscere partes eius. Partium autem syllogismi quaedam sunt propinquae, ut propositiones et conclusio quae omnes enuntiationes dicuntur: quaedam vero sunt remotae, ut termini qui sunt partes enuntiationis; ideo ista oportet tractare, scilicet de enuntiatione et de terminis, antequam de syllogismo tractetur. |
그리고 앞서 말 된 바와 같이 논증은 삼단논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삼단논법에 대한 ‘선 지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전체가 부분으로 구성된 집합일 때, 삼단논법은 부분에 대한 무지에서 알려질 수 없다. 그러므로 삼단논법을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것의 부분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삼단논법의 부분은 다음과 것과 유사하다. 명제들과 결론이며, 이것들은 모든 진술들이라 불린다. 참으로 어떤 것은 다른 것이 제거된 것이다. 마치 진술들의 부분이 명사들인 것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술과 명사들의 그것을 삼단논법을 다루기 다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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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libet autem terminus, qui sine complexione dicitur, significat substantiam, aut quantitatem, aut qualitatem, aut aliquid aliorum praedicamentorum; et ideo antequam de enuntiatione tractetur, oportet determinare de praedicamentis. |
그러나 어떤 명사는 복합 없이 있으며, 이는 실체를 의미하거나 양 혹은 성질 혹은 다른 범주들 가운데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진술을 다루기 전에 우리는 범주를 정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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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quia praedicamentum, ut hic sumitur, nihil aliud est quam ordinatio praedicabilium in ordine praedicamentali; ideo ad cognoscendum praedicamenta, oportet praecognoscere praedicabilia. |
그리고 여기에서 이해된 것과 같이 범주는 범주적 배열 가운데 술어의 배열함 그 이외 어떤 것이 아니다. 그렇게 범주를 알기 위해 술어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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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hoc ergo ut perveniamus ad ipsum scire ab omnibus naturaliter desideratum, iste debet esse ordo quem cum auxilio Dei tenebimus: ut primo tractetur de quinque praedicabilibus: secundo, de decem praedicamentis: tertio, de enuntiatione: quarto, de syllogismo simpliciter: quinto, de syllogismo applicato ad materiam demonstrativam, seu de demonstratione. De syllogismo vero applicato ad materiam probabilem, qui pertinet ad partem logicae quae dialectica dicitur, de quo tractatur in libro topicorum, et de syllogismo applicato ad materiam sophisticam, qui opponitur syllogismo dialectico, de quo tractatur in libro elenchorum, non intendo me ad praesens intromittere. |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적으로 모든 이들에 의하여 열망되는 그것의 앎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부여잡을 신의 도움과 함께 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우선 우리는 5개의 술어를 다루어야 하고, 둘째로 10개의 범주를 다루어야하며, 셋째로 진술을, 넷째로 단순하게 삼단논법을, 다섯 번째로 논증적 재료들이 적용된 삼단논법 혹은 논증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개연적인 재료에 적용되는 삼단논법을 자루지 않는데, 그것은 볍증론이라 불리는 논리학의 한 부분이며, 이것은 <변증론>에서 다루어지는 것이고, 궤변적 재료들이 적용된 삼단논법, 그것은 변증법적 삼단논법과 대립되며, 이것은 <소피스트적 논박>에서 다루어졌다. 아는 지금 그것을 소개할 뜻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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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한 모든 권한 유대칠에게 있다. 자유로운 학술적 사유는 출처를 분명히 표기한다는 조건에서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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