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중세 철학 스케치하기!
유대칠
(Thomas Philosophia schola)
<나의 노트의 일부다. 이 글은 그냥 쭉 적은 것이다. 그러나 나의 글을 퍼가거나 사용할 경우 꼭 출처를 분명히 적어주길 바란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의 글로 사용되거나 출처 없이 인용되는 것이 보기 싫다. 혹시나 스크랩을 해간다면 확실히 댓글을 남겨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은 나의 오랜 벗이며, 오랜 시간 토마스 철학 학교와 함께 한 벗이며, 지금은 멀리 떨어져있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두 마리 잉꼬 부부에게 헌정한다.>
‘후기 중세 철학’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특정의 누군가에 의하여 전(前)과 확실히 구분되는 ‘후기 중세 철학’이란 사상계의 지형이 형성된 것은 아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한 부분으로 ‘후기 중세 철학’ 역시 앞과 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한 부분이다. 칼로 자르듯이 확연히 전과 후와 완전히 결연된 면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후기 중세 철학’을 아예 구분지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강 ‘후기 중세 철학’의 기본적 토대가 마련되는 태동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태동기는 13세기 중엽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사후 강의 헨리(henry of Ghent)와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등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며 형성하던 전과 다른 어떤 새로운 분위기, 그 분위기 가운데 서서히 후기 중세 철학이 만들어진다. 더욱 더 구체적으로 지명해본다면, 1277년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전과 후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이전 알베르투스 마뉴스(Albertus Magnus)와 할레의 알렉산더(Alexander Halensis)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무슬림 철학자들에 대한 고민하며, 주체적 수용의 시기를 가진다. 이 수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알베르투스와 알렉산더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 가운데 수용하려는 것이 있다면, 시제 브라방(Siger Brabant)과 다치아의 보에티우스(Boethius Dacia)는 신앙이 아닌 이성의 고유한 위상과 본질에 집중하며, 새로운 평가를 내린다. 시제 브라방과 다치아의 보에티우스 등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보나벤투라와 다르게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정립한다. 이러한 시제 브라방과 다치아의 보에티우스 등의 견해들은 신앙과 조화되기 힘든 것으로 여겨지며, 1277년 금지령의 주된 대상이 된다. 1277년 금지령의 대상이 된 명제를 피하며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앙에 부합하는 새로운 틀을 구상하기 위하여 학자들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물론 중세 무슬림 철학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후 철학과 신학의 흐름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용을 넘어선 또 다른 태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非)-그리스도교인이다. 비-그리스도교인의 철학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일치하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거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약(新約)과 구약(舊約)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으면, 어디까지나 자신의 지성에 근거한 철학자일 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Metaphysica)에서 보이는 ‘신’은 구약의 야훼가 아니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온전히 일치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용하며 단련된 체력으로 후기 중세 철학자들은 그들의 개념과 담론을 형성하며 새로운 철학의 지형(地形)을 그리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후기 중세 철학에 영향을 준 1277년 금지령의 몇 명제들을 직접 살펴보자.
22. 신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의 원인일 수 없으며,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 수 도 없다.
23. 신은 불규칙적으로 어떤 것을 움직일 수 없다. 즉, 그가 하는 방식 이외 다른 방식에서 말이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 의지의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다.
24. 신은 행위와 운동 가운데 영원하다. 마치 그가 실존하는 가운데 영원한 것과 같이 말이다. 다른 방식에서 그는 그의 앞에 있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하여 결정되어진다.
40. 질료를 가지지 않는 모든 것을 영원하다. 왜냐하면 질료 가운데 변화를 통하여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전에 실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원하다.
42. 신은 질료 없이 동일한 종 가운데 개별자를 다수화 할 수 없다.
69. 신은 제이 원인 그 자체 없이 제일 원인으로 결과를 일으킬 수 없다.
110. 형상은 질료를 통하지 않고 나누어질 수 없다.
115. 신은 수적으로 다양한 영혼을 만들 수 없다.
116. 동일한 종 가운데 개별자들은 오직 질료에 의하여 다르다. 마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이 말이다. 각각의 인간 가운데 존재하는 인간 영혼은 수적으로 동일하기에 수적으로 같은 존재자가 다양한 장소 가운데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보다 더 많은 명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지성 단일성과 관련된 것이나 그 이외 여러 문제에 관한 것이 있다. 그러나 우선 위에 제시된 것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것일 읽을 수 있다. 신을 어떤 것으로 제한할 수 없단 사실이다. 40번, 42번, 110번, 116번 명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즉, 신은 당시 학자들이 해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나 『자연학』(Physica)의 내용에 따라서 질료에 따라 개별자를 창조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마련한 자연 지성의 규율에 따르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란 말이다. 신을 인간 지성, 즉 철학에 따라 완전한 존재로만 해석한다면, 신은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는 존재이며, 더 이상 다른 선(善)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위의 22번 명제와 같이 신은 어떤 새로움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새로움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아직 신이 부족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가장 최상의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움직이며, 불규칙적으로 이래저래 바꾸어가며, 어떤 것을 행할 수 없다. 23번 명제에서 이야기하듯이 신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신이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69번 명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신은 스스로 제일 원인이 되어 제이 원인 없이 제이 원인으로 만든 결과를 동일하게 만들 수 있다. 이에 반대하는 것도 그리스도교 신앙에 적절하지 않다.
1277년 이후 서유럽의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넘어가려 한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용어들, 예를 들어, 형상(forma), 질료(materia), 실체(substantia) 등은 그대로 사용하지만, 서서히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그들의 고민에 적절하게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기도 하고, 새로운 문제를 설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형성된 철학적 조건에 따라 새로운 개념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강의 헨리와 둔스 스코투스 등에 의하여 제기된 존재론에서의 ‘본질의 존재’(esse essentiae), ‘실존의 존재’(esse existentiae) 그리고 ‘주체의 가능성’(potentia subiectiva), ‘대상의 가능성’(potentia obiectiva)과 인식론과 신학에서의 ‘직관적 인식’(intuitiva notitia)과 ‘추상적 인식’(abstractiva notitia) 그리고 ‘절대적 권능’(potentia absoluta)과 ‘정해진 권능’(potentia ordinata) 등의 전에 없던 논의들이 본격화된다. 이 모든 논의들은 반-아리스토텔레스는 아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벗어난 13세기 후반 서유럽 철학자들의 철학적 고민의 산물들이다.
1277년 금지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 속에서 신은 새로운 것을 새롭게 만들 수 없으며(22 명제), 제이 원인 없이 제일 원인인 신이 제이 원인이 일으킨 것과 동일한 결과를 일으킬 수 없다(69 명제). 이러한 신은 정해진 것을 할 뿐이며,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신 역시 필연적으로 행위 할 뿐이다. 1277년 이후 새롭게 구성된 철학은 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신의 ‘절대적 권능’에 대한 논의가 그렇다. 절대적 권능에 대해 후기 중세 철학자들의 입장은 다음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원리에 의하면 신은 작용인의 일종으로 제이 원인이 만들 수 있다는 모든 것을 <그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만일 신은 모순 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제이 원인 역시 모순 없이 있는 수 있는 것이 아니 다른 것을 만들 수 없는 것이 분명하기에, 신 그 자신도 제이 원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귀결된다.”
위-오캄 문헌에 등장하는 이러한 논의는 다분히 69 명제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위-오캄에 담긴 후기 중세 철학의 분위기에서 신은 스스로 제일 원인이 되어 제이 원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이 원인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다. 69 명제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듯이 신이 제이 원인을 통해서만 어떤 결과를 얻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후기 중세 철학의 분위기를 볼 수 있는 문틈이 된다. 질료와 같은 제이 원인이 없이 신은 직접 제일 원인으로 각각의 존재를 개별자로 존재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게 된다. 강의 헨리는 하나의 개별자가 스스로 질료와 같은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하여 자립(subsistentia)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뿐인가. 윤리 신학적 문제에서도 절대적 권능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할레의 알렉산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절대적 권능에 의해 신은 베드로를 단죄하고 유다를 구원할 수도 있다.”
또 신은 인식에서도 인식 대상과 같은 제이 원인 없이 직접적으로 제일 원인이 되어 동일한 인식이 인간 영혼 가운데 주어지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둔스 스코투스에 의하여 제기된 후기 중세 철학의 뜨거운 감자인 ‘직관적 인식’과 ‘추상적 인식’의 시발점과 깊이 관련된다. 신은 직접 제일 원인이 되어 실재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제이 원인인 인식 대상 없이 인식 주체에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캄이 생각하는 이 문제에 대한 한 입장을 읽어보자.
“만일 신이 신적인 권능으로 실존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de re non existente) 완벽한 직관적 인식을 보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명백하게 불완전한 인식의 덕으로 실존하지 않는 대상을 명백하게 인식하게 된다.”
이 역시 결국은 ‘제일 원인’과 ‘제이 원인’의 관계 그리고 ‘절대적 권능’과 ‘정해진 권능’ 사이에서 일어난 논의의 연장선에 있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보편자와 관련된 논의에 대한 후기 중세 철학자들의 새로운 존재론 기획의 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신은 스스로 제일 원인이 되어 개체화의 원리인 질료 등과 같은 제이 원인 없이 동일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또 스스로 제일 원인이 되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직관적 인식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또 신은 자연의 법칙에 구속되지 않고 그것을 다르게 할 수 있는 절대적 자유를 가진 존재이다. 이러한 후기 중세 철학의 한 흐름에서 ‘논의의 경제성’을 생각해 보자. 만일 신이 스스로 제일 원인이 되어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질료와 같은 개체화의 원리와 같은 것은 처음부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클레이(Henricus de Harclay)는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개별자뿐이라고 하였고, 개체화의 원리와 같은 것을 긍정하기 위하여 별 다른 설명 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캄 역시 여러 개의 개별자 가운데 공통된 하나의 단일한 하나의 것이 존재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두 개의 개별자 가운데 하나이며, 동일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 가운데 단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그 자체로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른 것 가운데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오캄 역시 1277년 이후 철학자다. 그 역시 당시 많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논의 경제성에 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정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보았다. 신의 절대적 권능으로 개별자들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는 논의가 이미 많은 이들에게 받아드려지고 있었다. 개별자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면, 굳이 보편자를 가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보편자의 부정 단순히 ‘이 인간’ 혹은 ‘저 인간’의 존재들만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하나의 보편적 본성, 즉 ‘공통 본성’(natura comuunis)이 서로 다른 개별자들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부정, 즉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어떤 하나의 본성적 법칙에 대한 부정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죽은 이의 부활과 같은 것은 인간 이성에 따른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 죽은 이후 당장 일어나는 사후경직(死後硬直, Rigor Mortis)으로 도저히 다시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되기도 않으면, 생물학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신은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신에게 어떤 필연적인 것은 없다. 필연적이란 다르게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즉 신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면, 신은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인간의 공통된 형상은 어떠한 법칙을 가지기에 그 법칙에 종속되어 신이 필연적으로 그것을 행하게만 한다는 것은 신의 절대적 권능을 무시하고, 그의 절대적 자유를 구속하는 결과를 낳는다. 즉 각각의 인간들에 모두 공통된 하나의 형성 혹은 보편자는 없으며, 이는 그 인간들 모두에 적용되는 어떤 필연적 법칙도 없단 말이 될 수 있다. 보편자 혹은 공통 본성 혹은 공통 형상의 부정은 ‘이 인간’에 ‘이 인간’의 형상과 본성이 그리고 ‘저 인간’엔 ‘저 인간’의 형상과 본성이 있다는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문제를 낳는다. 보편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다르게 될 수 있는 것을 인정한다면, 과연 ‘학문’(scientia)이 가능하겠는가? 이 무렵 이러한 논의도 뜨겁게 다루어졌다. 어쩌면 어느 오캄주의자에 의하여 작성된 『신학의 원리에 대한 논고』(Tractatus de Principiis Theologiae)라는 제목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학의 원리, 즉 유명론이란 새로운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신의 토대 혹은 시발점을 만들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Copyright ⓒ 2012 by Yu Dac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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