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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중세 철학> 17호 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 『서양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사 -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박승찬 (서울 : 노멘, 2010)을 읽고 -

 

유 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중세 스콜라 철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고대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를 지우고 중세 스콜라 철학을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한 고대 철학자다. 지금까지의 연구물들 역시 대부분 플라톤(Platon)이나 다른 고대의 철학자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 철학자들 사이의 관계가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논의되는 것도 그가 차지하는 중세 철학에서의 위치를 이야기해준다. 간단하게 한마디로 물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 없이 중세 스콜라 철학이 지금과 같이 존재하였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 없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그리고 오캄(William Ockham)이 있었겠는가?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하여 나름 분명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 “아니다.” 물론 그가 없어도 중세 유럽과 아랍 지방 그리고 유대지방엔 정확히 규정할 순 없겠지만, 어떠어떠한 내용을 담은 철학의 사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철학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닐 것이다. 유럽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 그리고 오캄의 철학도 아니었을 것이고, 아랍의 아비첸나(Avicenna) 그리고 아베로에스(Averroes)의 철학도 유대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의 철학도 아니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없이 지금의 중세 스콜라 철학은 없었고, 이런 점에서 그는 분명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가진다.

이와 같이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과거의 한 철학자가 아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왜 중세 철학자들이 그를 바로 ‘그 철학자’(Philosophus) 혹은 ‘철학자 그 자체’로 여겼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부동의 원동자’라는 개념을 전해 주었다. 이 내용을 간략히 말한다면,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이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와 같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하여 그렇게 활용되고 논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떠면 한 명의 철학자로 그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에 따라서 자신의 철학을 일구었을 뿐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의도하지 않은 작은(?) 움직임은 그 이후 철학사의 큰 흐름을 결정지우는 거대한 움직임이 되었다.

우리가 철학사를 살필 때, ‘중세’라는 타이틀로 만나는 ‘중세’ 이슬람 철학과 ‘중세’ 유대 철학 그리고 ‘중세’ 비잔틴 철학은 물론이고, ‘중세’ 서유럽의 철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철학자 그 자체’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철학은 중세 스콜라 철학에 있어서 분명 ‘부동의 원동자’인 듯이 하다.

이런 그의 영향력은 현대의 많은 연구가들에게 본격적인 그와 중세 철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일으키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이미 서구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향과 관계의 문제는 이후 중세 철학의 핫이슈 가운데 하나인 ‘신앙’(fides)과 ‘이성’(ratio)의 관계와도 관련되어 다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성’에 근거한 철학자와 성서(聖書)와 관련되는 ‘신앙’의 관계 설정 문제가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중세 스콜라 철학을 유기적으로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로 이어지는 ‘시간’적 유기성 속에서 이해하게 하며, ‘공간’적으로 서유럽에 제한되지 않고 이슬람, 비잔틴, 아랍 지방의 철학적 논의가 유기적으로 서로 관계되는 모습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성과 신앙의 관계라는 중세 철학의 심연에 있는 또 하나의 문제를 고민하게 해 준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스콜라 철학의 관계는 그 자체로 매우 심오한 철학사의 고민이며, 중세 스콜라 철학의 복원에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작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디어 중세 철학의 진정한 복원을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스콜라 철학 사이의 관계와 영향에 대한 연구서가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로 나오게 되었다. 즉 이러한 고민에 도움이 되는 우리말 첫 참고서가 나온 쌤이다. 바로 이 책이 박승찬 교수의 『서양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사』이다. 이 책은 단지 이 문제를 고민한 첫 번째 단행권이란 측면에서의 장점을 넘어서는 무척이나 친절하고 체계적으로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와 ‘교부 시대’ 그리고 중세 이슬람과 유대를 걸쳐 스콜라 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게 되었는지의 경로를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친절하고 상세한 우리말로 된 첫 소개서 혹은 참고서의 등장이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마치 복잡한 골목의 외국 도시를 외국어 안내서가 아닌 우리말 안내서의 친절한 도움으로 다닐 수 있게 되는 기쁜 맘, 그 반가운 맘에 참고서를 들고 즐거운 고민에 빠져본다. 아직은 참고서를 들고 공부를 해야 만하는 우둔한 학생으로 참고서를 읽으며 공부하다 일어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우선 크게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겠다. 책은 크게 앞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용 역사’를 다루며, 뒷부분은 수용 후 이루어지는 주체적 담론을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신앙과 이성의 관계 문제’로 다루고 있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수용 이후 일어나는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책의 자연스러운 순서로 정한 것부터 우둔하지만 필자의 기대하는 맘과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우선 첫 부분을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용 역사에 대한 개괄적으로 친절한 정리는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후,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주석가와 그리스도교의 교부들 그리고 동방과 아랍 지방의 분위기와 모습을 소개하는 가운데 제법 많은 학자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 각각의 면모를 소개하는 부분에선 마치 간략하게 고대에서 교부 그리고 아랍과 유대 철학자들을 개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편 이 많은 분량의 연구와 정리를 위한 저자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뒤 이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대한 번역의 과정과 13세기 이후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대한 정리 부분 역시 개괄적이지만 분명한 무게감을 유지한 채, 무척이나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 난 후에도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분명히 고대에서 중세 그리고 유럽에서 근동에 이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그의 영향사와 그와 관련된 제법 긴 철학사를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

이어서 진행되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수용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초반부 보다 더 강하게 이 책의 부제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2부의 핵심에 위치한 고민을 필자는 ‘신앙’과 ‘이성’의 관계로 읽었다. 신앙에 근거한 그리스도교 신학과 이성에 근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만나서 어떤 모습을 가지고 조화되고 구분되는가의 논의가 다루어지고 있어, 중세 후기 철학을 연구하는 필자에게 매우 유익했다. 그 유익함 가운데 필자가 오래전 스틸(Steel)과 리베라(De Libera) 등의 글을 읽으며 가진 고민과 이 책의 고민이 이어지는 점이 있었다. 그 점을 중심으로 우둔하지만 몇 가지 질문을 해본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철학자들의 ‘철학’에 대한 이해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동일한가의 문제다. 고대 철학자들에게 ‘철학’은 ‘삶의 방식’이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게 철학은 ‘삶의 방식’이었다. 충분히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결국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철학자는 지식을 가진 인물이기를 넘어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철학에 관한 입장이 중세를 살아간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도 적용되는가의 문제다.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 문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신학과 철학이 조화되어 다루어지던 신학부의 교수와 당시 인간 이성에 근거한 철학이 주로 다루어지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을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되던 인문학부의 교수가 바라 본 신앙과 이성의 관계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조화는 필수라면 인문학부의 교수에게 조화는 필수가 아니며, 오히려 강의에선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에 집중하는 것에 더 자신의 업에 충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리베라와 아도가 지지하듯이 당시 철학의 공간을 신학부에 한정하지 않고 인문학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화와 분리의 문제를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의문이다.

우선 첫 번째 질문부터 풀어보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급진적으로 수용하건 혹은 비판적으로 수용하건 문제는 그들이 수용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한 입장이다. 인문학부의 교수이며, 인문학부를 중심으로 대부분 순수 철학을 주제로 고민하고 강의한 브라방의 시제(Siger de Brabant)나 다치아의 보에티우스(Boetius Dacus)와 같은 이들에게 신학과 관련된 입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오캄과 같은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자연학 관련 저서를 남겼다. 여기에서 우린 철학자 오캄을 읽을 수 있다. 또 다행히 그는 『명제집 주해』를 남겼기에, 부분적으로 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하여 들을 수도 있다. 즉 ‘신학자’ 오캄을 읽을 터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13세기 인문학부의 교수들 대부분은 성서 주해를 남기거나 『명제집』에 관한 연구서를 남기지 않았다. 다치아의 보에티우스 역시 지금 우리가 그를 알 수 있는 것은 논리학 저작과 윤리학 관련 저작 정도이다. 그는 철학에만 매진하였다. 그는 신학부 교수가 아니었다.

다치아의 보에티우스와 마찬가지로 브라방의 시제 역시 철학을 강의할 뿐이며, 신학을 강의하지 않았다. 그 역시 신학부가 아닌 인문학부의 교수였다. 그는 알베르투스 마뉴스(Albertus Magnus)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이 신학과 철학의 주제를 오가며 저술을 남기거나 강의하지도 않았다. 오직 철학에만 매진하였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은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이었다. 그는 신학부 교수가 되기 전 잠시 지나가는 길에 인문학부에 머문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인문학 교수로 철학 연구에 매진했다. 그의 저서들은 상당수 그의 강의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물론 우주 영원성과 관련 논의가 다분히 신학적 고민과 만날 여지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제와 보에티우스에겐 성서에 근거한 고민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대변되는 이성에 근거한 고민과 논변이었다. 하지만 성서에 근거한 신앙의 내용과 다르단 이유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들을 그리스도교를 위협하는 인물로 여기고 신랄하게 공격하였다. 비록 이들이 신앙에 대하여 공격하거나 극단적인 합리주의를 주장한 것도 아니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은 그들을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1270년과 1277년 두 차례 단죄를 내려진다. 그러나 이들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철학과 교수와 같은 인물들이다. 당시 인문학부 교수로 이들은 자신들의 위치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했다. 즉 인간의 이성에 근거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서히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상한 철학의 기본적인 입장을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다치아의 보에티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단순한 이론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 파악한 인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은 ‘이론학’이나 ‘실천학’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이며, 이것을 다치아의 보에티우스는 스스로 독자적 문헌 연구를 통하여 파악하게 된다.

고대 철학 연구가인 피에르 아도는 그의 저서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철학을 ‘삶의 양식’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며, 어떤 하나의 이론이 군주 노릇을 하는 독단론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 독단이 없음에서 아카데미아란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한 근본적인 기반은 무엇인가? 바로 이들이 서로 다른 학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삶의 방식’을 어느 정도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으로 철학이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도 발견되며, 아도 역시 그를 앞서 필자가 소개한 바와 같이 다치아의 보에티우스라고 한다.

“우리는 앞에서 교양학부의 선생들이 그리스어나 아랍어로 이루어진 번역서들 덕분에 고대의 한 철학자,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거의 모든 저작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들이 이 텍스트에 힘입어 철학은 그저 담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재발견하게 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서 그 문제의 철학가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 보통 순수한 이론가로 여겨지는 철학자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가들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이 대철학자에게 본질적인 핵심이 연구와 정관에 헌신하는 삶, 그리고 무엇보다는 신적 지성에 동화되고자 하는 노력에 있음을 꿰뚫어보았다. 다치아의 보에티우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 10권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주장을 인용하며 인간의 목적과 행복은 존재의 가장 지고한 부분을 따라, 다시 말해 진리를 정관할 수 있는 지성을 따라서 사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아도의 입장과 유사한 입장을 필자는 중세 철학 연구가인 리베라에게서도 읽을 수 있었다. 리베라는 중세 철학의 중심 공간을 신학부가 아니라, 인문학부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보에티우스와 시제에 대한 흔히 철학사에서 읽혀지는 평가와 다른 평가를 시도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자의 삶, 철학적 관상, 신적 지성과 동화되는 가운데 주어지는 참된 행복 등을 살펴보면, 철학은 삶의 방식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으로 얻어지는 참된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신앙이나 신적 조명 혹은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합리적 이성으로 충분히 이루어진다. 즉 인간의 본질적인 가장 완벽한 상태이며 인간 존재의 궁극의 목적은 지성 충만의 상태이며, 이는 이성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치아의 보에티우스가 저술한 De bono summo (혹은 De vita philosophi)를 보자. 아도의 이야기처럼 그는 다시금 고대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철학에 대한 상, 즉 삶의 방식으로 철학을 재발견한 것이 아닐까 한다. 철학으로 이루어지는 행복, 여기에서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삶의 방식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선 “완전한 행복이 관조적 활동(관상)”이며, 또한 “자기의 이성에 따라 행하고 그 이성을 가꾸며 자라게 하는 이의 정신 상태”이다. 또한 이러한 것을 이룬 이들은 신은 사랑할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여기에서 분명 신의 조명은 없다. 자신의 이성에 충실함으로 인간 이성 혹은 지성은 초월자의 도움 없이 홀로 신적인 것을 관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의 행복이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이루어진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가능한가? 즉 고대적 의미에서 삶의 방식으로 철학이 토마스에게 가능할까?

“신의 본질을 인식함은 인간 이성의 능력들을 능가한다. 『신학대전』 제 1 부 제 12 문제 제 5 절에서 토마스는 인간의 이성이 자연적인 능력을 통해서 신의 본질을 고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부인한다. 인간의 신 인식에 있어서의 이러한 부정적인 관점은 『신학대전』에서 계속 반복해서 나타나는 주제이다...<중략>...철학이 인간적인 지복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을 내포한다. 토마스는 동시대 파리대학 인문학부 교수들이 주장했던 철학적 삶의 이상을 비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인식적 한계에 의하여 현생에서 인간이 신을 직접 인식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한다. 철학으로 아무리 묻고 들어가도 결국은 “불완전한 신 인식에만 도달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고대의 의미에서 ‘철학’, 즉 ‘삶의 방식’으로의 철학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러면 철학만으로 진정한 행복의 길에 도달하게 할 수 없음으로 계시에 근거한 ‘신학’을 이성에 근거한 ‘철학’보다 더 높다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 『서양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사』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토마스가 계시 신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인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형이상학보다 계시신학이 최종의 목적, 즉 인간의 구원이라는 목적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는 인간 행복에 있어 신앙, 즉 계시신앙이 형이상학 혹은 철학을 능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분명 이 둘은 하는 일에서 구분된다. 그러나 행복을 향하는 여정에서 철학은 독자적일 수 없다. 신앙의 조력자로 만족해야 한다.

“이미 그리스인들은 관상적 삶을 인간 생활 중 최상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이런 삶이란 순수하게 인식을 위한 삶, 진리의 탐구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삶, 철학자의 삶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충실한 제자로서 토마스는 사변적 학문을 실천적 학문보다 높은 위치에 놓는다. 그에 따르면 사변적 학문이야말로 정말로 학문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것이다. 신학도 엄격하게 따지자면 이런 사변적 학문에 속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철학은 삶의 방식이며, 이러한 삶의 방식에 따라서 진리를 탐구하고 순수하게 앎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철학자의 삶이다. 그 삶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행복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의 이념이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많은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 토마스는 철학 혹은 이성은 신앙이 전제하고 있는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유익하고, 비유와 예로 신앙의 진리를 조명하기 위하여 유익하며, 신앙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지킴에서 유익하다고 평한다. 그런데 이러한 철학이 과연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삶의 방식으로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신학의 논리를 위한 수단으로 만족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고대의 의미에서 철학, 즉 삶의 방식으로 철학이 그대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인간의 이성으로 신적인 것을 관상함으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산다는 고대 철학과 고대 철학적 행복은 중세에선 불가능하며, 오직 신학적 논쟁에 있어 유익한 도움이가 되는 것일 뿐인가? 그것도 아니면, 토마스 아퀴나스가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고대 ‘삶의 방식’이란 틀이 아닌 새로운 중세적 틀 속에서 읽혀져야 하는가? 즉 동일한 단어이지만, 어느 정도 그 단어의 의미는 달라진 것인가?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 철학 사이의 관계를 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또한 중세 스콜라 철학을 연구하는 이에게 이는 매우 유익한 일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많은 것을 다시금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필자 자신이 아직은 부족하여 이렇게 우둔한 질문을 남겨본다. 과연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야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진정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즉 삶의 방식으로 철학과 동일한가? 아니면 새로운 어떤 것인가? 아니면 수정된 어떤 것인가? 이 우둔한 질문을 남겨본다.

두 번째 질문은 앞서 말한 것과 같다. 이 고민은 책을 모두 읽고 난 이후 남은 우둔한 고민의 한 부분이다. 우선 전제를 하나 제시한다. 만일 철학이 신앙이 없이 삶의 방식으로 아도와 리베라 등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을 재발견한 인문학부 교수들도 사상사적 입장에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통하여 스콜라 철학을 꽃피운 토마스와 같이 나름의 자리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렇다면 조화가 아닌 이성만으로 철학을 수행하던 인문학부란 배경 속에서 이들을 바라본다면, 이들에 대한 입장과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아닌 다른 길에도 어떤 가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보나벤투라 그리고 알베르투스 마뉴스 등은 신학과 철학의 조화 혹은 둘 중 어느 하나에 서야하는 신학부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시제와 보에티우스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인문학부의 교수이며, 인문학부의 교수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앙의 빛 없이 이성의 빛만으로 해석하려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이러한 시제의 논의를 논박하기 위하여 들고 온 것은 철학이며, 오직 ‘철학적인 원리들의 빛’ 속에서 논쟁이 진행되길 원했다. 그렇다면 시제와 보에티우스의 공간, 즉 인문학부란 측면을 생각하며 바라본다면, 그들의 신학적 입장이 신앙과 대립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그들은 ‘믿는다’의 영역이 아니라, ‘이해한다’는 영역, 즉 이성의 영역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것으로만 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신앙에 의하여 행복을 말하기에 앞서 철학자로 이성의 행복을 말해야하는 것이 인문학부 교수이며 인간 이성만으로 철학을 일구어가던 당시 인문학부의 학자로 적절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조화가 아닌 이성단독의 것도 ‘신학사’가 아니라, ‘철학사’의 관점에선 만 본다면 상당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둔한 생각을 해 본다. 간단한 예를 들어, 아도의 말과 같이 이들은 진정 고대 철학의 참 모습인 삶의 방식으로 철학을 재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우둔한 의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