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캄 용어집
A Glossary of Ockham’s Philosophy and Theology
유 대칠
(토마스철학학교 틀밖 연구소)
<지금은 더 많은 것이 노트에 정리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당장 이 정도를 블로그에 공개한다. 나의 연구가 더해갈 수록 더욱 더 온전히 완성되어 갈 것이다. 곧 더욱 더 나아진 것을 올리겠다. 참고로 이 자료는 2009년 작성한 것이고, 2009년 이후 지금까지 놀고만 있지 않았다. ㅎㅎㅎ>
개념 (conceptus) : “개념은 영혼 외부 실재의 유사성이다.” (conceptus est similitudo rei extra. Ockham, Quaest. In Phys. 2 (OPh.2, 399)). “존재자에 대한 개념이란 인식은 무한한 대상과의 유사성이다.” (cognitio quae est conceptus entis est similitude infinitorum obiectorum… Ockham, Quod. 7, q.13 (OTh.9, 749)). “개념이란 명사는… 심적 명제의 부분에 적절하다.” (Ockham, Summa Logicae 1, 1 (OPh.1) “terminus conceptus est … nata esse pars propositionis mentalis”) “개념이란 명사(terminus)는 어떤 것을 자연적으로 의미하거나 혹은 공의미하는(consignificans) 지향(intentio)이거나 혹은 영혼의 받아드림(passio)이다.” (Ockham, Summa logicae 1, 1 (OPh.1, 9)) “나는 고유하게 동시에 실체와 우유를 표상하는(representantem substantiam et accidens) 혼돈된 개념을 가진다. 왜냐하면 내가 하얀 것을 지각할 때. 나는 단순하게 하양을 보는 것이 아니며, 어떤 하얀 것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에 내는 동일한 것이 하얀 것으로부터 검은 것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을 지각한다. 가는 이것이 하양 이외 다른 어떤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지금 사고 행위는 이러한 혼돈을 분류하는 능력을 가진다.” (Buridan, Subtilissimae quaestiones super octo physicorum libros aristotelis 1, q.4, fol. Vrb-va. 이 판본은 G.M.B.H.Miberva, Kommentar zur Aristotlischen Physik (Frankfurt am Main, 1964)으로 재판되었다.).
개체화의 원리 (principium individuationis) :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과연 개체화의 원리란 무엇인가? … 그것이 실존하는 한에서 모든 것은 개별자이다(omnis res quod est, singulariter est). 그리고 차이 없이 공통된 근거 그 자체는 개념화된 것이다.” (Petrus Aureolus, In sent., II, d.9, q.3, art.3 ed. Rome 1065, 114aF).
계사 (copula) : “하지만 심적 명제는 개념의 결합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것은 정신 가운데 어떤 단순 개념을 구성하며, 여기에서 결합하는 개념을 더하며, 그것에 의하여 지성은 다른 것의 <단순> 개념 가운데 하나를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결합하는 개념을 계사라고 부른다.” (Buridan, Summulae de Dialectica, tr. Klima (New Haven, 2001), 24. Cf. J. Pinborg, 'The Summulae, Tractatus 1, De introductionibus', in The Logic of John Buridan. Acts of the Third European Symposium of Medieval Logic and Semantics, ed. J. Pinborg, (Copenhagen, 1976) 87: “propositio autem mentalis consistit in complexione conceptuum, ideo presupponit in mente conceptus simplices et superaddit conceptum complexivum quo intellectus affirmat vel negat unum illorum conceptuum de reliquo … Ille autem conceptus complexivus dicitur copula.”)
내포 (connotativus ) : “모든 내포 개념은 그것의 속성으로 절대적 개념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하얀 [것]’은 어떤 절대적인 것에 귀속된다. 어떤 것은 하얀 것이라고 불리는데, 즉 돌 혹은 나무 조각 들이 이렇다. 이러한 것은 ‘명칭의 무엇임’(명사적 정의)으로부터 명백하다.” (omnis autem conceptus connotativus aliquam conceptum absolutum presupponit cui attribuitur; sicut album attribuitur alicui absolute. Aliquid enim est quod dicitur album, scilicet, lapis aut lignum. Et isted patet ex diffinitione quid nominis. Peter of Ailly, Quaestiones magistri petri de aylliaco cardicalis cameracensis super libros sententiarum, I, q.3, fol.
논리학 (logica) : “논리학(logica), 이성적 철학(philosophia rationalis) 그리고 변증론(dialectica)이라 불린다. 그리고 논리학은 그리스어 logis에서 나온 것으로 말 된다.” (Tosca, Compendium philosophicum tractatus 1, de logica. (1754)).
단순 인식 (incomplexa) : “단순 인식은 개별자에 대하여 고유한 것이며,… 이것이 직관적 인식이다… 직관적 행위는 분명한 하나의 개별자에 고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적으로 개별자에 의하여 야기되기 때문이다.”(Ockham, Quodlibata 1, 13 (OTh.10, 73)). “단순한 인식은 어떤 경우엔 개별적이며(sinqularis), 또 다른 어떤 경우엔 공통적이다. 개별적인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즉 모호한(vaga) 인식은 감각적인 인식을 낳으며, 확정적 인식은 단순한 사고 행위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구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체의 범주 가운데 개별자와 상응하는데, 마치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라는 명사가 그 개념에 상응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공통적 인식(communis)은 의미의 방식에 따라 몇몇 지칭된 것과 관련된 공통된 실재의 단순한 파악이다.” (Marsilius of Inghen, Quaestiones super quattuor libros sententiarum, I, q.2.).
류 (genus) : “나는 류의 개념은 결코 개별자로부터 추상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dico quod conceptus generis numquam abstrahitur ab uno individuo. Ockham, Quodlibeta 1, 13 (OTh.9, 77)). “먼저 ‘인간’은 개별적 감각에 의하여 인식되고, 그런 후에 이와 동일한 ‘인간’은 지성에 의하여 인식(ab intellectu)되며, 그가 그렇게 인식되었을 때,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인 그리고 공통적인 하나의 인식(una notitia generalis et communis)이 가져진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cognitio)은 모든 인간에 적용되는 고통적인 개념(communis conceptus)이란 개념(conceptus), 지향(intentio), 받아드림(passio)이라 불린다.” (Ockham, Summa logicae 3-2, c.29 (OPh.1, 557))
만들어진 것 (fictum) : “우리는 우리가 그것이 인간인지 혹은 아닌지 어떤 개별적인 것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다는 것에 따라서 모든 인간과 동등하게 관련되는 ‘만들어진 것’의 인식을 가질 수 있다.” (Ockham, Ordinatio 1, dist.2, q.8 (OTh.2, 278))
명사 (terminus) : “심적 명사는 개념 혹은 지성적 영혼의 행위 혹은 지성적 능력이다. 발화 명사는 규약에 의하여 의미를 가지는 발화이다. 문자 명사는 규약에 의하여 의미를 가지는 발화 명사의 의미 가운데 동의어인 쓰인 것이다.” (terminus mentalis est conceptual sive actus intelligendi animae vel potentiae intellectivae. Terminus vocalis est vox significans ad placitum. Terminus vero scriptura sinonima in significando voci significativae ad placitum. Peter of Ailly, Conceptus et insolubilia, fol.
명제 (propositio) : “임의의 학문이 실재적(realis) 학문이든 아니면 이성적(rationalis) 학문이든 오직 그것에 대하여 알려진 것에 대한 명제에 대한 것이며, 그것은 오직 명제만이 알려지기 때문이다.” (Ockham, Ordinatio d.2, q.4 (OTh.2, 134)). “모든 참된 혹은 거짓인 발화된 것에 개념들로 구성된 어떤 심적 명제가 상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Ockham, Quodlibeta 5, 8 (OTH.9) “Patet … quod omni orationi vocali verae et falsae correspondet aliqua propositio mentalis composita ex conceptibus.”) “이 개념화된 명사들과 그것들로 구성된 명제는 정신 가운데 있으며, 외부적으로 드러나질 수 없는 심적 단어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에 종속된 기호인 발화된 것은 외적으로 소리 내어진다.” (Ockham, Summa Logicae I 1 (OPH.1) “isti termini concepti et propositiones ex eis compositae sunt illa verba mentalia quae … tantum in mente manent et exterius proferri non possunt, quamvis voces tamquam signa subordinata eis pronuntientur exterius … .”)
발화 (vox) : “…발화 명사는 규약적이기 때문에, 절대적 발화 명사는 우리가 혹은 다른 이가 그 가운데 그러한 절대적 개념을 가질 수 있는 그러한 동일한 실재”
사고함(행위) (intellectio) : “지성 가운데 사고함이 사고되어지는 어떤 것 없이 가정되는 것은 모순이다.” (contradiction est quod ponantur intellection in intellectu quin aliquid intelligatur. Ockham, Quodlibeta 4, q.35 (OTh.9, 473)). “어떤 것은 어떤 사고행위로 인하여 사고되었다.” (omni intellectione aliquid intelligitur. Ockham, In sent. I, d.2, q.8 (OTh 2, 268).) “사고행위는 대상과의 유사성이라고 지금 나는 말한다.” (Dico tunc quod ontellectio est similitude obiecti. Ockham, Rep. II, q.12-13 (OTh 5, 287)).
상 (species) : “우리는 천사가 자신의 지성 가운데 실존하는 그것의 단순하고 고유한 상(=종)을 통하여 개별자를 인식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것에서 보인 바와 같이 이러한 입장은 유지될 수 없다.” (Petrus Aureolus, In sent., II, d.11, q.4, art.4 ed. Rome 1065, 147aF-bB).
실체 (substantia) : “그러므로 어떤 단수적 실체도 보편적인 어떤 것이 아니지만, 모든 실체는 수적으로 하나이며, 단수적인데, 왜냐하면 모든 실체는 하나의 실재이며 다수의 실재가 아니거나 혹은 다수의 실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이며 다수가 아니라면, 수적으로 하나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으로부터 이것은 수적으로 하나인 것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만일 또한 어떤 실체가 다수의 실재들이라면, 혹은 다수의 단수적인 것이거나 혹은 다수의 보편적 실재이다. 만일 첫 번째 것이 제시된다면, 어떤 실재는 다수의 단수적 실체라는 것이 귀결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동일한 이유에서 어떤 실체는 다수의 인간들이다. 그리고 비록 보편자는 하나의 개별자와 구분될지라도,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구별되지는 않는다. 만일 또한 어떤 실체가 다수의 보편적 실재라면, 나는 그 보편적 실재들 가운데 하나를 취하며, 나는 다음과 같이 의문을 던진다. 다수의 것인가 하나의 것이며 다수가 아닌 것인가? 만일 두 번째 것이 제시된다면, 그것은 단수적이라고는 것이 귀결된다. 만일 첫 번째 것이 제시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진다. 다수의 개별적 실재인가 다수의 보편적 실재인가? 그러므로 무한한 소급이 있거나 혹은 어떠한 실체도 보편적인 것이 아니란 것이 확고하게 되거나 이며, 그렇게 단수적이지 않으며, 그것으로부터 어떤 실체도 보편자가 아니란 것이 남겨진다.” (Ockham, Summa logicae, 1, c.15 (OPh.1, 50)).
언어 (lingua) : “발화된 단어와 실재에 대하여 사고된 것은 그 자체로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Boethius, Commentarii in librum Aristotelis Peri Hermeneias: Editio Prima, ed. C. Meiser, (Leipzig, 1877) 40. “vox enim et intellectum rei significat et ipsam rem.”) “심적인 것의 류 가운데 그러한 심적 진술은 어떤 방식에서 합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에게 더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Gregory of Rimini, Super Primum et Secundum Sententiarum, (Venice 1522) f. 4va, repr. (St Bonaventure 1955). “videtur mihi rationabilius dici quod talis enuntiatio mentalis cuiuscumque generis mentalium sit non est taliter composita.”)
의미함 (significare) : “의미함이란 어떤 것의 기호인 것과 동일한 것이란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재는 두 가지 의미에서 기호라고 불릴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의 의미에서, 그것이 어떤 것의 기호인 그 실재에 대한 인식(notitia)를 이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실재에 대한 인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두 번째 의미에서, 우리는 개념을 그러한 개념이 그 실재의 인식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 실재를 인식하는 행위 그 자체이기에, 그리고 자연적으로 그리고 고유하게 그것을 표상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자연적 유사성(similitudo)일 때 실재의 기호라고 한다.” (Peter of Ailly, Conceptus et insolubilia, fol.
인식 (cognition 혹은 notitia) : “본다는 것과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 혹은 사랑하는 것과 사랑 받는 어떤 것도 없다는 것과 같이 그렇게 인식과 인식되는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Impossibile est esse visionem et nihil videri, vel dilectionem et nihil diligi, ita impossibile est esse cognitionem et nihil cognosci illa cognition. Ockham, Exp. Perih., prologue 6 (OPh 2, 352-353)). “사물에 대한 직관적 인식은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 사물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그러한 인식이다.” (Ockham, Ordinatio, Prol. q.1, a.1 (OTh.1, 31)). “인식(notita)은 추상적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하는 것의 실존으로부터 추상하거나 혹은 개별적 조건으로부터 추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실재의 실존 혹은 단수성이 추상적으로 인식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인식은 추상적이라고도 불리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의 대상적 현존성으로부터 추상하는 방식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실재 자체가 부재할 동안 표상적 매개체 가운데 인식되는 한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 실재 자체에 대한 직관적 인식 그 자체는 인식하는 이에게 그 자체 가운데 주어지며, 직접적으로 주어진다.” (O.Pluta, Die philosophische Psyschologie des Peter von Ailly (Amsterdam : B.R.Gruener, 1994), 70.) “사고함 가운데 긍정 혹은 부정은 합성된 인식이라고 불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몇 가지 종적으로 구분되는 인식과 관련하여 의미함 가운데 동등(동의)하기 때문이다.“ (affirmation vel negation in intellectu debet dici noticia complexa, quia pluribus noticiis specific distinctis equivalent in significando. Peter of Ailly, Conceptus et insolubilia, fol.
정언명제 (propositio categorica) : “어떠한 심적 정언 명제도 본질적으로 여러 부분의 인식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그 가운데 하나는 주어이고, 다른 것은 술어이며, 또 다른 것은 계사이다.” (nulla proposition mentalis cathegorica est essentialiter composite ex pluribus partialibus noticiis, quarum una sit subiectum et alia predicatum et alia copula. Peter of Ailly, Conceptus et insolubilia, fol.
종 (species) : “종의 개념은 개별자로부터 추상될 수 있다.” (conceptus specie potest abstrahi ab uno individuo. Ockham, Quodlibeta 4, 17 (OTh.9, 385))
지칭 (suppositio) : Peter Helyas는 다음과 같이 지칭의 등장의 배경을 암시하는 말을 한다. “예를 들어, 명사는 ‘어떤 것에 대해 알려지는 것’(de quo dicatur)을 의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며, 이와 같은 방식에서 동사는 ‘어떤 것에 대해 말 되어지는 것’(quid de aliquo dicitur)을 의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명사는 오직 존재 동사의 도움이(보어)일 때 서술되며, 동사는 오직 실체적 명사의 도움이 일 때 지칭된다. 그러나 임의의 명사는 그 자체로 지칭된다(supponitur). 그리고 동사는 그 자체로 서술된다(apponitur).” (quodlibet nomen per se supponitur, et verbum per se apponitur… L. M. De Rijk, Logica Modernorum Vol. II Part 1, 517.). “우리가 지칭된(suppositi) 명사로 묻는 것은 ‘누가 움직여?’, ‘누가 걸어?’, ‘누가 말해?’로 이야기될 수 있다. <이 물음은> ‘운동’ 혹은 ‘걸음’ 혹은 ‘말함’이란 행위는 분명한 경우이지만, 진정 그것을 실행하는 인격이(persona vero agens) 불분명한 경우다. 이러한 경우 주격 명사들은 보통 명사 혹은 고유 명사 그리고 분명한 속성에 의하여 일반 명사로 등장한다.” (Priscianus, Prisciani grammatici Caesariensis institutionum grammaticarum libri XVIII in H. Keil, Grammatici latini vol. 3, ed. M. Hertz, (Leipzig 1859), XVII, 23. 122.) “지칭은 명제 안에서 단의어 명사가 자기 자신을 향하거나 혹은 자기와는 다른 것 혹은 다른 것들을 향해 (pro) 갖는 자세(statio) 혹은 위상(positio)이다.” (suppositio est statio sive positio termini cathegorematici pro se, vel pro alio, vel aliis a se in propositione. Raymvdvs Lvllvs, Logica nova (ex typis Michaëlis Cerda & Antich & Michaèlis Amoròs, 1744) tabvla titvlorum logicae parvae, pars 3, a.1, n.1, 27-28.) “명사들의 의미에 관해(de significatione) 논의했기에 지칭에 관하여(de suppositione) 이야기하는 일이 남았으며, 그것은 명사에 수반되는 속성이지만, 오직 명제 가운데(in propositione) 있을 때에 그러한 속성(proprietas)이다.” (Ockham, Summa logicae 1, c.63 (OPh.1, 193)). “지칭(suppositio)이란 어떤 것 혹은 어떤 것들에 대한 명제 가운데 명사들의 수용(acceptio)이다...<중략>...즉 인간이란 단어는 명제 내부에서와 같이 외부에서도 의미를 가진다(significet).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제 가운데 부분으로 있는 것만이 지칭을 가진다.” (Paulus Venetus, Summa totius dialecticae (Venice, 1563), tractatus 2, caput 1, 15.). “지칭 가운데 어떤 것은 질료적(materialis)이고, 다른 어떤 것은 형상적(formalis)이다. 단어(dictio)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발화된 것 그 자체(ipsa voce absoluta)를 지칭하거나 혹은 발화와 의미로 구성된 단어 그 자체를 지칭할 때, 질료적이라 불린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간은 2음절이다’ 혹은 ‘인간은 명사다’라고 말할 때와 같이 말이다. 단어가 그것의 의미하는 바의 것을 지칭할 때 형상적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형상적 지칭은 단순(simplex) 지칭, 위격적(personalis) 지칭으로 나뉜다. 그리고 단어가 ‘의미 대상을 위한 의미 대상’을 지칭한다면, 단순 지칭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종이다’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단어가 의미된 것을 의미대상으로 지칭한다면, 단순 지칭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종이다’와 같이 말이다. 반면 단어가 의미된 것 밑에 있는 사물을 의미대상으로 지칭하는 경우 위격적 지칭이다. (Personalis autem, quando supponit significatum pro re, quae subest, ut...) 예를 들어, ‘인간이 달린다’(homo currit)에서와 같이 말이다. 왜냐하면 ‘달린다’(currit)는 어떤 개별적인 인간에 의하여 인간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형상적 지칭의 또 다른 구분이 있다. 공통(communis) 지칭과 분배(discreta) 지칭이다. 공통 지칭은 공통 명사를 통하여 일어 날 때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달린다’(homo currit)와 같이 말이다. 분배 지칭은 분배 명사를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소크라테스가 달린다’ 혹은 ‘그 사람이 달린다’에 일어난다. 이 두 구분은 완벽하게 내가 형상적 지칭이라고 부는 것에 남김없이 있단 것을 명심해라. 왜냐하면 단어에 대한 모든 지칭함은 공통적이거나 분배적이다. 그리고 형상적으로 명사를 지칭하는 것은 의미 되는 형상, 어떤 의미에서 단순 지칭 혹은 어떤 의미에선 위격적인 형상을 담지 하는 것을 지칭한다. 위격적 지칭은 아래와 같이 나뉜다. 한편 결정적(determinata) 지칭이며, 다른 방식으로 혼연(confusa) 지칭이다. 혼연 지칭은 다시 순수 혼연(tantum confusa)과 분배 혼연(confusa et distributa)으로 나뉘며, 후자는 다시 동적(mobilis)인 것과 비동적(immobilis) 분배 혼연 지칭으로 나뉜다.” (ed. M. Grabman, 'Die Introductiones in logicam des Wilhelm von Shyreswood' in Sitzungsberichte der Bayer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Philosophisch-historische Klasse, Jahrgang Heft 10, (1937), 75.). “우리는 먼저 지칭이 위격적 지칭, 단순 지칭, 질료적 지칭으로 나뉨을 알아야한다. 보편적으로 위격적 지칭은 그 의미 대상(sinificatum)이 영혼 밖의 실재이거나, 발화이거나, 영혼의 지향(intentio animae)이거나, 문자화된 것(scriptum)이거나, 이러한 것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이거나 간에 명사가 자신의 의미 대상을 지칭할 때 존재한다. 명제의 주어와 술어가 의미론적으로(significative) 취해지는 방식으로 그것의 의미 대상을 지칭할 때 마다 그 지칭은 언제나 위격적이다....<중략>... 단순 지칭은 한 명사가 영혼의 지향을 지칭할 때 존재하지만, 의미론적으로 취해지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방식에 따라서 예를 들어 보면, ‘인간은 종이다’라고 함에 있어 ‘인간’이라는 명사는 영혼의 지향을 지칭하는데, 왜냐하면 그 지향이 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명사는 고유한 의미에서(proprie) 말한다면 그 지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설명했던 방식을 따르면, 그 발화와 그 영혼의 지향은 동일한 의미 가운데 종속되는 기호일 뿐이다....<중략>... 질료적 지칭은 명사가 의미론적으로 지칭하지 않고 발화 명사나 문자 명사를 지칭할 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명사다’에서 분명해진다. 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지칭하지만, 그것 자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쓰인다’(homo scritur)라는 명제에서 적용되는 지칭은 질료적인데, 왜냐하면 그 명사는 쓰인 것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Ockham, Summa logicae 1, c.64 (OPh.1, 196-197)). “결론 1. 지칭은 이와 같이 질료적 지칭과 형상적 지칭으로 나뉜다. 질료적 지칭은 그 자체와 관련된 명사의 수용(acceptio)이다....<중략>...형상적 지칭은 자기의 의미 대상과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중략>...결론 2. 형상적 지칭은 단순 지칭, 위격적 지칭으로 나뉜다.” (Placidus Retz, Philosophia - tomus 1 Logica ad mentem angelici divi thomae aquinatis, quaestio 2, articulus 1, 690-691.). “지칭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질료적 <지칭>이라 불린다. 명사가 자기 자체와 관련되어 수용될 때이다. 다른 것은 형상적 <지칭>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는 명사가 자체의 의미 대상과 관련되어 수용될 때이다.” (Raffaele Aversa, Logica, Tractatus 2, cap. 8, 24.). “명사의 지칭은 두 가지다. 다른 것은 질료적이고, 또 다른 것은 형상적이다. 또한 명사의 지칭이 이중적이다.” (Tomas Vicent Tosca, Complendium philosophicum, liber 1, cap.4, propositio 10. 27). “그러므로 신이란 명칭은 어떤 때는 본질(essentia)을 지칭한다. 마치 ‘신이 창조한다’(Deus creat)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다. 왜냐하면 이 술어는 신성(deitas)이란 의미대상의 형상에 근거하여 주어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때는 위격을 지칭한다(supponit personam). ‘신이 낳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오직 하나의 것(unam tantum)만을 지칭하거나 혹은 ‘신은 입김을 불어놓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두 위격을 지칭(한다.)” (Quandoque ergo hoc nomen Deus supponit pro essentia, ut cum dicitur, Deus creat, quia hoc praedicatum competit subiecto ratione formae significatae, quae est deitas. Quandoque vero supponit personam, vel unam tantum, ut cum dicitur, Deus generat; vel duas, ut cum dicitur Deus spirat; vel tres, ut cum dicitur, regi saeculorum immortali, invisibili, soli Deo etc., I Tim. I.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 q.39, a.4, resp. (Roma : Marietti, 1952)). “단순 지칭은 오직 자기의 ‘우선된 그리고 직접적인 의미 대상과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 (Placidus Retz, Philosophia - tomus 1 Logica ad mentem angelici divi thomae aquinatis, quaestio 2, articulus 1, 691.). “또한 오직 의미 대상에 관하여 직접적으로(immediato) 수용될 때, 즉 오직 공통성 가운데 본성과 관련되어 수용될 때, 이를 단순 지칭으로 지칭되는(supponere suppositione simplici) 것이라고 부른다. 마치 ‘인간은 종이다’(homo est species)라고 말하는 가운데와 같이 말이다. 왜냐하면 단일한 인간에 대하여 정당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보편자 가운데 취해지는 인간에 대하여 정당성을 가진다.” (Raffaele Aversa, Logica, Tractatus 2, cap. 8, 25.). “‘인간’은 직접적으로 인간 본성을 지칭하며. 베드로와 바울로 그리고 요한...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Placidus Retz, Philosophia - tomus 1 Logica ad mentem angelici divi thomae aquinatis, quaestio 2, articulus 1, 691.). “단순 지칭은 보편적 실재와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종이다’와 같다.” (Berhnardus de Lavinheta, Logica, cap. 12, 10.) “단순 지칭은 오직 공통 본성(sola natura communi)과 관련된 명사의 수용이다. 마치 내가 ‘인간은 종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William O'Kelly D'Aghrim, Philosophia Aulica juxta Veterum ac Recentiorum Philosophorum Placita, 13-14.). “단순 지칭은 명사가 ‘영혼의 지향’을 지칭할 때 주어진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종이다’라는 명제에서 ‘인간’은 영혼의 지향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이 지향’이 종이기 때문이다.” (Ockham, Summa logicae 1, 64 (OPh.1, 196)). “단순 지칭은 발화적 혹은 문자적 명사의 수용이며, 이는 의미 대상과 관련해서 놓이지 않는 영혼의 지향으로 수용되어지는 것이다.” (Albertus de Saxonia, Perutilis logica tractatus 2, cap.2. ; Ch. Kann, Die Eigenschaften der Termini (Leiden : Brill, 1994), 166-267. 169.). “단순 지칭을 나는 가정하지 않는다... 발화 명사 혹은 문자 명사가 심적 개념을 지칭할 때,... 나에게 그러한 것은 큰 실용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러한 명사들의 지칭을 질료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Marsilius Inchen, Textus dialectices, (Viennae 1516) fol. 161. 필자가 이곳에서 사용한 라틴어 원문은 K. A. Sprengard, Systematische-Historische Untersuchungen zur Philosophie des XIV Jahrhunderts band 1 (Bonn : H.Bouvier u. Co.Verlag, 1967), 125이다.).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다’라는 명제에서 주어는 단순 지칭을 가진다고 말하는 이들의 견해는 거짓이라고 해야 한다. 사실 이 명제에서 ‘인간’은 단지 위격적 지칭을 가지기 때문이다.” (Ockham, Summa logicae 1, c.66 (OPh.1, 204).). “어떤 개념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공통적으로 그 자체를 의미하거나 또는 그것과 유사한 것을 의미한다. 마치 ‘인간’이란 개념 혹은 유사한 것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어떤 개념은 그 자체를 자연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의미한다. 이는 성질, 존재자 그리고 그러한 종류의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므로 심적 명제 가운데 자연적으로 그리고 공통적으로 의미하는 것을 지칭하는 모든 개념들은 질료적으로 지칭한다” (Thomas Maulfelt, Suppositiones (Edinburgh ms. 138, f. 63r): “quidam conceptus significat se communiter naturaliter vel etiam suum simile ut iste conceptus homo vel consimilis. Quidam conceptus significat se naturaliter proprie ut isti conceptus qualitas, ens et huiusmodi … Omnis igitur conceptus stans in propositione mentali pro isto quod significat naturaliter communiter supponit materialiter.”) “클리비스의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 명사는 자연적으로 공통적으로 의미하는 그것을 지칭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에서 그것을 질료적으로 지칭한다고 부른다.” (anon. ms. BJ 686 f. 22vb: “Thomas de Clivis ponit … terminus stat pro isto quod significat naturaliter communiter, et sic dicitur supponere materialiter.” (See E.P. Bos, Logica modernorum in Prague about 1400, Leiden 2004, Appendix I.1, 438.))
지향 (intentio) : “그러므로 나는 (인간과 같이 첫 번째로 놓이는 개념인) 제일 지향과 (종과 류와 같이 두 번째로 놓이는 개념인) 제이 지향은 실재로 사고 행위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만들어진 것(fictum)에 의하여 보존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행위에 의하여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들어진 것과 같이 사고 행위는 대상의 유사성이며, 이는 영혼 외부의 실재를 의미할 수도 지칭할 수도 있으며, 명제 가운데 주어 혹은 술어일 수 있고, 류와 종 등일 수 있기 때문이다.” (Ockham, Quodlibeta 4, 35 (OTh.9, 474)). “제일 지향은 기호가 아닌 대상을 의미하는 것에 대한 사고행위이며, 제이 지향은 제일 지향을 의미하는 사고행위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다.” (Ockham, Quodlibeta 4, 35 (OTh.9, 475)).
직관적 인식 (notitia intuitiva) : “직관적 인식과 추상적 인식이란 용어들은 단적으로 말해서 이해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동일한 인식에 대하여 확인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일한 실재란 측면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란 것이 귀결된다. 왜냐하면 어떤 상(species)이 심상으로(ut imago) 인식 될 때, 이러한 인식은 직관적이며 추상적 인식이다. 그러나 동일한 실재란 측면에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상의 측면에서 직관적이며 실재의 측면에서 추상적이다. 상이 그 자체로 인식될 때, 그리고 심상으로 인식되지 않을 때, 그 인식은 고유한 의미에서 직관적일 뿐, 추상적인 것으로 야기될 수 없다. 마치 전자의 인식이 고유한 의미에서 직관적일 수 없듯이 말이다.” (O.Pluta, Die philosophische Psyschologie des Peter von Ailly (Amsterdam : B.R.Gruener, 1994), 71.) “신은 정해진 것이 아닌 절대적 권능(potentia absoluta)에 의하여 은총 없이 어떤 것을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절대적인 것이 아닌 다른 하나인 정해진 권능(potentia ordinata)에 의하여 동일한 것을 수용할 순 없다.”
필요성 (necessitas) : “다수성(pluralitas)은 필요성(necessitas)이 없을 때 가정되지 않아야 한다.” (Duns Scotus, Ordinatio, 1 d.3, p.3, q.1 ( ed. Balic 3, 224 )). “다수(plura)는 필요성 없이(sine necessitate) 가정되지 않는다.” (Duns Scotus, De primo principio 3, 16.). “필요성 없이 그리고 근거 없이 다수성이 가정되기에 이는 불합리한 것으로 보인다.” (Ockham, Summa logicae 1, 57 (OPh.1, 185)). “철학자는... 모든 드러난 것이 더 소수의 것을 통하여 나타날 수 있을 때, 다수를 가정하지 않는 명제들을 가정한다.” (Ockham, Expositio in libros physicorum aristotelis, 3, c.10 (OPh.4, 525)). “심적 명사 가운데 가정되는 그러한 다수성은 그리 큰 필요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Ockham, Summa logicae 1, 11 (OPh.1, 11)). “다수성은 필요성 없이(sine necessitate) 가정되지 않는다.” (Ockham, Expositio in libros physicorum aristotelis, 1, c.11, §9 (OPh.4, 118)). “다수성은 필요성 없이 가정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Walter Chatton, Lectura 1 prol. q.2.).
형이상학 (metaphyscia) : 로베르투스 글로세테스테(Robertus Grosseteste)는 형이상학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그 학문을 참으로 지혜인 것으로 말하며, 그것은 그 자체로 그 학문이다.” (Robertus Grosseteste, Commentarius in posteriorum analyticorum libros (Ed.P.Rossi, 1981), pp.255-256.). 알베르투스 마뉴스(Albertus Magnus)는 형이상학의 대상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자연적 실재에게 가장 분명한 모든 것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신적(divinissima)이고, 앞서는 것(priora)이며, 이는 존재자(ens)이고, 존재자의 부분이며 원리이다(entis partes et principia).” (Albertus Magnus, Metaphysica l.5 (Ed. B.Geyer, 1960), p.5.). “또한 신적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든 것은 신적(divina)이며, 최상의 것(optima)이고 제일의 것(prima)이기 때문이다....이 학문이 고려하는 존재(esse)는 이것 혹은 저것에 한정된 것(contractum)으로 해석되지 않는다(non accipitur). 그러나 오히려 신의 첫 번째 유출과 첫 피조물(prima effluxio dei et creatum primum)이다. 이것 전에 다른 피조물은 없었다.” (Albertus Magnus, Metaphysica l.5 (Ed. B.Geyer, 1960), pp.2-3.).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초-자연학(transphysica)은 예를 들어 덜 일반적인 것 다음에 더 일반적인 것과 같이 이완의 길 가운데 발견된다.” (Thomas Aquinas, In Metaphisicorum Prooemium). 로저 바콘(Roger Bacon)은 형이상학과 관련되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적으로 인간에 의하여 고려되는 것이기에 제일 철학(prima philosophia)이라 불린다. 그리고 또한 그 자신의 부분에 따라서 모든 것의 원인들을 우선적으로 다루고, 모든 것의 제일 원인들을 다루기에 (제일 철학이라 불린다.)” (Roger Bacon, Quaestiones altere super libros prime philosophie aristotelis (Opera hactenus inedita Rogeri Baconi, fasc. 11) (Ed.R.Steele, 1930), p.30.). “이 학문은 가장 고귀하다. 왜냐하면 그 자체는 사변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의 규칙(regula scienie speculative et practice)이기 때문이다.” “이 학문은 가장 고귀하다. 왜냐하면 그 자체는 사변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의 규칙(regula scienie speculative et practice)이기 때문이다.” (Roger Bacon, Quaestiones altere super libros prime philosophie aristotelis (Opera hactenus inedita Rogeri Baconi, fasc. 10) (Ed.R.Steele, 1930), p.11.)
<이 자료는 토마스 철학 학교 후기 중세 철학 연구 과정의 산물이며, 글의 모든 권한은 유대칠(유지승)과 토마스 철학 학교에 있습니다. 학술적 용도의 인용은 자유롭지만, 인용시 출처를 분명히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 YUDAECHIL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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