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의 대상과 제일 철학 그리고 자연 신학의 구분
유 대칠 정리
(토마스 철학 학교)
16세기 독일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니콜라우스 타우렐루스(Nicolaus Taurellus)가 1596년의『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개요』(Synopsis Melaphysicae Aristolelis)을 내어 놓기 2년 전인 1594 이미 독일의 루터주의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다니엘 칸디두스(혹은 다니엘 크래머, Daniel Candidus(Cramer))는 『형이상학 입문』(Isagoge in Metaphysicam)을 내어 놓았다. 이 저작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연구하려는 16세기 독일 루터주의 신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저작은 이후 초기 독일 철학의 교과서로 사용되면서 매우 중요한 시대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중세에서 당시까지 주된 학자들의 고민거리는 형이상학 대상의 대한 문제였다. 이러한 시대적 고민 속에서 그는 그의 책 1권에선 존재자의 속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현실태(actus), 가능태(potentia) 그리고 그 자체로 존재자(ens per se)인 것과 우유에 의하여 존재자(ens per accidens)인 것, 그리고 초월자 등이다. 이어서 2권에선 존재자의 원리를 다루고, 3권에선 존재자의 종을 다룬다. 예를 들어, 예지체의 존재자(the intelligences)와 같은 것이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칸디두스의 저작은 엄밀한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대한 주해가 아니다. 오히려 형이상학적 이론에서 다루어지는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의 방식이란 큰 의미에서 중세에서부터 내려운 교과서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분명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란 지형 가운데도 그 교과서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후배들은 더 이상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형태의 연구물을 시도한다.
칸디두스 역시 형이상학은 존재자에 대한 학문이란 기본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존재자에 대한 학문으로 형이상학이란 관점의 발전은 1605년에 마인즈(Mainz)에서 출판된 수아레즈의 『형이상학 논고』(Disputationes metaphysicae)와 깊이 연관된다. 그의 저작은 예수회를 넘어 루터주의 학자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준다. 그의 영향력은 루터주의자들인 코르넬리우스 마르티니(Cornelius Martini)와 야콤 마르티니(Jakob Martini) 그리고 더욱 더 분명하게 기쎈(Giessen)의 논리학과 형이상학 교수이며 루터주의자인 크리스토프 샤이브러(Christoph Scheibler)가 1617년에 출판된 『형이상학 작품』(Opus metaphysicum)과 1618년 출판된 『에피토메 메타피지카』(Epitome metaphysic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루터주의 학자들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자연 신학’(theologia naturalis)으로 이어졌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존재자와 관련된 개념을 명확하게 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통적 형이상학으론 온전히 영적 존재자를 다룰 수 없었다. 이에 샤이브러는 첫 번째 독립적인 시도를 담은 그의 저서 『자연 신학』(Theologia naturalis)에서 논의의 대상을 둘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이후 근대 철학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일반 형이상학(metaphysica generalis)과 특수 형이상학(metaphysica specialis)이다. 샤이브러의 두 학문을 구분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시대적으로 예수회 학자들, 그 가운데 베네딕투스 페레이루스(Benedictus Pereirus)가 1598년 출판한 저작(De communibus onmium rerum naturalum principiis)과 무관하지 않다. 비텐베르그(Wittenberg) 대학의 교수이며, 루터주의 철학자 겸 신학자인 요하네스 샤프(Johannes Scharf)는 1629년에 출판된 『프네우마티카』(Pneumatica)의 서론에서 존재자에 대한 학문, 즉 ‘존재론으로 형이상학’과 ‘신에 대한 개별적 학문으로 형이상학’에 대한 페레이루스의 구분을 언급하고 있다.
바젤(Basle)에서 1594년 출판된 르네상스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자인 야코푸 자바렐라(Jacopo Zabarella)의 『논리학 작품』(Opera logica)은 이러한 발전 가운데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실재로 그는 많은 이, 특히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자바렐라를 따라서 신학을 실천학으로 여겼다. 실천학과 이론학의 차이를 살펴보자. 이론학은 종합적 방법론(synthetic method)이 적용되며, 이는 제일 원리로부터 결론이 귀결되는 그러한 방법론이다. 그러나 실천학은 분석적 방법론(analytic method)을 취한다. 이는 자바렐라에 의하여 묘사된 것으로, 이는 출발점이 제일 원리가 아니라, 행위의 목적 혹은 목표임, 이는 이러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수단과 원리를 발견하려는 종합적 방법과 구분되는 것이다.
16세기 후반 루터주의 철학자들은 신학을 실천학, 즉 분석적 방법론이 적용되는 실천학으로 보았다. 게오르그 칼릭투스(Georg Calixtus)는 1619년 『신학의 개요』(Epitome theologiae)에서 분석적 방법을 신학에 적용하는 첫 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만이 있던 것은 아니다. 1577년루터회의 정통교리로 세워진 『일치의 형식』(Formula concordiae)와 비텐베르그 대학의 교수 야곱 마르티니의 1603년 『형이상학적 과제』(Exercitationes metaphysicae) 그리고 코르넬리우스 마르티니의 1605년 『형이상학적 주해』(Metaphysica commentatio)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이들은 수아레즈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이에 따라 자바렐라의 종합적 방법과 일치된 것 가운데 이론학으로 자연 신학에 대한 루터주의의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첫 저작이 기쎈(Giessen)의 논리학과 형이상학 교수이며 루터주의자인 크리스토프 샤이브러(Christoph Scheibler)가 1621년 적은 『자연 신학』(Theologia naturalis)이다.
1598년 출판된 『제일 철학의 안내』(Isagoge in primam philosophiam)에서 마르부르그 대학의 교수인 루돌푸스 고클레니우스(Rudolphus Goclenius)는 두 가지 구분되는 학문, 즉 보편적 형이상학과 개별적 형이상학에 대하여 논의한다. 보편적 형이상학은 존재자와 그것의 속성 그리고 원리를 다룬다. 그러나 개별적 형이상학은 비질료적 존재자의 다양한 형태를 다루며, 이는 신, 예지체 그리고 인간 영혼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제일 철학’이란 명칭은 보편 형이상학, 즉 존재자에 대한 학문에 대한 것으로 한정한다. 반면 신에 대한 학문을 ‘형이상학’이란 용어로 제한하려는 것과 관련된 어려움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1613년 그의 『철학 용어집』(Lexicon philosophicum)에서 새로운 그리고 중요한 철학적 용어를 제시한다. 그는 추상(abstractio)을 다루는 장에서 형이상학은 제일 철학 혹은 존재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였고, 신을 다루는 형이상학적 논의를 ‘자연 신학’이며 이는 개별학문 혹은 특수학문으로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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