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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진정, 이 땅에 온전한 중세 철학 복원 연구가 진행되기 위하여...

진정, 이 땅에 온전한 중세 철학 복원 연구가 진행되기 위하여...


유 대칠

(토마스 철학 학교)


 중세 철학, 과연 이 중세 철학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철학자들이 바로 이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곤 합니다. 이러한 물음 또 중세 철학사에 대한 입장으로 접어 들 수 있습니다. 중세 철학사란 무엇일까요. 일부는 신학사와 중세 철학사는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또 다른 극단적 일부는 더욱 더 극단적으로 중세 철학사는 신학사 그 이외 아무 것도 아니라고도 합니다. 만일 중세 철학사가 신학사에 지나지 않는다면, 중세 철학사는 철학사에서 제외되어야하거나 중세 ‘철학’이 아니라, 중세 ‘신학’이라고 불려야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광범위한 중세 철학 복원은 대체로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걸출한 한 명의 스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알베르투스 마뉴스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으로 다루어지고 정리되었고, 보나벤투라 연구도 상당 부분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과의 비교 속에서 다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철학사가들은 토마스 철학 이후 점점 개념론으로 접어드는 시대는 근대 철학의 여명기로 보는 것보다는 중세 철학의 몰락이라거나 황금기 철학의 쇠락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철학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드 리베라와 독일의 플라쉬가 그러한 대표적 인물입니다. 드 리베라는 알베르투스 마뉴스 연구에서 진정한 알베르투스 철학의 복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 아니라, 철학자 알베르투스 마뉴스로의 접근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고, 기존 철학사에선 황금기 철학을 쇠락으로 이끈 에크하르트와 같은 철학자들도 쇠락이 아닌 또 다른 형식의 중세 철학의 한 흐름을 주도한 인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의 연구와 그가 직접 정리한 철학사는 기존의 중세 철학사가들과 구분되는 새로운 시야를 우리에게 제공해줍니다. 플라쉬 역시 독일어권에서 이러한 흐름을 주도합니다. 그는 기존 신비 철학이란 이름으로 신비라는 신앙과 철학이란 이성의 어중간한 이름 속에서 신학으로도 철학으로도 대접받지 못하던 에크하르트의 철학을 합리성을 가진 철학으로 규정하며 분석해 갑니다. 사실 이 두 철학사가들의 관점은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과연 중세 철학의 진정한 복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 까요. 우리가 보는 철학사는 영웅의 철학사입니다. 몇 명의 철학적 영웅을 중심으로 진행되지요. 하지만 이러한 영웅들이 살아가고 고민하며 토론한 수많은 철학적 논적들 없이 이들이 영웅이 될 수 있었을까요. 진정한 복원은 영웅 중심이 아니라, 중세 철학에 접혀있는 수많은 주름들에 하나하나 접근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는 아니라도, 적어도 하나의 철학사적 문제를 고민한다면, 그 고민과 관련된 다양한 철학적 주름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주름을 무시하고, 단지 몇 명의 철학자들을 영웅이며 승리자로 여기고 철학사를 이해하려 한다면, 이것은 그 시대가 가진 다양성을 죽이고 남은 시체만을 부여잡은 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정 중세 철학을 복원하기 위하여 중세 무슬림과 중세 랍비들의 철학을 거시적 관점에서 함께 다루어야 합니다. 무슬림인 아베로에스와 아비첸나 등과 랍비인 마이모니데스에 대한 이해는 후기 중세 철학과 스피노자와 같은 근대 철학의 연구에도 매우 절실합니다. 앞으로 필자(유 대칠)도 보이겠지만, 후기 중세 철학이 고민한 존재의 일의성과 인식론 그리고 존재론은 중세 무슬림 철학과 절대 나누어 생각할 수 없으며,만일 이를 무시하고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본질적 사유의 근거와 토대는 이해하지 못한대 대강 그 모양만을 보고 어설프게 스케치를 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땅에서 중세 철학의 복원이 보다 깊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원전의 번역이 절실하겠지요. 이 일은 이미 많은 전문 연구가와 선생님들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으니 저와 같이 아직 미천한 놈이 이야기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더 많이 더 좋은 번역서가 나오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물론 한 권의 번역서가 나오면 그에 준하는 연구서가 함께 나온다면 더욱 더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