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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보기/중세철학자열전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Gregorius Nyssenus)

 

그레고리우스, 니사의 (그리스어: Ἅγιος Γρηγόριος Νύσσης 라틴어: Gregorius Nyssenus 아르메니아어: Գրիգոր Նիւսացի Grigor Niwsats'i 아랍어: غريغوريوس النيصي‎) (335 – 394 이후)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그리스도교의 주교이며, 성인이다. 그는 성 바실리우스(Basilius)와 성 엠밀리아(Emmilia)의 아들이며, 그의 형은 대 바실리우스(Basilius)이고, 그의 누나는 성 마크리나(Macrina)이다. 그는 수사학자(철학자)가 되었고, 테오세베이아(Theosebeia)와 결혼하였다. 그는 372년 니사의 주교가 된다. 그 이후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us)의 논박을 받았고, 폰투스(Pontus)의 집정관으로부터 교회의 재산을 남용하였다는 무고로 인하여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지만 대피하였으며, 그라티우스(Gratianus) 황제가 그를 다시 복직시켰다. 379년 그는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을 단죄한 안티오키아(Antiochia)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그 공의회에 결정에 따라서 팔레스티나와 아라비아 지방의 이단 문제로 인하여 파견되었다. 381년 그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아리우스 이단을 논박하였다. 또 니케아(Nicaea) 공의회를 재확인함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자로 오랜 시간 칭송을 받았다. 그의 이러한 신학엔 오리게네스(Origenes)와 같은 이들의 영향이 있었다. 680-681년 사이에 열린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그를 ‘교부들 가운데 교부’로 선포하게 된다.

그의 신학을 다룸에 있어 눈에 띄는 것은 ‘삼위일체 논의’와 ‘보편구원설’(그리스어: ἀποκατάστασις)과 관련된 부분이다. 삼위일체에서 그는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은 베드로와 바울로 그리고 요한과 같이 서로 다른 셋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일 수 있는가? 인간에게 동일한 종류 가운데 서로 다른 다수는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 그리고 성질 등에 의하여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오로지 물질적인 것에 적용될 뿐이며, 신과 같이 비물질적인 존재에 적용되지 않는다. 인간이 삼위일체에 대하여 다룰 때, 알 수 있는 것은 성자는 성부의 성자라는 것과 성부는 성자의 성부란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다른 위격(persona)을 생각함 없이 하나의 위격이 생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셋은 3 고리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보편구원설은 오리게네스의 영향 가운데 형성된다. 하지만 이 둘은 신에 관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오리게네스는 신을 유한한 것으로 정의한다. 유한한 것은 분명하게 정의되며 가지적인 것이다. 그러나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이를 거부한다. 만일 신이 유한하다면, 신은 가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신은 그 외부를 가지게 되며, 그 한계를 가지게 된다. 즉 신은 그 보다 더 큰 것 혹은 더 위대한 것도 생각되어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는 이를 거부한다. 신은 한계가 없는 존재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는 무한하다고 한다. 이러한 신에 관한 논의는 플로티노스(Plotinos) 등의 신플라톤주의 노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오리게네스는 영적 여행을 증대되는 조명의 과정, 신의 빛에 더욱 더 다가가는 과정으로 본다. 그레고리우스는 만일 누군가가 신(성부)와 소통하기 원한다면, 그는 성부와 실체(ousia)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적인 부자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신에 대한 어떤 미리 인식된 개념 없이 순수한 신앙을 가짐으로 이러한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레고리우스는 신성과 이 세계가 매우 역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인간이 그 가운데 ‘신의 모상’(imago dei)을 가지게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신이 내린 은총(gratia)을 대립적 구조로 보지 않았다. 이 둘은 상호 간에 통합의 관계로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