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폰세카 (Pedro da Fonseca, 라틴어 Petrus Fonseca (1528-99))
유 대칠
(토마스 철학 학교)
폰세카의 윤곽선
그의 시대에 ‘포르투갈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불리던 페드로 다 폰세카(Pedro da Fonseca)는 16세기 예수회 소속의 철학자이며, 신학자다. 토마스주의자로 교육받은 그는 그리스철학과 아랍철학 그리고 스콜라 전통의 철학에 있어 대가였다. 그리고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다루어진 여러 가지 철학적 혹은 신학적 문제에 대하여 그 자신의 독립적인 견해를 만들어간 인물이다. 특히 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에 있어 탁월한 면모를 보였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그의 저작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저작들 가운데 하나가 『8권의 변증론 정초』(Institutionum dialecticarum libri octo)다. 이 저작은 논리학과 관련된 논의들을 분명하고 포괄적이며 체계적으로 정리한 교과서로 당시에 읽혀졌다. 또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Metaphysica)를 해제와 주해를 더한 번역과 함께 내어놓았다. 그 이외 그는 논리학 입문서로 오랜 시간 읽혀진 『철학 입문』(Isagoge philosophica)이란 간략한 저서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읽혀졌다.
1. 폰세카의 인물 됨.
폰세카는 포르투갈에서 태어났다. 그는 1548년 21살의 나이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수도회의 수련생 시간을 보내고, 1551년 24살의 나리로 새로운 새워진 에보라(Évora) 대학에 등록한다. 1552년과 1555년 사이 그는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1552년과 1553년 사이엔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1555년부터 1561년까지 그는 당시 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던 코임브라(Coimbra) 대학의 인문학 예수회 소속 단대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이 가운데 마지막 시기에 그는 코임브라의 진로(Cursus Conimbricensis)에 대한 생각을 장려했으며, 이는 그 이후 그 대학의 예수회 학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현실화된다. 1561년에서 1564년까지 그는 예수회와 관련된 다양한 곳에서 행정적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1570년 그는 신학으로 에보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것에서 총장(chancellor)이 되었다. 1572년에서 1582년까지 그는 로마에서 예수회와 관련된 일을 수행했으며, 로마에 거부하는 동안 그는 ‘연구의 계획’(Ratio studiorum)에 대하여 다른 이와 함께 공동 작업 한다. 이 ‘연구의 계획’은 이후 예수회에 의하여 채택되었다. 1582년 포르투갈로 돌아온 그는 리스본의 수도원장이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또 다시 로마에 가게 된다. 철학에선 예수회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야 한다고 결정한 제정함에 참여한 예수회의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는 이후 1599년 리스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2 논리학
철학에서 폰세카의 기여함을 이야기한다면, 두 가지 중요한 부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다. 논리학에서 그는 두 편의 큰 저작을 남겼다. 첫 째는 『8권의 변증론 정초』다. 이는 1564년 리스본에서 출판되었으며, 1625년까지 52회나 더 재판되었다. 이는 당시의 출판 상황 등을 감안하면, 거의 철학계의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저작은 예수회에 의하여 교과서로 채택되어 읽혔으며, 그 영역은 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극동(極東, the far east)에 이른다. 두 번째 저작은 『철학 입문』이다. 이 저작은 1591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1623년까지 18번 재판되었다. 그리고 이는 포르피리우스(porphyrios)의 『이사고게』(Isagoge)에 대한 단순한 주해 그 이상의 작품이다. 폰세카는 저작은 이 저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즉 오르가논에 대한 새로운 안내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의 짧은 서론 이후에 그는 보편자, 개별자 그리고 추상에 대한 논의를 6장에 걸쳐 다루었다. 이어서 그는 5장에 걸쳐서 포르피리우스의 다섯 가지 보편자를 다룬다. 즉 류(genus), 종(species), 차이(differentia), 고유성(proprium) 그리고 우유(accidens)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12장에 걸쳐서 보편자의 또 다른 종을 다룬다. 이는 삼위일체와 육화와 관련된 논의이며, 이는 철학자들의 몫이 아닌 신학의 논의다.
『변증론 정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 논리학에 대한 체계적인 교과서였다. 1권은 32장으로 구성되며, 그 가운데 폰세카는 논리학의 필요성과 명칭 그리고 본성을 연속적으로 다룬다. 그러면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변증술과 그가 이야기하는 논리학을 구분짓는다. 이어서 그는 명사와 동사 그리고 기호를 가진다. 또 기호로서 개념에 대하여 논의한 후에 그는 유비성을 포함하는 다의성과 일의성, 구체 명사(concrete)와 추상 명사(abstract), 내포 명사(connotative)와 절대 명사(absolute), 공통 명사(common)와 단수 명사(singular), 초월(transcendent)과 초-초월(supertranscendent), 긍정과 부정, 모순과 비-모순 그리고 제일 지향(prima intentia)과 제이 지향(secunda intentia)이란 주제로 명사를 다룬다. 2권에서 폰세카는 보편자를 다루며, 같은 차원에서 『이사고게』에서 다루어진 류, 종 등을 다룬다.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10 가지 범주를 추가로 다룬다. 3권에서 폰세카는 명제의 다양한 형태에 대하여 다루며, 4권에선 구분, 5권에서 정의, 6권에선 추론(consequence), 논증(argumentation), 판단(judgment), 삼단논법(syllogisms) 등을 다룬다. 7권에선 변증법적 추론을 다룬다. 8권에선 오류와 거짓(fallacies)을 고찰한다. 폰세카 역시 중세 논리학의 전통에 따라서 지칭(suppositio)과 통칭(appellatio) 등을 자세히 다루였다.
『변증론 정초』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과 관련되어 많은 영향을 주었다. 페레이라 고메즈(Ferreira Gomes)는 『변증론 정초』엔 아리스토텔레스가 600번 이상 인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의 저작은 너무나 훌륭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저작을 쓸모없이 만들 만큼 그렇게 잘 아리스토텔레스를 망라한다고 한다.
3 형이상학
폰세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정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러한 작업은 그의 저작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대한 주해』(In libros Metaphysicorum Aristotelis Stagiritae)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 저작은 그 자신이 구한 최고의 수사본과 출판된 판본으로부터 편집한 그리스어 비판본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어 원문에 그는 훌륭한 라틴어 번역과 주해를 함께 소개하였다. 그러나 13권과 14권은 해제나 주해 없이 단지 그리스어 원문과 라틴어 역문만을 소개하고 있다. 이 형이상학 저작을 통하여 그는 문헌학적 열정은 물론이고, 그의 존재론적 깊이 익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스콜라 철학의 전통 속에서 형이상학적 고민을 하였다. 그리고 방식에서도 반대 견해와 옹호의 견해를 소개하고, 용어와 개념을 분명히 함으로 그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철학적 근거 가운데 주어진 견해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 가능한 반론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이러한 철학적 논의의 과정 가운데 우리는 그가 그리스 철학과 아랍 철학 그리고 스콜라 철학의 전통을 능함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핫이슈 가운데 하나인 신이 형이상학의 대상인가의 문제에 대하여 폰세카는 한 마디를 한다. 형이상학의 대상이 신과 분리된 실체 혹은 범주 가운데 존재자라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를 논박한 후에 폰세카는 형이상학의 제일 대상 그리고 적절한 대상이 신과 피조물에 공통되는 한에서 존재자라고 한다.(『형이상학에 대한 주해』4권, 1장 1질문 3) 이러한 방식에서 존재자는 유비적이다. 비록 그것이 하나의 류 가운데 종에 대하여 이야기되고, 하나의 종 가운데 다수의 개별자에 대하여 이야기되는 것과 같이 일의적일지라도 말이다. 신과 피조물 사이에 그리고 피조물의 실체와 우유 사이에 그리고 우유적인 것들 사이에 또 실재적 존재자와 이성의 존재자 사이에, 이러한 것들 사이에 존재자는 비례(proportion)와 속성(attribution) 양자의 유비성에 의하여 우유적이다. 신이 그의 존재자와 관련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비례 가운데 피조물의 실체는 그것의 존재자와 관련된다. 유사하게 마치 피조물의 존재자와 그것의 존재자와 관련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비례 가운데 우유는 그것의 존재자와 관련된다. 다시 말해서, 우유 가운데 하나의 것은 그것의 실존과 관련되어 배치되며, 그렇게 각각의 우유들은 그것의 실존과 관련된다. 그리고 실재적 존재는 그것의 존재자와 관련되어 배치되며, 그렇게 이성의 존재도 그것의 존재자와 관련되어 배치된다.『형이상학에 대한 주해』4권, 2장 1질문 5) 속성의 유비는 세 번째의 것과 관련되어 두 가지 것의 우유로서 우유 사이에서 얻어진다. 한편 우유와 실체 사이에 그것은 하나와 다른 것 사이에 우유가 있다. 같은 것이 그것들 자체 가운데 이성의 존재자에 대하여도 참이며, 실재적 존재자와의 대조 가운데도 참이다. 왜냐하면 이성의 존재자는 실재적 존재자에 우유가 실체에 의존하는 것 보다 덜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한다면, 피조물은 오직 속성 혹은 신을 언급하는 것에 의해 존재자다.
피조물은 신과 관련된 속성에 의하여 오직 존재자다. 폰세카는 형상적 개념(formal concept)과 대상적 개념(objective concept)을 구분한다. 형식적 개념은 인식된 실재에 대한 현실적 유사성(actualis similitudo)이다. 이는 그 실재를 표현하기 위하여 지성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대상적 개념은 형상적 개념에 의하여 파악된 것인 한에서 이해되어진 것이다. 존재자에 대한 형상적 개념과 대상적 개념은 동일하다.
본질과 존재(혹은 실존 esse 혹은 existentia)는 신 가운데서만 오직 완벽한 단일성을 이룬다. 그 이외 모든 피조물의 경우에 본질과 존재는 구분된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 구분되는 것과 같은 그렇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폰세카는 피조물의 본질은 그것의 궁극적으로 본성적인 방식 혹은 양상(ultimate intrinsic mode)으로부터 하나의 사물로서 그것의 실존과 구분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견해에서 그는 할레스의 알렉산더(Alexander de ales)와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를 따라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형이상학에 대한 주해』4권, 2장 3질문 4). 폰세카의 이러한 입장은 다소간 양상에 대한 수아레즈의 입장을 준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형이상학의 대상에서 제외된 우유적 존재자(entia per accidens)와 이성의 존재자를 살펴보자. 우유적 존재자는 서로간의 어떤 관계를 결핍하는 둘 혹은 그 이상의 존재자의 열거(juxtapositio)다(『형이상학에 대한 주해』4권, 1장 1질문 3). 이성의 존재자는 그것들이 이성의 대상인 한에서도 실존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러한 것들이다. 폰세카는 그러나 고유한 의미에서 이성의 존재자와 허구적 존재자(fictitious)를 구분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성의 존재자는 실재적 존재자에 대하여 여전히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을 이성의 대상으로 이성에 의존하여 다루어지는 그러한 존재자이다. 예를 들어, 류의 개념, 종의 개념과 같이 인간, 고양이, 개, 소, 말, 돼지가 그렇다. 이러한 것은 이성의 존재자다. 반면 허구적 존재자는 그것이 실재적 존재자에 대하여 이야기될 수 없는 것으로 이성의 대상으로 이성에 의존하여 다루어지는 그러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키메라, 해태, 유니콘, 청룡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는 이성의 존재자의 대상이 아니라, 허구의 존재자들의 대상이다(『형이상학에 대한 주해』4권, 7장 6질문 5).
3.1 이것임과 공통 본성
이것임(haeceeitas)에 대하여 근대에 들어 가장 두드러지게 주장한 인물은 폰세카다.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에서 그는 ‘이것임’을 다룬다. 16세기와 17세기 그리고 많은 스콜라티쿠스와 같이 폰세카는 한 명의 선배 철학자의 추종자만으로 한정되는 철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스콜라티쿠스와 같이 그는 다양한 것을 그의 선배 철학자로부터 배운다. 다음을 보자.
“개별화의 원리는 어떤 특정의 긍정적 차이며, 이것은 근본적으로 불교통적(incommunicable)이며, 종이 더해질 때, 그 가운데 개별자들이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차이를 다르게 ‘이것임’이라 부른다.”(『형이상학에 대한 주해』5권, 6장 5질문 1)
폰세카는 여기에서 부분적으로 토마스주의자인 카예타누스(Cajetanus)가 이야기하는 ‘이것임’을 거부하고 있다. 카예타누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것임은 플라톤과 하얀 천조각의 이것임보다 더 유사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임을 어떤 것들 사이 서로간의 유사성에 초점을 둔다(『존재자와 본질에 대하여 주해』, 2장, 5질문). 그러나 폰세카는 두 개의 이것임, 예를 들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이것임 사이의 유사성은 그 두 이것임이 수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수반한다고 한다. 수적으로 각각의 것이 자기 동일성을 가진다는 것이며, 이것을 설명함에 이것임을 사용한다. 비록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사이의 이것임이 플라톤과 하얀 천 조각 사이의 이것임보다 더 유사성을 가지지만, 근본적으로 이들 사이에 차이가 주어져 있으며, 각각은 수적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보기 > 중세철학자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콜라우스 타우렐루스 (Nicolas Tourot, Nicolaus Taurellus) (0) | 2010.09.30 |
---|---|
베네딕투스 페레이루스 (Benito Pereira, Benedictus Pereirus) (0) | 2010.09.30 |
로버트 홀코트 (Robert Holcot) (0) | 2008.12.14 |
크라카우의 베네딕트 헷세(1389-1456) (0) | 2006.07.22 |
15세기 크라카우 대학의 철학자들과 학파 (0) | 2006.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