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의 『요한복음 주해』 14장 2렉씨오
유 대칠 옮김
<토마스 철학 학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1868. 그가 말한 바와 같이 그 길은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이며, 그렇게 그는 말하십니다. “나는 길이다.” 이 말은 진정 참된 것입니다. 이는 그를 통하지 않고 우리는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서 적힌 바와 같이 말이죠. 이 말씀은 또한 혼란스러워하는 제자들의 불확실함을 안정시킬 뜻으로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목적지로부터 떨어진 것이(distans a termino) 아니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것과 (하나로) 연결된 것(Coniuncta)이기 때문이죠. 그는 여기에서 진리(veritas)이며 생명(vita)임을 더합니다. 그러므로 그 자신은 길(via)이며 동시에 목적지(terminus)입니다. 인간됨에서 볼 때,(secundum humanitatem) 길이며, 신성에서 볼 때(secundum divinitatem) 목적지입니다. 그런 까닭에 인간의 측면에서 ‘나는 길이다’고 말한 것이며, 또한 신의 측면에서 ‘진리’와 ‘생명’을 더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하여 이 길의 목적지는 적절하게(convenienter) 가리켜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길의 목적지는 인간 열망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terminus huius viae finis est desiderii humani). 또한 인간은 두 가지 것을 특히나 열망합니다. 첫 째는 인간의 인식이며(veritatis cognitionem), 그것은 인간 그 자신에게만 고유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것의 공통된 것이죠. 그리스도는 진리 인식에 이르는 길입니다(Christus autem est via perveniendi ad veritatis cognitionem). 이는 여전히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서 “주여! 진리 가운데 나를 가르치시고, 당신의 길을 걷겠나이다.(deduc me, domine, in veritate, et ingrediar in via tua)”라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Christus etiam est via perveniendi ad vitam). 이는 여전히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서 “생명의 참된 길을 알려주었습니다.(notas fecisti vias vitae)”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길의 목적지는 진리와 생명에 의하여 가리켜집니다. 앞서 살핀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를 두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우선 그 자신이 생명입니다. 그 자신 가운데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빛(lux hominum)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빛이 진리입니다.
1869. 그리고 이 두 가지가 고유하게 그리고 그 자체로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그 자체로 그에게 속하며, 그 자체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지성과 실재의 일치이외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이는 지성이 존재하는 것 그대로 실재를 파악할 때 일어납니다(fit quando intellectus concipit rem prout est. Veritas). 그러므로 우리의 지성은 우리의 말에 속하며, 이것이 그것의 개념화(conceptio)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말(verbum nostrum)이 참된 것이라 해도 그 자체로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참이 아니기 때문이며, 개념화 된 실재에 일치함에 의하여 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적 지성의 진리는 신의 말씀(verbum Dei)에 속합니다. 그러나 신의 말씀은 그 자체로 참이며, 실재(인식 대상)에 의하여 헤아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재는 그것들이 말과 유사한 것이라 헤아려짐 가운데 참입니다. 그러나 신의 말씀은 그 자체로 참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진리에 덧붙지 않고 인식을 인식할 수 없으며, 진리를 인식하고자 열망하는 이 모두가 이 말씀에 덧붙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고유하게 생명 또한 그에게 속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부터 어떤 활동을 가지려는 모든 것들이 살아있는 것(vivens)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지 않음은 또한 스스로 움직임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 말 됩니다. 생명의 작용 가운데 지성적 작용은 특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은 살아있는 것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그것의 작용 역시 어떤 생명 (현상)이라 불립니다. 신 가운데 사고함(intelligere)과 지성(intellectus)은 동일합니다. 그렇기에 아들, 즉 아버지 지성의 말씀인 그는 그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길로 자신을 지시하며, 그 목적지와 하나를 이룬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바로 그 자신 가운데 열망되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분이며, (그 길의) 목적지이고, 진리이며 생명으로 존재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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