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장의 인문학 이야기 1
인문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안다고 해도 기껏 돈이 되지 않으니 관련 학과에 자녀를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대학의 인문학은 몰락하고 있다. 철학과와 사학과가 문을 닫는 일이 있다. 직접 눈으로 봤다. 그런데 대학의 외부에선 인문학의 불이 일어나고 있다. 다양한 인문학 공유 공간들이 생기고 여러 저기에서 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인문학적 고민이 사회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의 주장은 주류 인문학, 즉 강단 인문학이 힘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사전적 정의, 민중과 떨어진 교실 속 지식인의 머리 속에 인문학이 무엇인지 모른다지만, 이것도 진짜 인문학의 죽음이 아니라, 단지 강단에서 주어진 인문학적 지식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일 뿐이다. 진짜 인문학적 고민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일어나고 혁명을 일으키고 있지 않지만, 더 무섭게 서서히 아래로 부터 일어나고 있다. 강단 사학과 다른 재야 사학자들의 연구소가 있고, 그들의 연구 결과물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으며, 강당 철학과 다른 또 다른 철학 연구 공간이 힘을 내고 있는 것을 보자. 교수나 대학원생과 같은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아니라, 대학 연구소의 외부에서 서서히 인문학이 일어나면서 대학과 구분되는 그들의 인문학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도그마적 논리를 따르지 않고 다양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대입이나 취업이란 중압감 없이 자유롭게 진정 알고 싶어서 하는 공부라서 인지 재미 삼아 행해지는 공부가 서서히 힘을 내고 있는 것이다. 또 다양하다. 들뢰즈를 읽는 이가 있고, 공자와 노자를 읽는 것도 있다. 그리고 대학 외부의 인문학은 단지 과거 인문학적 지식을 암기 정리하는 정도를 넘어 새로운 인문학적 생산품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중들이 몰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과를 다녀도 그저 옛날 철학자들의 사상을 정리 요약한 것을 암기하는 것에 그쳤지만, 외부의 철학은 그렇지 않고, 직접 그 철학자의 글을 읽고 깊이 고민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입장에 맞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자신의 삶에 힘이 된다. 인문학적 고민은 이렇게 개인에게 일어나고 그 개인은 여럿이며, 그 여럿이 서로 자신의 시야를 다양하게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시야의 공존! 인문학적 고민은 이 사회를 그렇게 만드록 있다. 단지 두 줄기 이념 가운데 자신의 편입하고 강제된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각자가 각자의 시야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토론한다.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인문학적 고민이다.
비록 대학의 인문학을 선택하고 공리화된 인문학적 지식에 관심이 없어져도, 이 사회는 다양한 인문학적 관심과 고민이 일어나고 있다. 희망이다. 과거와 같이 거대한 사회적 차원의 인문학적 고민에 의하여 하나의 큰 길을 주고 그 길을 가라고 강제하는 시대가 아니라, 저마다의 다양성이 공존하며 그 공존이 새로움을 만드는 그런 사회가 되고 있다. 희망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과 그러한 것이다. 희망을 만드는 인문학! 개인의 삶에 녹아들어 개인에게 인문학적 고민을 야기하게 하는 그런 인문학! 이제 그런 인문학의 시대가 오는 것 같다! 요즘 라틴어로 중세의 글을 열심히 읽고 있다. 교통 사고로 머리가 아프지만, 그냥 앉아서 머리 아픈 것보다 고민을 하며 글을 읽으며 아픈 것이 더 행복하다. 그 행복은 나의 인문학적 고민의 결과로 주어진 나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다. 그리고 희망이다. 그래서 웃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인문학의 새로운 희망의 공간이다.
2009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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