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읽는다.
- 실용주의 철학자 박제가, 조선의 미래를 향한 외로운 고민들.
조선이란 나라가 망하는 과정은 참으로 서글프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내적 발전의 기회를 놓치고 서서히 무너져 가니 과정이니 말이다. 조선 후기 학자인 박제가는 그의 『북학의』에서 그 시기를 그냥 보내는 것이 아깝다고 토로한다. “지금 천하는 동쪽 일본에서 서쪽 서역에 이르기까지, 또한 남쪽 자바에서 북쪽에 이르기까지 병란이 없기 200여년이 되었다. 이는 과거에 없던 일이다.” 이러한 태평의 시기를 두고 박제가는 오히려 정사를 맡은 신하들이 태평을 누릴 시간이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만일 이 언젠가 평화가 깨어진다면, 그 때에는 미래를 향한 준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가 깨어지기 전,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역사는 잔혹하다. 평화는 깨어지고 동북아시아엔 일본에 의한 전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박제가의 걱정이 무색하게 조선의 양반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을 가지며, 그 태평의 시기에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 시기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양반 선비들의 본거지인 서원이란 곳은 미래를 향한 준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당시 양반 문화를 대변하는 서원을 박제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서원이란 본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며 유학의 학문을 높이는 곳이다. 그런데 병역을 피하려는 이들을 숨겨두고 법을 어기며 술을 만들고서도 의연히 있다.” 서원이란 본래 학문을 하는 곳이지만, 후기 조선에 이르러서는 상당수 양반의 기득권 유지 담론의 생산 공장에 지나지 않았다. 박제가의 눈에 서원은 학문의 공간이라기보다 오히려 타락의 공간이며, 심지어 병역 기피의 공간으로 사용되곤 했다. 이러한 서원의 주인공들, 즉 양반과 사대부를 두고 박제가는 광대에 비유하며,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그는 조선이 좀처럼 찾아오기 힘든 태평의 시기에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배층이란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에만 매달리고, 태평히 있는 것을 염려하고 걱정한다. 그렇기에 더욱 더 강력히 그는 북학파의 이론을 만든 듯이 보인다. 태평한 시기에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청나라를 통하여 새로움을 유입해야한다고 본 것이다. 이 새로움이 조선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 조선을 무너지지 않게 할 것이라 박제가는 확신한 듯 하다.
박제가는 당시 왕에게 실질적으로 조선의 미래를 향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우선 답답하고 기득권만을 아는 선비의 수를 줄려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레 통행을 장려해야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어찌 된 일인지 과거 유용하던 수레는 사라지고 과거 없던 무용한 선비만이 많다”며 비실용적이며 역사 속에서 그저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선비들을 질타한다. 사실 우린 고조선때 부터 수레를 사용한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과거의 실용적 유산은 없어지고, 비실용적인 것만이 남았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았겠는가.
또한 그는 “놀고먹는 인간들이란 나라의 큰 좀벌레이다”라 한다. 분명 선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눈에 이 선비들이란 인간들은 국가에 쓸모도 없고, 그 이론도 실용적이지 않다. 그들이 달달 외우고 있는 지식이란 것도 실용적이지 않으며, 과거의 것이기에 새로움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나라가 이들을 등용하여 인재로 삼으니 박제가의 눈에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눈에 진부한 사서오경을 그것도 진의를 알지도 못하면서, “시험 제목만을 생각하고 그 글을 적으며, 그 글의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인재로 뽑히니 그 시험이란 것은 허술”하기만 하며, “제비뽑는 것만도 못하다”할 것이다. 이런 이들이 나라 일을 하게 되니, 그 머리에 생각 없어 오로지 문벌과 붕당으로 자기 기득권 싸움만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이들이 하는 생각이라곤 오직 기득권뿐이다. 기득권을 옹호하려는 이들은 새로움을 거부한다. 오직 과거의 형태 그대로 자신들의 기득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사회만을 추구할 뿐이다. 이들에게 새로움이란 조선의 발전일 수 있지만, 자신들이 요구하는 고정된 사회의 적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과거의 가치관을 강하게 옹호한다. 이런 발상, 즉 과거 지향적인 이 같은 발상의 극단은 이미 사라진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에 대한 사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청나라를 멸시한다. 박제가는 이 같은 발상을 그의 실용주의적 발상에 근거하여 논박한다.
예를 들어, 조선 사람들이 중국의 발전한 문물은 보지 않고, 중국이 과거 우등한 한족의 명나라가 아니라,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라며 비꼰다는 사실에 박제가는 비웃음을 보낸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지금 중국, 즉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이라 주장한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을 오랑캐가 어기며 그곳엔 철학자도 없고 그저 천하디 천한 문화라 여긴 조선의 지배층을 박제가는 비웃는다. 만주족에도 퇴계와 같은 철학자가 있고, 석봉과 같은 서예가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박제가의 눈에 이미 사라진 명나라는 대단하고, 지금 있는 청나라는 오랑캐가 천하다고 생각하는 조선의 선비는 차라리 없는 것이 조선에 더 도움이라 보였다. 그런 발상을 하는 양반의 속맘은 사라진 명나라에 대하여 조선이 사대하듯이 명분 없이 있는 당시 조선의 지도층도 기득권을 유지하며, 백성들에게 숭상받기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제가는 청나라니 조선이니 중화니 오랑캐니 하는 탁상공론을 넘어 이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 그 가운데 실용적인 것을 취하자고 한다. 즉 모두는 같은 선상에서 평가하고, 그 가운데 우리 조선의 미래에 적절한 것을 수용하자는 것이다.
박제가에게 가장 큰 적은 선비란 이름의 양반 계급이었다. 이들은 기득권만을 유지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위한 담론을 만들 양성하였다. 수모적인 사대사상을 조장하며, 새로운 문물을 멀리 하고 기존의 사회 질서 속에서 자신들만의 조선을 꿈꾸었다. 역사적으로 박제가는 결국 이들에게 패배하였다. 박제가가 조선의 기득권자들에게 미래를 향한 준비를 희망하던 그 시기, 일본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 가며 외세에 대한 나름의 정체성을 마련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기득권자들의 강력한 자기 옹호와 자기 보호에 의하여 그 준비 기간을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접어 두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아시아 유일의 강대국이 된 일본에게 침략을 허락하고 말았다.
박제가의 걱정, 그 걱정을 조선을 담아 내지 못했다. 실용보다는 여전히 과거의 명분, 즉 고정된 자기 정체성에 집착하려는 양반과 선비 앞에 박제가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토마스 철학 학교 틀 밖 교실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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