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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철학의자리

바디우의 (전후) 프랑스 철학의 모험

 

프랑스 철학의 모험

(The Adventure of French Philosophy, New Left Review 35)


알랭 바디우 적고

유 대칠 옮기다.

(토마스 철학 학교 틀 밖)


[역자는 현대 프랑스 철학 전공자가 아니다. 단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익숙한 이름, 사실은 들뢰즈를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알랭 바디우의 그리 길지 않은 글을 번역한 것이다.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한편 역자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역설과 함께 현대 프랑스 철학에 관한 이와 같은 고찰을 시작해 본다. 이는 또한 가장 보편적인 것이며, 동시에 가장 특수한 것이기도 하다. 헤겔(Hegel)은 모든 것에 속하는 절대적인 보편자와 구체적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특수적 보편자라 부른다. 철학은 하나의 좋은 예이다. 절대적 보편자 그 자체는 모든 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으며, 어떤 예외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 가운데 강하게 문화와 국가적 특수성이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가 공간과 시간 가운데 ‘철학의 순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 철학은 이성의 보편적 목적과 동시에 완벽하게 특별한 경우 가운데 그 자체가 드러나는 것 이 둘이 있다. 특히 두 가지 인상적이고 철학적 경우들이 잘 알려진 것의 예를 보자. 우선 첫째, 파르니데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사이 고전 그리스 철학의 그것, 기원전 5세기로부터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뛰어난 창의적이 근본적인 때이며, 궁극적으론 매우 짧게 있었던 그것이다. 두 번째, 피히테와 셀링을 경유하여 칸트와 헤겔 사이 독일 관념론이 그것이다. 또 다른 특별한 철학적 순간, 즉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의 그것이다. 이는 더욱 더 강하게 창조적이고 짧은 시간 동안 응축된 것이다. 나는 더 국가적이고 역사적 테제의 변호를 제안한다. 나 자신이 포함되어지는 것을 옹호하는 가운데 20세기 하반기 프랑스 철학의 순간, 고대 그리스와 계몽시 독일의 예에 비견되어지는 유사한 것이 있었고 혹은 있다.


사르트르(Sartre)의 근본적 작업인 『존재와 무』는 1943년에 나타났으며, 들뢰즈(Deleuze)의 마지막 저서인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1990년대 초기의 것이다. 프랑스 철학의 순간은 이들 두 사이 사이에서 발전하였고, 여기에선 사르트르와 들뢰즈와 마찬가지로 바슐라르(Bascelard)와 메를로 퐁티(Merleau-Ponty),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 알튀세르(Althusser), 푸코(Foucalt), 데리다(Derrida) 그리고 라캉(Lacan)과 나도 포함된다. 아마도, 시간을 말할 것이다. 비록 만일 그러한 프랑스 철학의 순간이 있었었다면, 아마도 나의 위상은 그 순간의 가장 마지막 대표자 정도일 것이다. 이들 사르트르의 근본적인 단절의 기여와 들뢰즈의 마지막 저서 사이 놓여있는 저서의 전체는 ‘현대 프랑스 철학’이란 용어에 의하여 여기에서 가리켜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구체적이며 보편적인 것 양자의 철학적 창조성의 새로운 순간을 구성하였다는 것을 논의하고자 한다. 그 문제는 이 노력을 증명한다. 1940년과 20세기 말 사이 프란스에서 그리고 철학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 앞서 인용된 그러한 혹은 10명의 이름을 둘러싸고 무엇이 일어났는가? 우리가 실존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이며, 구조주의와 해체론은 무엇인가? 역사적이고 지성적인 단일성이 그 군단에 존재하였는가? 만일 있었다면, 어떤 한 것인가?

나는 네 가지 서로 다른 방식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려 한다. 첫째로 기원이다. 즉 이 순간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는 문제이다.  앞서 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탄생은 무엇인가? 다름으로 프랑스 철학이 맡은 근원적인 철학적 작업은 무엇인가? 셋째로 이 철학자와 문한에 관한 근본적 의문과 결과적으로 철학과 문학의 더 일반적 연관성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 전체를 통틀어 철확과 정신분석학 사이 일정한 논의가 그것이다. 기원, 작업, 방식과 문학 그리고 정신분석학. 네 가지 수단에 의하여 형대 프랑스 철학을 정의하고자 한다.


개념과 내적 삶


이 순간의 철학적 기원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20세기의 출발점에서 프랑스 철학 가운데 두 대조적인 흐름의 출현이 일어난 근본적인 구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1911년,  옥스퍼드에서 유명한 강의를 했다. 이는 『사유와 운동(La pensee et le mouvement)』이란 논문집으로 드러난다. 1912년,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브랑슈비크(Brunschvigq)는 『수리철학의 흐름(Les etapes de la philosophie mathematique)』을 출간하였다. 2차 세계대전 직전 이들 중재는 온전히 구분되는  방위의 실존을 증언한다. 베르그송 가운데 우리는 생명의 내재성의 철학(philosophy of vital interiority)이라 불릴 수 있는 것과 존재와 생성의 동일성에 관한 테마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과 변화의 철학 역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방위 들뢰즈에 이르는 20세기 철학을 통틀어 지속되어진다, 브랑슈비크의 경우 우리는 개념에 근거한 수학의 철학을 찾는다. 사고와 상징에 관한  철학적 형식주의의 가능성, 이는 유사하게 그 세기에 꾸준히 다루어진다.  특별히 레비스트로스와 알퀴세르 그리고 라캉이 그러한 인물이다.


이 세기의 시작으로부터 프랑스 철학은 구분되고 변증론적 특성을 제시한다. 한 면에서 생의 철학이고, 다른 면에선 개념의 철학이다. 삶과 개념 사이 논쟁은 이어지는 이 세기 절대적인 중심적 역할을 했다. 어떤 그러한 것이 논의는 인간 주체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왜냐하면 한번에 살아있는 유기체와 개념의 창조자, 그 주제는 내적이며, 동물적이고, 유기체적 생과 관련된 것이고 그 사고와 창조성과 추상의 능력 양자에 대하여 질문되며, 이 두 가지 경향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몸과 관념의 관계성 그리고 생과 개념의 관계성이 이러한 주제에 관한 의문의 언저리에서 형성되어진다. 그러므로 베르그송과 브랑슈비크 사이 내적 대립으로부터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전체적 발전이 구성된다. 우리는 다소 전투부대를 피폐하게 하는 전쟁터와 같은 것이란 칸트의 은유를 전개해 본다면, 20세기의 중반 이후 동안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그 주체에 대한 의문의 언저리에서 구성되어진다.

그러므로 알튀세르는 주체 없는 과정으로 역사를 그리고 관념적 범주로 주제를 정의한다. 데리다는 하이데거를 해석하는 가운데 형이상학의 범주로 주체를 고려하였다. 라캉은 주제의 개념을 만들어내었고, 물론 사르트르와 메를리 뽕티는 절대적으로 주체에 대하여 중심적 역학을 할애하였다. 생과 개념 사이 관계성 가운데 그 논쟁을 다루기에 프랑스 철학의 순간의 첫 정의는 그러므로 인간 주체 전반에 대한 논쟁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기원에 관한 의문을 시간적으로 더 위로 올라가며 데카르트적 전통과의 단절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후 철학적 순간 주체 범주의 철학적 발명가인 데카르트의 중요성과 그 이념에 관한 서사적 논의로 읽혀질 수 도 있다. 데카르트는 몸, 영혼-기계 그리고 순수한 반성에 대한 이론가였다. 그러므로 그는 주체에 대한 형이상학과 현상의 물리학을 고려하게 된다. 모든 위대한 현대 철학자들은 데카르트에 관한 글을 적었다. 실재적으로 라캉은 데카르트로의 회귀를 주장하였으며, 사르트르는 자유에 관한 데카라트적 논의에 관하여 주목한 만한 글을 적었다. 들뢰즈는 데카르트에 관하여 준엄한 적개심을 남겼다. 간단하게 전후 시기 프랑스철학자만큼이나 많은 데카르트가 존재한다. 또한 이 기원은 주체에 관한 의문에 대한 개념적 전쟁터로 프랑스 철학적 순간의 첫 정의를 가져다 준다.


네 가지의 움직임


다음으로 모든 이들 사상가에 공통된 지성적 활동을 확인해 보자. 나의 맘에선 분명하게 이 순간에 특별한 것인 철학함의 방식을 증명하는 것 네 가지의 절차의 윤곽을 나는 그려보고자 한다. 다른 어떤 방식에선 방법론적인 것이다. 첫 움직임은 독일적인 것이다. 혹은 오히려 독일 철학자들과 연관된 프랑스 철학자들의 움직임이다. 모든 현대 프랑스 철학자는 실재적으로 독일 철학의 전통에 관한 논의이다. 그것의 형성 시기는 코제브(Kojeve)의 헤겔에 관한 강의라 할 수 있는데, 라캉에 의하여 주목받았고, 또한 레비스트로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930년대와 40년대의 현상학(phenomenology)의 발견은 후설(Husserl)과 하이데거(Heidegger)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도, 사르트르는 베를린에서 처음우로 머무는 동안 이들 저자들의 책을 읽은 이후  자기의 철학적 관점을 분명하게 형성하였다. 데리다는 처음으로 그리고 최고로 철저한 독일 사상에 대한 첫째 해석가로 여겨진다. 니체는 푸코와 들뢰즈에게 근본적인 지시점이었다.


프랑스 철학은  독일 가운데 어떤 무엇인가를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헤겔과 니체, 후설과 하이데거의 저서를 다루고 있다. 그들이 구하고자 하는 바의 그것은 무엇인가? 말하자면, 개념과 실존 사이 새로운 관계이며, 이러한 이름의 배후에 수용하고자 하는 이것은 해체론과 실존주의 그리고 해석학이란 공통의 목적이 놓여있다. 이 관계를 변형시키거나 대체라는 것이다. 사유의 실존적 변형과 그것이 살아가는 토양과 그 사고의 관계, 이것은 그들 자신의 전통 가운데 중심적 이슈와 함께 부여잡은 프랑스 사상가의 흥미 가운데 강제되어졌다. 그러므로 이것이 ‘독일적 움직임’이다. 프랑스 철학의 전쟁터 가운데 번역의 관정 가운데  독일 철학의 전통을 의지하여 실존과 개념의 관계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을 찾게 된다. 더욱이, 독일 철학은 완벽하게 새로운 것으로 변형되어 버린다. 이 첫 번째 작용은 결과적으로 독일 철학 가운데 프랑스적 도용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작용 그 중요성이 덜 하지 않은 것으로, 과학에 관한 관심에서 기인한다. 프랑스 철학자들은 반성 혹은 인식의 대상이 아닌 생상적이거나 창조적인 활동성의 방식이란 것을 검증함으로 지식의 철학의 독점적인 영역으로부터 학문을 떼어내고자 하였다. 그것은 지식의 핵심을 넘어 멀리 간 것이었다. 그들은 창조적 사유의 실천으로 그것을 헌정하는 발견과 변형의 형태를 위한 학문을 의문하였다. 드러난 현상의 구성으로보다 오히려 예술 행위와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지식의 영역으로 창조성의 그것에로 학문을 전환하는 작업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예술에로 더욱 더 가까이 이끄는 작용, 이는  학문과 예술적 창조성 사이를 가장 친밀하고 치밀한 방식에서 비교 탐구한 들뢰즈 가운데 최고의 표현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프랑스 철학의 구조적인 작용의 하나로 잘 드러나 있었다.


세 번째 작용은 정치적인 것이다. 이 시기의 철학자들은 모두 정치적 의문과 철학의 연대를 깊이 있게 시도하였다. 사르트르와 전후 메르를 퐁티 그리고 푸코와 알퀴세르 그리고 들뢰즈는 정치적 활동을 한 이들이다. 그들은 개념과 실존에 있어 신성한 접근을 위하여 독일 철학에로 행하였듯이 그렇게 그들은 개념과 행위 사이 새로운 관계를 위하여 정치학과 관련되었다. 철학과 정치적 상황이 연대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열망은 개념과 행위 사이의 관계 문제로 전환된다.


네 번째 작용은 철학의 근대화와 같이 행해졌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행적인 정부의 표어로부터 완전히 떨러졌다. 프랑스 철학자들은 근대성에 대한 깊은 매력을 드러냈다. 그들은 예술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발전을 쫒아간다. 비-회화적 그림, 새로운 음악, 연극, 추리소설, 재즈, 영화 가운데 강한 철학적 흥미가 존재하며, 근대 세계의 매우 강한 표현에 실려진 철학을 낳으려는 욕망 역시 있다. 격렬한 관심은 성(sexuality)과 삶의 새로운 방식과도 관련된다. 이 모든 것 가운데 철학은 개념과 예술의 생산 뿐 아니라, 사회 그리고 삶의 형식의 생산 사이 새로운 관계를 궁리하였다. 그러므로 근대화는 철학이 그 가운데 형식의 창조에 접근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새로운 방법에 관한 의문이다.


요약하자. 프랑스 철학의 순간은 독일 사유의  새로운 도용이며, 창조성으로 학문에 대한 관점이며, 극진적인 종리학적 참여 그리고 예술과 삶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모색에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개념의 새로운 위치와 배열을 구하고자 하는 공통의 시도를 가로 지른다. 그리고 개념과 행태의 움직임과 행위와 사고 그리고 실존와의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지는 것에 의한 외부 환경 사이의 관계를 대체하고자 한다. 철학적 개념과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광범위한 혁명을 구성하는 외부 환경 사이의 관계는 새로운 것이다.


글쓰기, 언어 그리고 형식


형식의 창조에 의한 형식과 철학의 내적 관계에 관한 의문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분명하게 이것은 철학 그 자체의 형식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다. 새로운 철학적 형식을 발견함 없이 개념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으며, 철학의 언어를 변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현대 프랑스 철학의 가장 강한 특징의 하나인 철학과 문학 사이의 툭수한 연관을 자극한다. 물론 이것에 관해서도 긴 역사가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프랑스 철학의 고전적 형태인 18세기의 철학자들로는 볼테르(Voltaire), 루소(Rousseau), 디드로(Diderot) 들로 알려진다.  이들 저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전후 일어난 이와 같은 연합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이들 프랑스의 저자들은 철학과 문학 가운데 독점적으로 할당되어질 수 없는 이들이다. 예를 들어, 파스칼은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위상을 가진 이 가운데 한 명이며, 또한 가장 깊이 있는 프랑스 사상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에서 다시 알랭(Alain)은 전적으로 고전 철학자들을 향하고 의지하였으며, 우리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문학과 더욱 더 가까이 관계한다. 이런 그에게 글쓰기 과정은 애무 중요하다. 그리고 그는 소설에 관한 많은 주해를 적었다. 예를 들어, 발자크에 관한 그의 글은 매우 흥미 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현대시에 관한 주해를 적기도 하였다. 특히 발레리(Valery)에 관한 글을 적었다. 다른 말로 20세기의 더 많은 전통적 형태의 프랑스 철학은 철학과 문학 사이 밀접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그들 역시 예술과 근대성 그리고 형식의 생산을 고려하는 관계를 혼합하는 데 열정적이다. 그들은 삶에 대한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고자 한다. 만일 그들의 작품들이 넓은 의미에서 미학적 프로그램이었다면,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철학적 프로그램을 위한 방식을 포장하였다. 라캉과 레비스트로스는 초현실주의자의 모임에 흔히 오갔다. 예를 들어, 이것은 복합한 역사가 있지만, 만일 초현실주의자가 프랑스의 미학과 철학 가운데 수렵되는 20세기의 첫 대표자라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개념을 위한 새로운 배치하며, 철학적 스타일과 표현 사이를 연결하는 직접적인인 것을 표시하고자하는 것을 찾고자 시도하는 가운데 그들 자신의 문학 형식을 발견하는 것이 철학이었다.


이러한 단계에 우리는 철학적 글쓰기 가운데 극적인 변화를 증언하는 것이다. 40년 동안 아마도 들뢰즈와 풀코 그리고 라캉의 글쓰기에 친숙해져 갔다. 우리는 그것이 드러내는 초기 철학적 스타일과 놀랄 만한 결렬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상실하였다. 이와 같은 사상가들은 자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데 열중하였으며, 산문을 창조하는 새로운 방식을 착안하였다. 그들은 작가가 되고자 하였다. 들뢰즈 혹은 푸코를 읽는 가운데 어떤 이는 전에 없던 문장의 수준에서 완전히 근원적인 사유와 구의 변화 사이를 연결하는 것을 시도한다. 그들의 공식화 가운데 새로운 긍정적 리듬과 놀라운 독창성이 있다. 데리다 가운데 언어에서 언어의 끈질긴 연결이 있다. 마치 언어 그 스스로 작업하는 것과 같이 그리고 사유가 단어 사운데 통하여 행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라캉 가운데 어떤 이는 말라르메의 구문만큼 유사하지 않은 그리고 명맥하게 시적인 휘황찬란하게 복합적 구문과 씨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표현의 변경과 철학적 문학 사이 경계를 이동시키려는 노력이 있다. 나와 같이 또 다른 혁신인 사르트르는 소설가이며 극작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프랑스 철학에서 이 순간의 특이성은 언어에서 기입된 다양한 기록 위에서 공연되었고, 문학과 철학 사이 그리고 철학과 연극 사이의 경계는 변화되었다. 어떤 이는 프랑스 철학의 목적의 하나는 그로부터 글이 쓰이는 새로운 장을 건설하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장은 문학과 철학이 구분되어지는 않는 그런 장이다. 이는 전문적 철학도 그러한 것으로 문학도 아닌 그런 영역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가운데 더 이상 철학과 문학이 구분될 수 없는 글쓰기의 한 종류이다. 그 장, 즉 다르게 말하면, 이곳은 더 이상 개념과 삶의 형식적 차이가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새로운 삶을 주는 이 글쓰기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 바로 문학적 삶이다.


반(反)-프로이드와 친(親)-프로이드


마지막으로 새로운 글쓰기의 이 발견 가운데 새로운 주체의 선언이 있다. 이 주체는 철학에서 이 형태의 창조와 주체를 둘러싼 싸움터는 재구성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더 이상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데카르트로 부터 지금 우리에게도 이어 내려온 의식 주체, 그것도 존재할 수 없다. 더 전문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반성적 주체이다. 현대 인간 주체는 어떤 애매한 것이며, 삶과 몸 가운데 더 혼합된 것이며, 데카르트의 방식보다 더 외연이 넓은 어떤 것이다. 주체는 생선의 과정 혹은 창조에 더 비슷한 것이며, 이는 그 자체의 내부 더 위대한 가능적 능력을 집중시켰다. 그것은 주체의 명칭을 취하거나 취하지 않거나 이것은 프랑스 철학이 논하고 사유하고자 한 바로 그러한 주체이다. 만일 정신분석학이 대화대상이었다면, 그 까닭 또한 프로이드적 발견이 본질적으로 주체에 관한 새로운 명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프로이드는 무의식에 관한 관념과 함께 소개하고자 하는 것에 의하여 의식을 포함하여 의식적인 것 보다 더 한 인간 주체에 관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에 의하여 제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무의식’이란 단어의 근본적 의미이다.


그러므로 현대 프랑스 철학은 정신분석학과 오랜 대화에 참여하게 한다. 이러한 대화에서 주고받는 것은 아주 복잡한 것에 대한 드라마였다. 그러한 것 자체 가운데 그리고 그 안에 뛰어난 드러난 것이다. 논쟁 중에 가장 근본적으로 프랑스 철학의 구분이 있었다. 한편 나는 실존적 생기론이라 부를 것이다. 베르고송과 뒤이른 사르트르, 푸코 그리고 들뢰즈에게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편에서 개념론적 현식주의가 있다. 이는 브랑슈비크와 그를 이은 알퀴세르, 라캉에서 기인한다. 이 두 방향의 교차점은 개념 밖으로 이끄는 존재와 같이 프랑스 철학에서 궁극적으로 정의되어야 하는 주체에 관한 논의에 위치한다. 어떤 의미에서 프로이드의 무의식은 동일한 장에서 일어난다. 무의식이란 개념을 개념 밖으로 생산하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의 어떤 생기 혹은 존재이다. 어떻게 실존은 개념 밖으로 낳는가, 어떻게 몸의 위부로 생산되어질 수 있는가? 만일 이것이 중심된 의문이라면, 우리는 철학이 정신분석학과 주고받는 그러한 열심 가운데 나오는 이유를 보게 된다. 본성적으로 항상 일반적 목적이 상이한 수단에 의하여 추구되어질 어떤 충돌이 있다. 당신이 나와 같은 것을 행할 때 함께 하는 요소도 있지만, 그러나 또한 당신이 그것을 상이하게 행할 때 라이벌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 철학에서 철학과 정신문학적의 관계가 이러한 것이다. 경쟁과 공모 그리고 매혹과 적대감, 사랑과 미움 가운데 하나였다. 이 둘 가운데 드라마는 매우 격렬하였고, 그렇게 매우 복잡하였다.


세 가지 중심 문헌이 우리에게 그것에 관한 관념을 선사한다. 아마도 첫째 경쟁과 공모의 분명한 예는 바슐라르의 1938년도 저작인 『불의 정신분석(La psychanalyse du feu)이며, 이는 시와 꿈 가운데 근거한 새로운 정신분석학은 물, 불, 공기, 땅 네가지 원소에 관한 정신분석학을 바슐라르는 제안한다. 어떤 이는 바슐라르가 프로이드적 성 억압과 몽상을 대체라고자 하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더 크고 개방된 범주를 검증하고자 하였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문헌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의 마지막으로부터 발견된다. 그의 전환은 프로이드의 경험적 정심분석학에 비하여 그 자신에 의하여 (암축에 의하여) 고유하게 이론적인 실존적 양식의 새로운 정신분석학을 창조하였다. 사르트르는 근본적인 성택이이라 칭하는 것으로 무의식의 구조와 같은 프로이드의 복잡성을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주체로 정의되는 것은 구조 혹은 신경적인 것도 별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존의 근본적 주체이며, 또한 공모와 경쟁에 대한 모범적인  예가 주어진다.


세 번째 문헌은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한 『안티-오이디푸스』의 4장에서 찾아진다. 여기에서 정신분석학은 들뢰즈가 분열증분석(schizoanalysis)이라 부르는 방법에 의하여 대체되어진다. 여기에서 그는 철저하게 공공연하게 프로이드의 분석과 경쟁한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오히려 망상이었고, 사르트르에게는 콜플렉스가 아니라 계획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안티-오이디푸스』에서 분명하듯이 그것은 표현이 아니라 구성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그의 주된 반론은 그것을 구성해야할 때 무의식의 능력을 표현하는 것이 외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분명하게 프로이드적 표현을 분열증분석의 작업인 구성에 의하여 대체한다. 최소한 세명의 위대한 철학자, 즉 바슐라르, 사르트르, 들뢰즈에게서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정신분석학을 대체하고자 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위대함의 여정


최종적으로 철학적 순단은 그 자체로 사고에 대한 그 자신의 프로그램에 의하여 정의된다. 우리가 전후 프랑스 철학의 공통된 터전으로 그 작업 혹은 체계 혹은 그것의 개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지성적 프로그램에 의하여 정의하는 것은 어떠한가? 물론 철학자들은 매우 상이한 형태를 가지며, 상이한 방식에서 그러한 프로그램에 다다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가장 중요한 의문을 가지는 곳은 당신이 수단과 문헌 그리고 사상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철학적 순단을 가지는 곳으로 인지된다. 우리는 전후 프랑스 철학에게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의 주된 점으로 요약하고자 한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1. 개념과 실존의 분리를 다루지 않는다. 더 이상 이 둘은 대립되지 않으며 개념은 살아있는 것이며, 창조이고 과정이며, 사건과 같은 그러한 것이며, 이러한 것은 실존으로 분리되어지지 않는다.


2. 근대성 가운데 철학을 기입하는 것, 이것 또한 강단(academy)에서 분리됨을 의미하며, 날마다의 삶 가운데  순환되어지는 것 가운데 그것을 둔다. 성적 근대성, 예술적 근대성, 사회적 근대성, 이러한 것은 철학과 관련되는 것이 되었다.


3. 지식의 철학과 행위의 철학 사이 대립을 버리는 것. 이론과 실천적 이선 사이의 칸트적 구분을 버리고, 지식뿐 아니라, 과학적 지식도차도 현실적으론 실용적인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4. 철학을 정치철학을 통하여 돌아가는 것 없이 직접적으로 정치적 영형 가운데 자리 잡기. 내가 철학적 전투상황(philosophical militant)이라 부르는 것을 개별하기. 그것의 존재 방식에서 현존 가운데 전쟁상황의 실천 가운데 철학하기. 단순하게 정치에 대한 반성이 아니다, 실재 정치적 개입.


5. 주체에 관한 의문을 반복하기. 반성적 형태를 포기하기. 그리고 정신분석학과 라이벌로 관련하여, 가능하다면, 더 좋은 관계로 하기.


6. 철학적 해설의 새로운 현태를 창조하기. 그렇게 문학과 경쟁하기. 본질적으로 현대 가운데 18세기 형태의 철학자와 작가를 새롭게 발견하기.


그러한 것은 프랑스 철학의 순간, 그것의 프로그램과 그것의 높은 야심이다. 그것을 살피자면, 그것의 본질적 욕구, 모든 동일성은 욕구의 동성이이며, 이러한 욕구는 철학을 새로운 주체를 위한 매개로의 글쓰기의 실천적 형식으로 철학의 길을 돌렸다. 그리고 동일한 근거에 의하여 철학자의 전문가적 혹은 명상적 이미지는 사라지게 되었다. 현자와 다른 어떤 것으로 철학자를 만들며, 성직자와 라이벌이 아닌 그러한 것으로 철학자를 만들었다. 철학자는  작자 전투원(writer-combatant)이 되고자 하며, 주체의 예술가가 되고자 하며, 발견의 연인이 되고자 한다. 철학적 전투 상황, 이것은 이 시기를 관통하는 욕구을 위한 이름이다. 철학은 그 자신의 이름 가운데 행하는 그러한 욕구이다. 나는 말로(Malraux)가 『』 (Les chenes qu'on abat)에서 드골(de Gaulle)의 것으로 간주되는 문구를 상기한다. 즉, “위대함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향하는 길이다”란 문구이다. 근본적으로 지혜와 명상을 넘어선 철학적 행위와 개입을 선택한 20세기 후반기 프랑스 철학의 순간은 알았던 목적에로의 길을 선호하게 되었다. 오늘날 단죄 받은 지혜 없는 철학과 같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의 순간은 행복 가운데보다 위대함 가운데 더 흥미가 있었다. 우리는 완전히 비일상적이고  인정하듯이 문제적인 어떤 것을 원했다. 우리의 욕구는 개념의 모험이었다. 우리는 삶과 개념 사이 분명한 분리를 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데아 혹은 규범에 종속되는 실존 역시나 원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그것의 종착지에로의 여행하는 개념 그 자체를 원한다. 모험의 시대는 불운하게도 일반적으로 질서의 시대에 의하여 따라 나온다. 이것은 이러한 철학의 해적과 같은 측면 혹은 들뢰즈가 이야기하듯이 노마드적 측면(유목적 측면)이다. ‘개념의 모험’은 우리 모두를 하나이게 할 수 있는 형식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후기 20세기 프랑스에서 궁극적으로 철학적 모험의 순간에 있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알랭 바디우(Alainn Badiou)의 이 글은 New Left Review 35, September-October 2005에 수록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