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1685-1753)
유대칠 정리
(토마스철학학교)
경험론으로 분류되는 영국의 철학자이다. 그의 철학은 로크의 경험론을 보다 더 경험론적 방향으로 치우치게 하였다. 그의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버클리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
버클리는 로크에 의하여 구분된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구분을 부정한다. 로크에 의하면 제1성질은 대상 가운데 있는 것이며, 제2성질은 대상 자체엔 없지만 우리의 영혼 가운데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장성이나 고체성 등과 같은 것이 제1성질이며, 맛이나 색깔과 같은 것이 제2성질이다. 로크는 대상과 사고를 구분한다. 대상과 사고는 서로 다른 존재방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버클리는 이를 부정한다. 두 가지 성질 모두 결국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즉, 제1성질이든 제2성질이든 모두 지각자의 주관성에 의존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버클리에 의하면 시간과 크기 그리고 온도와 같은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지각자의 주관에 많은 의존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크기 그리고 온도 등 모든 것은 지각자의 주관에 의하여 절대적이지 않고, 어느 경우는 길고 다른 경우는 짧게 지각될 수 있으며, 어느 경우는 덥고 어느 경우는 춥게 지각될 수 있기에 상대적이라는 것이 버클리의 논리이다. 이와 같이 영혼 외부 어떤 절대적인 것을 가정한 로크와 달리 버클리는 더욱 더 경험론적 사유를 극단적으로 이끌고가 모든 것을 지각자의 주관에 의존한다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그의 논리는 존재는 지각이다(esse est percipi)라는 그의 명제에서 분명해진다. 결국 모든 존재는 버클리에게 지각과 관련되며, 지각자의 주관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전화기, 책 그리고 집 등의 존재를 긍정하지만, 이러한 것이 지각과 무관하게 홀로 존재한다고 보진 않은 것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절대성을 강조한 뉴턴의 물리학과 대립하게 된다. 뉴턴의 물리학, 즉 자연철학은 절대적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동은 그 대상으로 가진 학문이다. 그러나 이미 논의한 대로 버클리는 그러한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지각자와 무관하게 절대적으로 있는 것으로 부정하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동을 지각자의 주관에 의존한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뉴턴에 의하면 모든 물질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클리는 분명하게 시간과 같은 그러한 것은 지각자의 주관에 의존한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버클리의 이론은 철저하게 경험론적이다.
그에 의하면 경험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다루는 학문은 형이상학이며, 경험적 관찰에 의한 것을 다루는 것을 자연철학이다. 그는 성직자이기에 그에게 신이 모든 현상의 원인임은 하나의 상식이다. 이러한 신은 모든 현상의 참된 작용인이다. 반면 자연현상에서 지각되는 규칙성, 예를 들어, 연기의 원인은 불이라는 식의 규칙성은 실재적인 원인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규칙성을 부여한 신에 의하여 주어진 기호일 뿐이다. 이것은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그저 기호일 뿐이다. 그렇기에 자연과학은 기호인 원인으로 다루고, 형이상학은 작용인으로 신과 같은 것을 다룬다. 그리고 자연과학은 스스로 온전하지 못하므로 형이상학으로 부터 근거들을 빌려와야한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지각, 즉 경험은 관념의 존재와 관련된다. 지각되지 않은 관념은 없고, 관념이 없는 지각도 없다. 그리고 지각 없는 존재도 없다. 나의 관념에 없으면 그것의 존재도 없다고 할 수있다. 버클리는 경험론자임, 관념론자이다. 우리는 분명하게 지각이나 관념을 가진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관념들은 우리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버클리는 영혼 외부 어떤 절대적 대상에 관념이나 지각이 의존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여기에서 그는 신을 가져온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항상 신과 관련된다고 본 것이다. 감각에 의하여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은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참된 작용자인 신의 기호 혹은 결과이다. 우리의 관념이 가지는 원인은 대상이 아니라, 바로 신이 되는 것이다.
버클리 읽기
-버클리, "인간지식의 원리론", 문정복 옮김 (울산:UUP,1999)-
-버클리, "하일리스와 필로누스가 나눈 대화 세 마당", 한석환 옮김 (서울:철학과현실사,1997)-
버클리의 글을 통하여 위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버클리에게 경험되지 않은 것이 관념을 이룰 수는 없다. 다음을 읽어보자. "왜냐하면 내가 지각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않은 것은 내 관념의 부분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네." 또한 "나에게 있어서 관념 이외의 것이 어떻게 관념과 유사한 것일 수 있는가를 파악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아주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관념도 정신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네."(대화,138쪽) 이와 같이 그는 지각과 존재를 깊이 연관시킨다. 지각과 관념 그리고 정신과 무관한 존재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더욱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글을 읽어보자. "물질이라는 표현으로 의미되는 것이 정신과 묵돤하게 존재하는, 사고활동을 할 수 없는 실체라면 물질은 존재하지 않네. 그러나 물질로써 의미되는 것이 지각된다는 데에 그것의 존재성이 성립하는 어떤 감걱적 사물이라면, 물질은 존재하네."(대화, 236쪽) 물질이란 지각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버클리는 분명하게 명시한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정신과 지각과 같은 주관적인 것에 의존한다면, 로크가 이야기하는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구분이 타당하겠는가. 버클리는 이를 부정한다. 다음의 글을 읽어보자. "제1성질과 제2성질을 구별하는 일부 학자가 있다. 전자로서 그들은 연장, 형태, 운동, 정지, 고체성 또한 침투성 불가, ㅡ리고 수...등을 의미하고, 후자로서는 색, 소리, 맛...등과 같은 다른 모든 감각적 성질을 의미한다. 이들 후자에 관해 우리가 갖는 관념은 마음 밖에서 지각되지 않고 존재하는 어떤 것의 묘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도 시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제1성질에 관한 우리의 관념은 마음 밖에 존재하는 사물, 즉 그들이 물질이라고 부르는 사유하지 않은 실체 내에 존재하는 사물의 모형 또한 표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물질이라는 말은 타성적, 무감각적 실체로서 그 안에 연장, 형태, 운동이 실제로 존속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증명된 바와 같이, 연장, 형태, 운동 등은 마음 안에 존재하는 관념에 불과하다."(원리론,48쪽) 버클리가 이곳에서 지적하는 것을 로크의 철학이다. 그는 로크가 마음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한 제1성질을 부정하며, 모든 것을 관념론으로 돌린다. 즉 마음 가운데 단지 관념이란 것이다. 이미 위에서 읽은 바와 같이 버클리는 물질을 관념과 관련하여 이해한다. 그런데 로크에 의하면 물질적인 것이 영혼 외부에 존재해야한다. 버클리는 이러한 로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관념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지각됨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유하지 않는 사물의절대적 존재에 관해서 말해지는 것, 이것은 나에게 완전히 이해 불가능한 것이다."(원리론, 45쪽) 결국 그의 철학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각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존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네."(대화,189).
'청소년을 위한 철학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암브로시오의 유라시아의 철학들 2 (0) | 2014.06.12 |
---|---|
유지승의 유라시아 철학사 1 왜 유라시아의 과거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0) | 2014.06.09 |
칸트, 인간 이성의 한계를 고백하다. 유지승 토마스철학학교 철학사 (0) | 2014.06.03 |
밀레토스의 탈레스 간단 정리 (0) | 2007.12.26 |
경험론자 로크의 철학 (0) | 200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