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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철학사

유지승의 유라시아 철학사 1 왜 유라시아의 과거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유지승의 철학사


왜 유라시아의 과거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들어가기 전에 이 물음의 '말마디'를 하나씩 고민해보자.


과거는 여전하다.


우선 '과거'이다. 과거는 현재와 단절된 이미 있지 않는 시간이다. 굳이 존재한다면, 기억 속에 존재한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은 그냥 기억 속에 두는 것이 좋지 않은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을 두고 굳이 그렇게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겠는가? 과거 한 여인을 마음에 품은 적이 있다. 그 여인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나의 현재가 아닌 과거다. 그 과거의 여인에 빠져 살아간다면, 나의 삶은 온전하겠는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삶은 현실 속에 존재한다. 우리의 삶은 과거 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억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과거의 힘이다. 여인은 기억 속에 있지만, 그 여인을 향한 나의 맘은 지금 내가 여인을 향한 맘에 영향을 주었다. 그 여인과의 기억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사랑 이후 이별을 가르쳤다. 즉 여인은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여인과의 시간은 그저 단순히 과거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여전히 지금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가 과거의 철학을 공부할 때, 과거, 즉 기억 속의 고민을 굳이 공부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칸트(Kant)는 과거다. 지금 우리의 옆에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이름으로 그 시대 우리가 고민하던 고민은 그저 과거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모습에 어떤 의미에서 화석 처럼 남아있다. 칸트는 기억 속에 존재하지만, 칸트로 대표되는 그 시대 우리의 고민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도덕은 무엇이고, 신에 대한 고민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칸트는 과거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과거가 아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철학은 어찌 보면 과거라는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유'와 '공유'


이제 '유라시아'다. 고인 물은 썩는다. 흐르지 않는 피는 응고되고, 더 이상 피가 아니게 된다. 인간 생명의 생명줄인 피가 그렇듯이, 철학도 그렇다. 어떤 하나의 고유한 철학 사상이 온전한 의미에서 고유하게 존재하기 위해 단절된 공간에 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흐르지 않는 피와 같이 존재하게 된다. 흘러야 한다. 고유한 철학이 되기 위해 공유가 필요하다. 공유는 고유의 전체 조건이다. 플라톤(Platon)이 독자적인 철학자로 존재하게 된 것은 그가 그의 선배 철학자들인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피타고라스(Pythagoras), 소크라테스(Sokrates)의 고유한 철학적 결실을 자신 가운데 수용하고, 그 수용 이후 고유한 무엇으로 결합하여 만들어 내는 융합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고유한 철학자다. 그것은 그의 선배들과 그와 동시대 철학자와 공유하면서 동시에 그 이후 철학자들에게도 여전히 공유할 무엇을 남겼기 때문이다. 고유한 철학자란 이렇게 공유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공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서로 공유하는 가운데 고유함을 만들어 내는 융합의 능력 속에서 진전한 고유한 무엇으로 존재하는 시간의 찰라를 만든다. 공간적으로도 그렇다. 그리스의 예술과 사상은 불교의 사상과 만난다. 그리스의 사상도 불교의 사상도 모두 서로 고유하다. 하지만 이 고유는 서로 만나 공유한다. 공유 하는 가운데 간다라라는 고유의 또 다른 무엇을 낳는다. 사자 가죽을 쓴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한 금강역사와 조로아스터교에서 사용하는 새의 날개 모양의 조익관을 쓴 금강역사도 있다. 이는 다시 중국을 걸쳐 한국으로 들어온다. 한국의 고대 국가인 신라에서 헤라클레스가 금강역사나 사천왕으로 나타난다. 기원전 1~2세기 제우스의 벼락을 든 헤라클레스가 불법을 수호하며 붓다를 지키는 금강역사로 나타난 불상은 지금도 영국의 박물관에서 볼 수 있으며, 신라 문무왕이 682년에 세운 경주 감은사 석탑에서도 헤라클레스 사천왕이 등장하며, 이는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 로마 판테온의 돔천장은 경주의 석굴암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유라시아의 끝과 끝은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간다라라는 공유를 통한 고유의 모습을 가지며 그것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고유한 신라의 문화에 로마와 그리스가 녹아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불상 뒤에 불꽃 모양의 아우라는 근동 지방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다. 그러니 로마와 그리스뿐 아니라, 근동의 문화도 융합된 결실이다. 그뿐 인가? 동아시아에 '미륵'리가 알려진 Maitrera는 '미트라'(Mitras)로 부터 온 개념이다. 미트라교의 미트라는 고대 페르시아의 신인 '미트라'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와 로마에 전해지고 오랜 시간 영향을 주었다. 철학자 포르피리우스(Porphyrios)의 저작인 <육식의 기피에 관하여>(De abstinentia)에도 미트라는 등장한다. 페르시아의 이 미트라는 유럽에 가서 로마 제국의 한 종교로 1세기 부터 4세기까지 믿어졌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선 미륵이란 이름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같이 유라시아의 공간적으로도 서로 소통하며 공유하였다. 그리고 공유 가운데 서로의 고유한 사상을 만들어갔다.


유라시아는 지중해 연안의 사상과 인도와 같은 중앙 아시아의 사상과 동북아시아의 사상이 서로 고유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동시에 서로 교류하며 공유하던 사상의 다양성이 무지개와 같은 존재하던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들어진 과거의 고민들은 여전히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왜 유라시아의 과거 철학을 공부하는가? 이제 이 물음에 대하여 직접적인 답을 생각해 본다. 나는 현실 속에 살아가지만, 과거는 무시할 수 없다. 과거는 그저 기억 속이지만, 과거의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요소의 하나이듯이, 철학사에 있어서도 과거의 고민은 그렇게 강력하게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또 나는 공간적으로 유라시아라는 공간 속에 살고 있다. 유라시아의 나의 삶이 구성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무시할 수 없다. 그 곳에 살아가는 나는 인도 사상에서 기인하는 불가와 중국 문화에서 기인하는 유가와 도가 또 서양에서 유입된 그리스도교와 서구의 사상이 혼재 한 한국이란 공간에서 철학을 하고 있다. 나에게 유라시아는 그런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