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캄 대 알뉘크. 보편자 논쟁 관전*1)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들어가기
옥캄(William Ockham)의 반-실재론적 사고는 실재론에 대한 그의 고민이 낳은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당시 실재론자들, 버얼리(Walter Burley), 스코투스(Duns Scotus) 그리고 토마스(Thomas Aquinas) 등의 이론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옥캄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은 그의 존재론적 입장은 규명하는 가장 적절한 길이 될 것이다. 실재로 옥캄은 자신의 저서에서 각각의 실재론자들을 하나하나 거론한다. 그리고 그들의 견해를 간단하게 요약정리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반론을 제시한 다음, 이어서 그는 실재론과 구분되는 자신의 존재론적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문헌 가운데 필자는 『정리집』(Ordinatio)에 등장하는 실재론자인 알뉘크(William of Alnwick)와 이에 반대하는 옥캄 자신 사이의 보편자 논쟁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쟁을 관전함을 통하여 옥캄의 존재론적 입장, 더 엄밀하게 그의 보편자에 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알뉘크는 스코투스와 가까운 관계를 가지며, 혹은 제자로 있으면서 그의 영향력 가운데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키워갔다. 아마도 그는 스코투스의 비서로 있었을 것이며, 스코투스의 저서 가운데 하나를 기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여간 그가 스코투스의 사유 공간과 깊은 연관을 가졌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는 파리에서 학위를 받았고, 옥스퍼드의 프란치스칸 수도원에서 가르쳤다. 그 후로 볼로냐와 나폴리 등을 다니며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명제론』을 주해하기도 하였으며, 『임의토론집』(Quodlibeta)과 『지성적 존재에 관하여』(De esse intelligibile) 등과 같은 저서를 적기도 하였다. 옥캄은 그의 이론을 이해하고 있었으며,**2) 아마도 『정리집』1,2,5에 등장하는 익명의 한 저자가 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실재로 현대 많은 옥캄 연구가들이 이를 인정하고 있다.***3) 옥캄은 우선 간단하게 알뉘크의 존재론적 입장을 정리한다. 알뉘크는 보편자는 사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뿐 아니라, 실재적으로 개별적 실체 가운데 다양화되어졌다고 본다. 이렇게 정리한 뒤 조목조목 알뉘크의 이론에 대한 스스로의 거리두기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알뉘크의 실재론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론을 구분지음과 동시에 스스로의 분명한 사유 공간을 마련하려 한다.****4)
옥캄은 1316년에서 1317년 옥스퍼드에 거주하는 동안 철학적 이슈가 된 알뉘크의 실재론과 아우레올리(Aureoli)의 유명론을 익혔다. 그 외에도 그는 동시대의 철학적 이슈를 야기한 리딩의 요하네스(John of Reading)와 겐트의 헨리 그리고 버얼리 또한 무엇보다 스코투스 등의 이론을 알고 있었다. 옥캄은 동시대의 지도적 이론을 철저하게 고민하고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후 옥캄은 이들의 이론을 자신의 이론과 분리하면서 자신의 사유 공간을 마련해 간다. 이렇게 마련된 사유 공간은 옥캄주의라는 이름으로 옥캄의 사후 철학사의 전면에 등장한다.*****5) 그렇기에 이미 말한바와 같이 그가 다른 철학적 입장과 거리를 두며 스스로의 사유를 전개해가는 논쟁을 관전하는 것은 곧 그의 존재론적 입장, 즉 그의 존재론적 사유 공간을 분명히 확인해 보는 가장 적절한 길이 된다. 그렇기에 본 논의는 중세 후기의 실재론 철학자인 알뉘크의 존재론적 이해를 부록으로 얻는 기쁨과 함께 옥캄의 존재론적 사유 공간을 선을 분명히 하려 한다.
2.알뉘크의 보편자 이론
알뉘크가 스코투스와 깊은 연관을 가진 것은 사실이겠지만, 알뉘크를 단지 자기 생각이라곤 없는 스코투스의 열렬한 추종자 정도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 여겨진다. 물론 그는 초기에 스코투스의 비판가인 콘닝톤의 리차드(Richard of Conington)에 대하여 스코투스의 옹호를 시도하였다. 또한 후기에는 아우레올리에 의한 비판에 대해서도 옹호를 시도하였다. 더 엄밀하게 그는 존재의 일의성을 부정하고, 겐트의 헨리의 존재의 유비성에 영향을 받은 콘닝톤에 대하여 존재의 일의성을 옹호하였다. 그렇지만, 존재의 유비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알뉘크는 스코투스와 다른 길을 간다.*6) 즉 알뉘크는 스코투스의 사유 공간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사유 공간에만 안주하진 않은 것이다. 필자는 옥캄 역시 그를 스코투스와 구분되는 철학자로 인정하였다고 여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본 논의가 다룰 『정리집』1,2,5 바로 다음인 『정리집』1,2,6에서 스코투스를 구분하여 다루기 때문이다.**7) 만일 옥캄이 스코투스와 알뉘크 사이에 어떤 차이도 있지 않다 여겼다면, 굳이 이 둘을 나누어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문헌적으로도 확실해 보인다. 옥캄은 어떤 면에서 스코투스의 논의가 잘못 이해되고 있는데, 이러한 잘못은 알뉘크 때문이라고 지목한다.***8) 이는 옥캄은 분명하게 이 둘을 구별된 이론을 가진 이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옥캄 역시 시대적으로 이 둘의 중요성을 동일하게 여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할애 지면에서 알뉘크는 버얼리나 스코투스에 비하여 매우 짧기 때문이다.
옥캄이 알뉘크를 만나는 물음은 보편적이고 일의적인 것이 개별자로부터 실재적으로 구별되어지는 영혼 외부의 참된 사물이며, 실재적으로 그 가운데 존재하며, 실재적으로 다양화되어지는 것인가의 여부이다.
그는 보편자를 개별자로부터 실재적으로 분리된 하나의 참된 사물일 뿐 아니라, 실재적으로 그것이 그 가운데 존재하는 개별적 실체 가운데 다양화되어지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란 명사(名辭)에 의하여 의미되어지는 본성은 소크라테스의 인간성(humanitas)이 되는 본성으로 수축하는 개별적 차이 그리고 플라톤의 인간성이 되는 본성으로 수축하는 개별적 차이와 실재적으로 구별되어지는 것이다. 인간 본성은 개별자인 소크라테스의 인간성이 되게 하는 개별적 차이와 구별되어진다. 이러한 본성과 개별적 차이는 저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들의 인간성과 인간 본성을 구성한다. 그것은 개별적 차이가 그들을 그들 종의 다른 모든 존재자들과 구별하기 때문이며, 수적으로 각각의 다른 것과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동일한 종 가운데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개별적 차이로 인하여 자신이 속한 종의 다른 어떤 존재자와도 같지 않고 독립된 것으로 있게 된다. 알뉘크는 이러한 개별적 차이와 인간 본성을 구별한다. 그러면 보편자는 개별적 차이와 자신의 종 가운데 어떤 것과도 구별되어지는 존재가 된다. 이를 옥캄의 정리로 읽어보자.
“...보편자는 개별적 차이로 인하여 다른 것과 실재적으로 구별되어지는 영혼 외부의 진정한 사물이며, 실재적으로 이 종 가운데 개별적 차이에 의하여 다수화되고 다양화되어지는 것이다.”****9)
보편자는 실재하는 존재자이다. 이러한 알뉘크의 이론은 비록 그가 스코투스의 제자이지만, 스코투스의 것과 다르다. 그가 분명 스코투스학파의 일원이라 하여도, 그를 스코투스와 구별하는 옥캄이 다루는 것도 그가 보편자 이론에서 스코투스와 어떤 차이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그의 이론은 12세기 철학자인 질베르투스(Gilbert of Poitiers)의 이론과 유사하다. 그는 다소 완화된 실재론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여 개별자 가운데 보편자가 실재할 때, 보편적 실재는 다양화되어지고, 이는 개별적 차이로 가능하다. 물론 질송은 질베르투스의 존재론적 견해, 특히 보편자 이론은 아비첸나와 스코투스의 선구적 모습이라고 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그리고 알뉘크는 스코투스에 비하여 오히려 질베르투스에 더 가깝다.*****10) 질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 실체의 개체화 이론을 정리하면서, 이를 총체적 속성이라고 한다. 총체적 속성은 한 사물이 가지는 모든 특성의 집합이다. 그런데 이러한 총체적 속성은 단수성에 기인한다. 단수성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의 특성의 집합인 총체적 속성이 가능하겠는가? 결국 단수성은 궁극적으로 수적 다름의 원인이 된다. 그에게 우유와 같은 것이 개체화나 수적 다름의 원인이 되지 못하며, 단수성이 바로 그러한 것의 원인이다. 이러한 질베르투스는 개별성을 일종의 차이로 이해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다른 것은 그들이 각각 단수성을 가짐으로 다르다. 즉 그 각각의 단구자, 개별자가 일종의 차이 혹은 구별이라는 생각이 놓여있는 것이다.*11) 이러한 발상은 그 자체로 하나를 수적 단일성으로 이해하고, 이로 자신의 보편자 이론을 일구어간 스코투스의 선배로 보인다.**12) 그러나 이것은 스코투스와 다르다. 알뉘크는 보편자와 그것이 개별자와 가지는 관계를 사물이 사물과 가지는 실재적 구분을 적용하고 있다. 이점은 질베르투스 역시 그렇다. 그러나 스코투스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알뉘크에게 이러한 것은 그의 보편자와 개별자 이해의 중심이 되었다. 왜냐하면 실재하는 보편자가 어떻게 실재하는 개별자 가운데 적용되는지를 고민하며 사용한 것이 개별화하는 차이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코투스는 이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스코투스는 소크라테스가 플라톤과 구별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것임’(haecceitas)과 ‘개별적 차이’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지만, 스코투스는 공통본성과 개별적 차이 혹은 이것임의 구분을 실재적 구분이 아니라, 형상적 구분이라 한다.***13) 물론 알뉘크와 질베르우스의 견해가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질베르투스와 스코투스 그리고 알뉘크는 모두 구별되어진다. 다만 알뉘크가 질베르우스에 더 기울어진다는 말이다. 하여간 옥캄은 간단하게 알뉘크의 실재론을 정리한다. 그리고 이어서 옥캄은 알뉘크의 보편자 이론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3.옥캄의 거리두기
옥캄은 알뉘크와 분명한 거리를 둔다. 우선 이를 발췌하여 읽어보자.
“실재적으로 다른 것과 구별되어지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혹은 그에 고유한 어떤 것에 이하여 다른 것과 구별되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크라테스 가운데 있는 인간성은 실재적으로 플라톤 가운데 인간성과 구별되어진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 가운데 있는 인간성은 플라톤 가운데 있는 인간성과 그 자체로 혹은 그에 고유한 것에 의하여 구별되어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개별적 차이를 제쳐놓고, 이들 인간성은 구별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종 가운데 구별되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적으로 구별되어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개별적 차이 없이 그들 가운데 각각의 것은 수적으로 하나이며, 그 자체로 개별자이다.”****14)
여기에서 옥캄은 분명하게 알뉘크의 이론을 거부한다. 알뉘크에 의하면, 개별자는 개별적 차이에 의하여 다른 개별자와 구별되면서, 동시에 각각의 개별자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혼 외부의 실재하는 것이다. 옥캄은 개별자들이 그 자체로 고유한 것이며, 이는 개별적 차이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기에 옥캄은 근본적으로 개별적 차이로 종 가운데 구별되어진다는 사고를 수용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알뉘크의 생각은 ‘종’이라는 보편자를 인정하는 가운데 개별자의 개체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즉, 그는 어떤 보편적 실재를 개별자 안에서 다른 것과 구별되게 하는 개별화하는 차이라는 관념을 도입한 것이다.*****15) 그러나 옥캄은 보편자를 영혼 외부의 존재로 생각하지 않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종인 인간과 같은 것 가운데 이 인간성, 저 인간성이 본질적으로 속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때 종이란 그저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보편자를 인정하지 않기에 옥캄은 개별자들 사이에 어떤 개별적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개별자들이 서로 다른 것은 그 자체로 다르고, 그 자신의 고유함에 의하여 다를 뿐인 것이다. 옥캄은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더욱 더 분명히 한다.*16)
“이러한 반론은 근거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형상들이 본질적으로 종 가운데 있지 않아도 오히려 합성체가 본질적으로 종 가운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료 없이 두 형상은 참으로 수적으로 구별되어지는 것이다. 마치 두 개별적 영혼이 수적으로 구별되듯이 말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인간성은 본질적으로 종 가운데 있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실재적으로 어떤 차이들도 제처 놓아도 그것들은 수적으로 구별되어진다.”
옥캄은 알뉘크의 이론을 분명하게 거부한다. 그것은 자신의 개념론과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옥캄의 존재론적 입장의 한 면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옥캄은 개별적 차이에 의하여, 즉 보편자가 개별적 차이에 의하여 수축되어진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인간이란 보편자가 각각의 인간성으로 수축되어지는 것은 개별적 차이에 의하여 그러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그가 보편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만일 보편자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즉 각각의 인간성이 영혼 외부에 실재하는 보편자가 가운데 있다면, 옥캄 역시 이들의 개별적 차이를 설명해야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러한 보편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옥캄에게 보편자는 영혼 외부의 어떤 현실적 존재자 혹은 사물일 수 없다. 그에 의하여 어떠한 사물(실재적인 것)도 종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물도 공통적인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성이 개별자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아니라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인간성과 구분되어지는 인간성에 관한 물음이 야기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개별자와 구별되어지는 영혼 외부의 실재적 보편자는 불가능하다. 왜인가? 이를 위하여 옥캄의 전체적인 존재론적 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3.1.옥캄의 존재론적 진영
옥캄의 존재론적 사유는 그의 언어 혹은 논리학 이해에 기초한다. 이를 감안하여 살펴보자.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라고 할 때, 소크라테스는 개별자를 지칭한다. 그러면 인간은 보편자를 지칭하는가? 옥캄에게 만일 이러하다면, 이것은 참된 명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것을 지칭한다면, 이것은 참일 수 없다. 이쯤에서 간단하게 지칭이론, 그 가운데도 인칭지칭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명사가 고유명사와 대명사로 하나의 개별자를 의미할 때, 인칭지칭(suppositio personalis)은 따로 따로 분리되어지는 것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와 같이 말이다. 또한 대명사에 지시대명사가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이 인간은 인간이다”와 같이 말이다. 이 경우 후자의 ‘인간’ 역시 하나의 개별자를 지칭한다. ‘이 인간’이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제일 지향은 명제 가운데 자연적으로 의미되어지는 것을 지칭하는 심적 명사이다. 반면, ‘인간’은 제일 지향의 개념을 의미하는 제이 지향이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의 개별자를 향한 것이다.**17) 그렇기에 ‘인간’은 영혼 외부의 실재하는 사물이 아니며, 개별자를 향한 제일 지향의 기호일 뿐이다.
그러면 “인간은 종이다”라는 명제는 옥캄에 의하여 어떻게 이해되어지는가? 이에 관하여 옥캄은 단순지칭(suppositio simplex)으로 이를 풀어간다. 결론적으로 이 명제는 인간이 종이라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이라는 것이 보편자라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명제에서 ‘인간’은 개념을 지칭한다. 즉 영혼 외부의 사물이 아니라, 영혼 가운데 개념을 지칭할 뿐이다. 그리고 이 종은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더 엄밀하게 이는 개념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의 대리물을 의미할 뿐이다.***18) 이렇게 언어와 논리의 이해 폭에서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보편자가 아니다.
옥캄에게 보편자는 영혼 외부의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리집』을 저술하는 시기에 옥캄은 초기 이론을 포기하고 개념론을 전개한다.****19)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옥캄이 보편자를 영혼 외부에 실재하는 사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는 그의 언어와 논리의 이해에서 확연해진다.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은 그이기에 중세 그토록 유명한 개체화이론에 관하여 그는 고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요 없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각각의 개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별자이며, 다른 것과 구별되어진다. 어떤 원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그의 논의에서 영혼 외부에 실재하는 보편자의 자리는 없다. 그에게 보편자는 그저 심적 명사(nomina mentalia)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20)
그렇기에 옥캄에게 개별자는 그저 개별자이다. 개별화하는 차이, 즉 보편자 가운데 다양한 개별자를 설명하는 철학적이고 존재론적 논의는 그에게 필요 없는 개념 논쟁이다. 설서 보편자가 있다고 하여도, 이 보편자는 하나의 단수적 대상(res singularis)이다.*21) 옥캄에게 모든 존재하는 것은 단수적이며 개별적이다. 그에게 모든 것은 단수적이다. 이것은 외부에 의하여 단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단수적이다. 즉 그 자체로 개별적이다. 스코투스가 이것임(haecceitas)를 통하여 이것, 즉 단수적이고 개별적인 것이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옥캄은 바로 이것은 그 자체로 단수적이고 개별적이라고 한다.**22) 이렇게 개별자는 그 자체로 그저 ‘다른 것’이다. 두 개별자는 어떤 동일한 것도 없으며,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이 개별자는 그 자체로 다르기에 옥캄에게 그 자체를 넘어서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옥캄은 중세 여타의 많은 철학자가 이야기한 이런 저런 개별화의 원리들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그는 개별자를 그저 그것이 그것 자체로 바로 그 개별자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3.2.보편자 논쟁의 지형도에서 옥캄과 알뉘크.
중세 많은 철학자들은 보편자를 상정한다. 보편자를 상정하는 한에서 개별자를 설명하는 방식은 그들 존재론의 핵심적 논의였다. 여기에서 간단하게나마 열거하자. 토마스는 이를 두고 ‘지정된 질료’로 이해하고, 그라시아에 의하면, 아비첸나는 존재로 이를 이해하였다. 그뿐 아니라,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은 초자연적 행위자로 신을 통하여 이를 이해하였다. 또한 아베로에스와 같은 이는 한 인간이 실체적 형상인 그의 인간성으로 인하여 바로 그 인간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존 바꽁토르프(John Baconthorpe)에게도 이어졌다. 그는 실체적 형상에 의하여 개체화로 이를 이해하였다. 또한 두란두스(Durandus)는 한 인간이 그를 존재하게 하는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에 의하여 개별자라고 한다. 그 외 많은 중세 철학자들이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23) 철학사는 흔히 중세의 핵심적 논의로 이를 다루고 있다. 이 논의와 쌍을 이루는 것이 보편자 이론이다. 그 가운데 개체화 문제는 주로 실재론자들에 의하여 다루어져왔다. 실재론자들은 보편자의 실재성을 긍정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보편자가 어떻게 각각의 개별자가 되어지는지에 대한 개체화 원리를 다루어야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1277년 이후 개별자 우위의 사고는 이러한 실재론에 금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랍에서 유입된 중세 무슬림 철학자의 영향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의 전지전능에 어긋난다. 그렇기에 이는 단죄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는 신은 무엇이든지 인식한다는 논의로 이어진다. 즉 개별자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은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개별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23)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전에 없던 스코투스에 이르러 개별자에 관한 직관적 인식의 가능성을 논의하게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1277년 단죄는 1277년 이후, 즉 13세기 후반부터 유명론과 스코투스식 실재론 그리고 개념론을 철학사의 전면에 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1277년의 단죄를 고려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1277년 이후 철학자인 두란두스와 하클레이(Henricus de Hacley)는 모두 개별자만이 영혼 외부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 가운데 하클레이는 개체화를 위한 어떤 긍정적 설명을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두란두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네 가지 공존의 원리인 형상인, 질료인, 작용인, 목적인으로 한 개별자는 바로 그 개별자로 존재한다고 하였다.****24) 그러나 이들은 13세기 중반까지 실재론의 논의에 비하여 매우 이질적인 면을 가진다. 즉 14세기에로 넘어가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철학자들인 것이다.
위의 하클레이와 같은 이들은 실재론을 버리고, 개념론으로 접근해간다.*****25) 그뿐 아니라, 다른 여타의 실재론자들도 나름으로 보편자의 존재와 함께 개별자의 개성을 인정하는 논리가 필요했다. 그러한 논리 가운데 등장한 이가 버얼리와 스코투스이다. 버얼리는 보편자로 여겨지는 모든 것은 단수자로부터 추상된 것이며, 지성에 의하여 물질적 상태에서 추상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으로부터 추상된 것은 실재적으로 그러한 것들 가운데 존재한다. 다른 방식으로 추상이란 우리를 기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참으로 그것으로부터 추상되어지는 것인 단수자와 실재적으로 보편자를 구분하였다. 그에게 보편적 인간성은 참된 실재성이다. 이는 모든 인간 가운데 있으며,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들과 구분되어지는 것이며, 다른 보편자들과도 구분되어지는 것이다.*26) 버얼리는 이러한 실재론적 사고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1277년 이후 철학자의 모습을 가진다. 즉 개별자의 인식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지성이 개별자를 인식하며, 그렇기에 감각‘만’이 개별자를 인식한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버얼리 역시 1277년 이후 철학자의 모습을 유지하며 그러한 가운데 실재론을 전개하였다.**27) 중세 후기 많은 실재론적 철학자들은 보편자의 실재를 인정하기에 이러한 보편자와 동시에 개별자의 존재를 설명해야하는 짐을 가져야 했다.
알뉘크 역시 그러하다. 알뉘크의 고민은 당시 많은 실재론자들의 고민을 대변할 것이다. 보편자는 실재적으로 개별자 가운데 다양화되어지고, 다수화 되어진다. 예를 들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공통적으로 인간성의 실재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구별되어진다. 그런데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보편자 역시 실재한다. 여기에서 알뉘크는 개별자는 차이의 결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 차이는 ‘개별화하는 차이’이다. 이 차이로 인하여 이 인간성은 다른 인간성과 구별되어지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를 제거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논리적으로 개별화는 중단된다.
그러나 옥캄은 개별화에 대한 그리고 보편자에 대한 알뉘크의 논의를 수용할 수 없었다. 우선 보편자의 존재에 근거하여 사고하는 알뉘크에 대하여 옥캄은 보편자는 그저 심적 명사로 치부한다. 그렇기에 옥캄은 보편자가 단지 심적인 것이기에 외부의 개별자에 대한 개체화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알뉘크는 달랐다. 그는 보편자를 인정하였고, 이러한 보편자가 개별화하는 차이가 요청되었다. 개별자가 개별화되는 것은 차이 때문이다. 옥캄에게 개별자를 차이로 이해하는 알뉘크는 긍정적인 면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옥캄에게는 알뉘크가 덜 바른 것이었다. 왜냐하면, 알뉘크는 차이라는 점에는 이르렀지만, 개별자가 그 자체로 개별자라는 점에 이르지는 못 했다는 점이다.
옥캄은 알뉘크를 비판하며 다룬 핵심은 개별자가 그 자체로 개별자라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그 자체로 개별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옥캄의 기본적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그는 모든 외적인 요소로 인한 개체화를 거부한다. 그러면서 사후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 거론한다. 사후 인간은 모든 우유적 요소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그 자체로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 개별자가 다른 개별자와 구별되어지는 것은 질료나 그 외 다른 여타의 것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그 자체로(se ipsis) 구별되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차이를 근본적으로 가진다면, 이들은 실재적으로 구별되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서로 서로에 대하여 다른 것이 되어지며, 이는 곧 그 스스로 그 자체에 의하여 구별되어지게 되는 것아 아닌가? 그러나 알뉘크는 이렇게 논리를 전개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보편자의 옹호라는 마지막 마지노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뉘크는 보편자는 실존하며, 이 실존 가운데 차이를 가지는 개별자를 설명해했다. 그러나 옥캄은 보편자 없이 개별자들은 서로 차이를 가지며, 이는 보편자 가운데 차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다른 것과 다른 것이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 즉 그 자체로 다른 것이다. 하지만 알뉘크는 보편자 가운데 차이를 가지는 것이 개별자일 뿐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옥캄은 알뉘크를 내세워 개별화에 관한 이러한 논의를 소개하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옥캄은 알뉘크를 스코투스와 구분한다. 스코투스는 알뉘크와 다르다. 알뉘크는 보편자와 그의 개별자와 가지는 관계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와 같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자가 개별적 차이에 의하여 수축되어 개별적인 것이 된다. 그런데 스코투스는 수축하는 차이, 즉 개별화하는 차이는 그것이 개체화하는 본성과 실재적으로 동일하다. 그리고 오직 형상적으로 구별되어진다.***28) 그리고 이러한 스코투스의 견해를 다른 이들에 비하여 매우 탁월한 것이라고 정의한다.****29) 이러한 스코투스를 다루기 전에 옥캄은 그의 견해로 오해되고 있는 알뉘크를 소개하고 비판한다. 그것은 스코투스의 이론이 알뉘크가 가지는 어려움에 비하여 덜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옥캄의 눈에 스코투스는 알뉘크의 보편자에 관한 이해를 넘어서 있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알뉘크는 실재하는 보편자를 개별자 가운데 다양화시키는 개별화하는 차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런데 스코투스 역시 이러한 개별화하는 차이의 개념을 가진다. 그리고 이를 두고 스코투스주의자인 안토니우스 안드레아스(Antonius Andreas)는 ‘이것임’이라 칭한다. 스코투스에 의하면, 이 개별자 가운데 종적 본성은 바로 이 개별자 가운데 수축되어지는 혹은 한정되어지는 어떤 긍정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것’ 안에서 이것의 종적 본성을 이루고, ‘저것’ 안에서 저것의 종적 본성을 이룬다. 그리고 이렇게 비록 이 두 가지의 것이 같은 종 가운데 있다고 하여도, 두 개별자는 각각 이것은 이것성이고, 다른 것은 저것성으로 다르다.*****30) 이는 옥캄에게 알뉘크의 것 보다 더 나은 것이다.
옥캄에게 알뉘크는 조금은 모자란 스코투스주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스코투스와의 일전에 앞선 잠시 다루는 것은 그의 논의가 스코투스의 논의와 구별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스코투스의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알뉘크의 논의를 분명히 함으로 이어서 다룰 스코투스의 영역을 보다 분명히 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여간 그는 옥캄에게 결코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4.나가면서
옥캄과 알뉘크의 논쟁에서 관전의 포인트는 개별자에 관한 이해의 문제이다. 13세기에서 14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혹은 1277년 이후 시기, 유럽의 철학자들은 개별자에 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껏 지성의 대상이 보편자라던 것이 개별자 역시 그 대상이라고 하기 시작하면서, 개별자에 관한 고민은 더욱 더 깊이를 더해 갔다. 옥캄은 개별자만의 세계를 구상하였다. 반면 여전히 실재론에 치중한 이들은 보편자의 실존과 함께 이것이 어떻게 개별화되어지는가를 두고 철저한 고민이 필요하게 되었다. 스코투스주의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알뉘크는 이 개별자가 이 개별자인 것은 바로 개별화하는 차이 때문이다. 그 자체로 개별자는 차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알뉘크에게는 보편자 가운데 오직 차이를 통하여 개별자는 개별자가 된다. 즉, 그는 실재하는 보편자 가운데 개별화하는 차이로 인하여 각각의 개별자가 되어진다고 한다. 또한 그는 스코투스와 달리 보편자와 그것의 개별자의 관계를 실재적 구분으로 이해하였다. 즉 그는 12세기 철학자인 질베르투스의 논의에로 돌아간 것이다. 이는 스코투스와 엄밀하게 다르다. 옥캄은 알뉘크는 스코투스 보다 덜 엄밀하가고 여긴다. 그리고 개별자는 그저 그 개별자이기에 개별자라는 논리로 알뉘크의 이론을 논박한다. 이 논박의 배후에는 여타 다른 이들을 향한 것도 포함된다. 알뉘크와의 논쟁으로 통하여 옥캄은 자신이 가진 개별자에 관한 사고를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는 보편자에 관한 사고 역시 분명히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여타의 우유나 그 외 다른 외적인 것으로 통하여 개별화를 설명하려는 중세 철학의 지적 노력이 필요 이상의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개별자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스코투스와의 논쟁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나의 관전도 여기에서 끝을 맺는다.
*) 이 연구가 이루어지는 동안 힘이 되어준 안현주 양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S.Dumont, "William of Alnwick" In A Companion to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ed.J.Gracia et al. (Oxford: Blackwell, 2003), 676-677.
***) T.Noone, William Ockham" In A Companion to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700.
****) Ockham, Ordinatio 1,2,5 (OT.2, 153-160).
*****) F.Ehrle, Der Sentenzenkommentar Perters von Candia (Muenster: Verlag der aschendorffschen Verlagsbuchhandlung, 1925), 78-79.
*) S.Dumont, "William of Alnwick" In A Companion to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676; S.Dumont, "The univocity of the concept of being in the fourteenth century: John Duns Scotus and William of Alnwick" Mediaeval Studies 49, 1-75.
**) Ockham, Ordinatio 1,2,6 (OT.2, 161-167).
***) Ibid., 1,2,5 (OT.2, 154); P.Stella, "illi qui student in scoto: Gugliemo 야 Annwick et la Hacceitas scotista" Salesianum 30 (1968), 614-637.
****) Ibid., (OT.2, 154).
*****) E.Gilson, History of Christian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New York: Random, 1955), 141-142.
*1) 조지 그라시아, 「중세 초기의 유산」『스콜라철학에서의 개체화』, 65-66, 70-73.
**) Duns Scotus, Ordinatio 2,3,1,1,nn.31-32 (Vatican.7, 403).
***) 박우석, 「스코투스의 개체화 이혼」『중세 철학의 유혹』(서울:철학과 현실사, 1997), 120-151.
****) Ockham, Ordinatio, 1,2,5. (OT.2, 155-157).
*****) 아먼드 마우러, 「윌리엄 오캄」『스콜라철학에서의 개체화』, 이재룡, 이재경 옮김 (서울:가톨릭출판사. 2003), 648.
*6) Ockham, Oridinatio 1,2,5. (OT.2, 155-157).
**) Ockham, Summa logicae 1,12 (OP.1, 41-44).
***) Ibid.1,64 (OP.1, 196.26-32).
****) Ph.Boehner, "The Ralistic Conceptualism of William of Ockham" In Collected Articles on Ockham, ed. E.M.Buytaert (New York: The Franciscan Institute, 1992(2ed)), 157-174.
*****) 옥캄은 『논리학대전』에서 보편자를 심적 명사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보편이론을 유명론이라고 하는 근거가 되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때 명사(nomen)는 개념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보편자에 대한 개념은 단지 만들어진 것(ficta)이 아니라, 주체적 존재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1) Ockham, Summa logicae 1,14 (OP.1, 48).
**) Ockham, Ordinatio 1,2,6 (OT.2, 224).
23) 박우석, 「개체화 문제: 중세인의 가슴앓이」, 105-119.
***) 이재경, 「해제-아베로에스, 이슬람에서 합리주의를 외치다」아베로에스,『결정적 논고』, 이재경 옮김 (서울: 책세상, 2005), 83-86.
****) 마크 헨닝거, 「두란두스 생푸르생」『스콜라철학에서의 개체화』, 545-568; 마크 헨닝거, 「헨리쿠스 데 하클레이」『스콜라철학에서의 개체화』,569-592.
*****) P.Vignaux, Philosophie au Moyen Age, ed.R.Imbach (Paris: Vrin, 2004), 226-243. 하클레이에 관하여 비뇨는 옥캄의 선구적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관하여 개념론(conceptualisme)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많은 논의는 여전히 많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실재론의 문제점을 넘어서 더 개념론적이고 유명론적인 사고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분명 그는 영혼 외부의 것은 모두 단수자라고 하기 때문이다.
*6) M.Adams, "Universals in the early fourteenth century" In The Cambridge History of Later Medieval philosophy, ed. N.Kretzmann et al.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2), 432.
**) 이반 보, 「월터 버얼리」『스콜라철학에서의 개체화』, 627.
***) 아먼드 마우러, 「윌리엄 오캄」, 647.
****) Ockham, Ordinatio 1,2,6 (OT.2, 161).
*****) Duns Scotus, Lactura 3,1,1, n.162 (Vatican.18, 279-280); Duns Scotus, Ordinatio 2,3,1,1, n.170 (Vaticas.7,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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