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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자연 사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자연 사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중세 자연 철학에서 존재론적 화학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들어가는 말

 사전적으로 자연 사물의 구조를 다루는 학문은 화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세 철학에서도 그러한 화학적 사유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는 중세 자연철학의 가장 중요한 물음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그러한 사유의 근저에는 존재론적 사유가 하나의 확고한 틀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그 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과 자연철학이다. 이 틀 속에서 화학적 사유를 전개한 철학자들은 아베로에스(Averroes), 아비첸나(Avicenna), 토마스(Thomas Aquinas), 스코투스(Duns Scotus), 루푸스(Richard Rufus) 등 다양하다.1)

 중세 자연 철학에서 자연 사물, 즉 물질적 실체는 두 가지로 이해되어진다. 하나는 형상과 질료로 구성되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네 가지 원소(물, 공기, 흙, 불)에 의하여 구성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이어(A.Maier)가 지적하듯이, 이것이 중세 자연학의 화학적 사유의 큰 짐이 되었다.2) 왜 인가?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물은 물의 형상과 물의 질료인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다. 산소와 소수를 물의 형상이 물로 질서지움으로 산소와 수소는 물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형상, 즉 엄밀하게 실체적 형상으로 물의 형상은 그 자체 가운데 통일성을 가지며, 변화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즉 물의 형상은 물이 맥주와 섞었다고 해서, 그 실체적 형상이 다르게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만일 이렇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물은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수소와 산소 역시 형상을 가진다. 즉 각각 실체적 형상을 가진다. 그렇다면, 이들을 질료로 삼은 물 가운데 수소와 산소는 여전히 그 실체적 형상을 유지하고 있어야만 된다. 그렇다면 물은 그 가운데 수소와 산소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러면 물의 실체적 형상의 존재론적 위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중세인들은 네 가지 원소로 사물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네 원소도 각각 실체적 형상을 가진다면, 이 원소로 이루어진 사물의 실체적 형상의 존재론적 위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서 중세 자연학의 존재론적 화학이 성립된다.

 여기에서 혼합(Mixtio)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등장한다. 물과 공기로 이루어진 A라는 물체를 가정해보자. 물과 공기의 혼합으로 A가 이루어진다고 할 때, 물과 공기의 실체적 형상은 사라지고 A의 실체적 형상이 되어진다면, 혼합은 현대 화학에서 이해하는 화합, 즉 화학적 결합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물과 공기의 형상이 그대로 변함없이 A 가운데 남아있으며, A는 단지 물과 공기의 섞여있음이라면, 혼합은 현대 화학이 이해하는 혼합, 즉 물리적으로 섞여있음 일 것이다. 중세인들이 이해한 혼합은 현대 화학의 화합인가 혼합인가? 그런데 혼합을 무엇으로 이해하든지 중세 철학자들에게는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만일 혼합을 현대의 화합으로 이해하자. 그러면 A는 단지 물과 공기가 섞여있음에 다름 아니다. 이러면 원소들의 형상이 가지는 존재론적 위치는 설명할 수 있지만, A의 형상이 가지는 존재론적 상태는 문제가 된다. 다르게 혼합을 현대의 혼합으로 이해한다면, A의 형상이 가지는 존재론적 상태는 설명이 되지만, 그것을 이루는 원소들의 형상이 가지는 존재론적 위치는 문제가 된다. 중세인들에게도 혼합은 현대의 화합과 혼합에 준하는 개념이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개념은 ‘감각에 의한 혼합’(mixtio secundum sensum)과 ‘참된 혼합’(vera mixtio)이다.


“...참된 혼합은 아니지만, 마치 작음으로 인하여 지각 되지 않는 혹은 시각적이지 않는 물체의 집합 가운데 일어나는 것처럼, 감각에 의한 <혼합>이다.3)


이글에서 감각에 의한 혼합과 참된 혼합은 구분되어진다. 감각에 의한 혼합은 지각이 되지 않을 물체의 집합 가운데 일어가는 것이다. 반면 참된 혼합은 이와 다르다. 이는 현대의 화합에 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가졌다고 해도 근본적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4) 이는 이미 논의한 대로 그들이 가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적이란 배경이 벽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5) 존재론의 틀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러한 고민이 중세 존재론적 화학의 근본적 논의를 이끌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살필 것은 그러한 고민의 역사이다.


2.아비첸나의 고민

 아비첸나는 원소들의 형상이 가지는 존재론적 위치를 지키려고 하였다. 또한 이는 토마스 등 중세 철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의 상식이었다. 아비첸나의 논의는 ‘확고한 형상’(formae fixae)이란 개념으로 축약된다. 그는 원소의 형상은 각각 확고한 것이며, 그것들은 그 종 가운데 지속되어진다는 것이다.6) 그러면 혼합을 통하여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그는 형상이 아니라, 단지 그것들의 제일 성질이라 한다. 그렇기에 그에게 혼합은 형상의 파괴를 야기하지 않으며, 그 형상은 존재론적 위치를 유지하게 된다. 토마스는 그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만일 실체적 형상이 철회된다면, 혼합체는 더 이상 그것들이 그 가운데 머무는 그러한 방식으로 단순 물체(원소)로 혼합되어지지 않는다... 원소의 실체적 형상은 혼합체 가운데 보존되어진다.7)

토마스는 아비첸나의 핵심적 내용을 어느 정도 잘 정리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아비첸나는 원소의 형상이 사라진다면, 이는 더 이상 어떤 원소를 질료로 가지는 혼합체가 아니게 된다. 그렇기에 종 가운데 원소의 형상은 유지되어야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에 의하면 물과 공기로 혼합된 A는 여전히 원소의 형상을 유지되어진다. 그런데 A가 되면서 사라진 혹은 A로 새로워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원소의 형상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이에 대하여 아비첸나는 사라진 것은 성질이며, 형상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론은 ‘확고한 형상’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적 틀 속에 충실하려는 것이지만, 이 역시 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을 살펴보자. 이 인간은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다. 즉 이 원소들이 그저 그 성질을 상실한 모양으로 섞여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 인간의 형상이 가지는 존재론적 위치는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이 아베로에스에게서 찾아진다.


3.아베로에스의 고민

 아베로에스는 물과 공기로 이루어진 A의 실체적 형상의 존재론적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하였다. 이를 위하여 물과 공기라는 원소의 형상, 혹은 원소적 형상은 다른 일반 형상과 다르게 바라보아야 했다. 그의 이러한 논의는 ‘부서진 형상’(formae fractae)이란 개념으로 축약된다. 이것은 아비첸나의 ‘확고한 형상’과 대견되는 개념이다.

 아베로에스는 실체적 형상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수용한다. 그렇지만, 원소적 형상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원소적 형상은 하나의 중계적 형상이다. 이러한 형상은 우유적 형상과 실체적 형상의 사이에 있다.8) 우유적 형상이란 색과 같은 것이다. 이는 더와 덜의 강도를 가진다. 더 진한 색일 수도 있고, 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실체적 형상은 그렇지 않다. 원소적 형상은 이러한 존재론적 갈림 사이에 있다. 원소적 형상은 일반적 아리스토텔레스적 학문에선 실체적 형상이다. 그러나 혼합의 측면에선 우유적인 것과 관련된다. 이렇게 아베로에스의 원소적 형상은 실체적 형상과 우유적 형상의 사이에 있다. 그의 논의를 직접 읽어보자.


 “이들 원소의 실체적 형상은 완전한 실체적 형상에 관하여 줄어든다(변화된다?). 그것들은 형상과 우유 사이의 중계자와 같다.”9)


원소의 형상은 혼합에 의하여 점차적으로 다르게 된다. 물과 공기의 형상은 현실적인 존재론적 위치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베로에스는 “하나의 주체가 하나 이상의 형상을 가진다는 것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옹호해 간다.10) A의 실체 가운데 물과 공기와 같은 두 가지 실체적 형상 혹은 실체가 그대로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를 지키고 있다면, A의 존재론적 위치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에서도 보여진다. 예를 들어, ‘피(血)의 모든 부분은 피이다’와 같이 모든 부분은 전체와 동일하다는 논리가 그것이다.11) A의 모든 부분은 A이지, 그 가운데 다른 실체를 가지지 않으며,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아베로에스의 해법도 완전한 것일 수 있는가? 우선 간단하게 중세인들이 가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가운데 실체와 우유의 사잇길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우유적인 것은 주체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실체적인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존재론적 논의의 벽 가운데 토마스는 실체적 형상과 우유적 형상의 사잇길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원소적 형상, 즉 중계적 형상의 존재론적 위치를 인정하지 않았다.12) 당시 중세인들의 대부분은 실체가 아니면 우유였다. 그 사이에 어떤 것을 가정하지 않았다.

 아비첸나도 아베로에스도 당시 중세인들의 아리스토텔레스 존재론의 벽 속에 있지만,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이 물체 이해의 난제를 해결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들의 해법은 중세 서구에도 유입되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하여 극복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과연 극복된 것인가? 이제 이를 다루어보자.


4.아베로에스도 아니면서 아비체나도 아닌 곳의 길?

4.1 토마스의 고민

 토마스는 아베로에스도 아비첸나도 아닌 곳에 해법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형이상학 주해』와 『원소의 혼합』에서 다룬다. 토마스에게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 가운데 다수의 현실적 존재자를 내포한다는 것을 불가능한 것이다.13) 그렇다면 그의 해법은 우선 아비첸나와 같은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는 아비첸나의 것과 함께 아베로에스의 것도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위에서 논의하였듯이 그는 원소적 형상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우선 원소가 아베로에스와 같지 않다면, 혼합체 가운데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남아있단 말인가? 토마스는 다음의 예를 든다. 에티오피아인의 피부가 검은 것은 영혼, 즉 형상으로 인하지 않고, 원소들의 혼합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한다.14) 토마스는 원소의 형상은 혼합체 가운데 그 형상을 상실하더라고 혼합체의 질료 가운데 남아있다고 한다. 이것은 혼합체의 형상이 하나의 단일한 것이라는 주장하면서, 동시에 원소들이 혼합체 가운데 어떤 식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원소는 인간의 실체적 형상인 영혼과 관련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해부학적 혹은 생물학적 혹은 물리학적 논의에서 원소들은 여전히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는 죽은 시체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소들이 실체의 정의, 즉 실체적 형상과 관련되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원소의 혼합』에서 토마스는 비록 혼합체 가운데 원소들은 남아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남아있지 않으며, 단지 그 능력 혹은 기능이 남아있다고 정의한다.15) 이러한 논의는 『신학대전』에도 이어진다.


“철학자에 의하면 『생성소멸론』 1권에서 원소의 형상은 혼합체 가운데 남아있지만, 현실적이지 않고 기능적으로(virtute) 남아있다.16)


이렇게 토마스는 혼합체 가운데는 오직 하나의 형상만이 존재하며, 원소들의 형상은 기능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며, 현실적으로 남아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두 가지는 결코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 가운데 존재 할 수 없다는 공리에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토마스의 해법도 완전히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인가? 우선 토마스의 철학 가운데 그가 끝까지 고수하는 형상와 질료로 인한 실체의 이해부터 재고되어야한다. 한 인간의 죽음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사라진 것은 영혼, 즉 형상이다. 그러면 남은 것은 육체이다. 이 육체는 하나의 자연적 사물, 즉 실체이다. 이 육체는 그렇기에 형상과 질료로 구성되어져 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이 육체, 즉 시체는 실체가 아니게 된다. 형상 없는 질료는 토마스에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당연히 시체는 독립된 형상도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 시체는 실체이어야 한다. 그러면 이 육체가 영혼과 함께 있을 때 그 존재는 그렇게 되는가? 그럴 때는 이 육체가 지니는 이런 존재론적 위치는 상실되는가?

 생전의 육체는 영혼의 질료이며, 그 스스로는 실체가 아니다. 만일 그것의 존재론적 위치를 상실하지 않는다면, 한 인간의 실체는 더 가지 현실성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는 토마스에게 불가한 것이다. 한 육체는 생전이나 사후에도 그 동일성을 유지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 자체의 독립된 존재성을 가져야하는 것은 아닌가? 만일 독립성을 가진다면, 하나의 실체는 다른 다양한 현실성으로 구성된다는 논의가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도 위에서 여전히 문제를 남긴다. 하나의 사물은 원소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마스의 한계는 이후 스코투스의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스코투스는 형상의 다수성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그는 질료로 육체의 자기 존재성을 긍정한다. 그럼으로 생전에도 사후에도 그것은 동일성을 유지한다고 하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이러한 스코투스의 논의에 일부는 그렇다면, 한 인간이란 존재는 여러 존재의 모임이냐는 식의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쉽지 않다. 스코투스는 인간의 형상으로 영혼은 그 자체로 실존을 가지며, 이 실존은 영혼이 구성요소인 합성체의 실존과 구별되어진다. 즉, 구성 요소, 즉 원소들은 그들 자신의 개별적 실존을 가진다. 그러나 전체는 하나의 실존을 가진다. 즉 한 인간은 서로 다른 실존을 가지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있지만, 하나의 실존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스코투스는 구성요소의 실존은 전체의 실존에 의존한다고 한다.17) 그만 스코투스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어두자. 하여간 그는 토마스와 다른 길을 간다. 그의 해법은 넘겨두고도 그의 토마스에 대한 비판은 필자에게 유효해 보인다. 합성된 것은 형상과 질료로 이루어진다. 이 질료는 근본적으로 4 원소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이들은 각각 자신의 실체적 형상을 가진다. 원소적 형상은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A가 되기 전에 물과 공기는 나름의 실존을 가지며, 나름으로 실체이다. 그렇지만 A가 되면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 그리고 나름의 존재를 가지지도 않는다. 그러면 이들은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토마스는 이들이 남아있지만, 어떠한 현실성도 가지지 않은 형태, 즉 어떤 나름의 실존도 가지지 않은 형태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남아있는가? 기능적으로 남아있다. 왜 토마스는 이렇게 주장하는가? 그것은 그가 이해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때문이다. 하나의 존재자, 즉 실체는 하나의 존재를 취한다. 즉 실체적 형상은 하나의 존재를 가진다. 그런데 이 실체적 형상은 우유적 형상과 구별되어진다. 그것은 변화하거나 등급을 가지거나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실체적 형상의 정의가 이 문제를 힘들게 한다. 그러면 원소의 실체적 형상은 합성체 가운데 어떻게 되는 것인가?

 토마스는 아비첸나도 아니고, 아베로에스도 아닌 곳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곳이 가능한가? 토마스는 완전한 이론을 마련하였는가? 위에서 보았듯이 토마스 역시 이 문제에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4.2아베로에스도 아니고, 아비첸나도 아닌 곳은 가능한가?

 토마스가 희망한 곳은 가능한가? 위의 논의로 볼 때, 결론적으로 이러한 곳은 힘들 것 같다. A를 이루기 전, 물과 공기는 각각 하나의 실체이다.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지며, 실체적 형상을 가진다. 이들 실체는 다른 곳에 의하여 존재하는 우유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분명한 실체이다. 이들 실체가 A가 되면, 그 존재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죽음 이후 한 인간의 육체는 그의 생전 육체와 같지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인간의 우유적 속성 가운데 어떠한 것도 자연적으로 생전의 육체에서 사후의 육체에로 옮겨질 수 없다고 한다.18) 그러나 경험적으로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의 심장과 뇌 그리고 그의 육체적 모든 것과 우유적인 것은 사후에도 수적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험적 논의와 다른 것을 토마스가 주장하는 것은 그의 존재론적 틀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논의로 보자면, A를 이루는 물과 공기는 A를 이루기 전과 이루고 있는 동안 그리고 이루고 난 후, 각각의 수적 동일성을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우리의 일반적 경험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경험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것을 굳이 고수한 것은 그것이 존재론적 틀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아베로에스도 아니고, 아비첸나도 아닌 곳에 이 문제의 해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용한 서구의 중세 철학이 그러한 곳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불변하는 형상인 실체적 형상이 놓여있는 이상 이 문제는 쉽지 않다.19) 토마스에게는 실체와 우유라는 두 가지 개념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그리고 이 사이에는 어떤 것도 있지 않다. 그리고 실체는 형상과 질료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질료는 형상에 의하여 존재를 가지는 것이다.20) 이러한 형상은 무엇보다 실체적 형상에 다름 아니다. 토마스는 실체적 형상을 실체와 같이 형상과 질료가 합성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체적 형상은 질료 없이 완전한 본질을 가지지 못한다고 한다.21) 실체적 형상은 형상과 질료에 의하여 구성되는 실체일 때 온전한 본질을 가진다. 그렇다면, 실체의 이 두 부분이 가지는 각각의 존재는 어찌되는 것인가? 질료는 토마스에게 현실적 존재가 아니지만, 동시에 무(無)는 아니다. 즉 가능태로 있는 것이다.

 A라는 물질적 실체는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질 때, 온전한 본질을 가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질료는 물과 공기이다. 그런데 이 물과 공기도 각각 하나의 실체이다. 그러면 이들 실체가 질료로 A라는 합성실체의 구성원이 된다. 그런데 이 원소들의 실체가 가지는 고유한 자기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그들이 가지는 현실적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토마스의 이러한 중세 후기에 이르러 많은 이들에게 회의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이는 당장 그 다음 세대인 스코투스에서도 보여진다. 이들 후기 철학자들은 신은 어떤 실체적 형상 없이도 실체 가운데 질료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것은 1277년 이후 강하게 주장된 신의 절대적 권능으로 보증될 수 있었다. 이러한 비판 가운데도 토마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질료를 형상도 결핍도 아니며, 그 스스로는 어떠한 형상도 가지지 않고, 어떤 결정도 가지지 않으며 그 자체로는 어떠한 현실성도 가지지 않은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만일 질료가 어떤 형상, 즉 현실성을 가진다면, 또 다른 실체적 형상이 주어질 때, 그 형상으로부터 어떤 실체적인 것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22) 이러한 이유에서 토마스는 질료에 어떠한 현실성이나 형상을 허락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실체 가운데 질료의 존재론적 위치는 어떻게 되며, 스코투스가 토마스에게 던진 질문에 토마스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A를 구성하기 전, 그리고 구성하는 동안 또 구성한 후 A를 구성하던 물과 공기의 수적 동일성은 어떻게 되는가?

 실체적 형상은 질료 없이 본래적 정의를 가지지 못한다. 실체는 질료를 요청하며, 이 질료는 어떤 현실성도 가지지 않은 존재이다. 만일 질료가 어떤 현실성도 가지지 않는다면, 실체의 단일한 형상은 쉽게 설명된다. 그러나 질료는 실체로 하나의 형상을 가지기 이전에 이미 ‘존재’한 것이다.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스스로 현실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질료는 형상을 만나 하나의 실체가 될 때, 더 이상 그 현실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 질료의, 수적 동일성은 당연히 유지되지 못한다.

 아베로에스 역시 이를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원소들의 실체적 형상, 질료로 원소의 독립적 존재는 합성체가 되고난 이후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베로에스는 실체적 형상과 우유적 형상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스스로 독자적 존재성을 가지면서, 혼합으로 변화되어지는 형상인 원소적 형상을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A를 구성하던 물과 공기는 A가 된다. A의 부분은 물과 공기가 아니라, A는 물과 공기가 되는 것이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피(血)의 모든 부분은 피이다’라며, 모든 부분은 전체와 동일하다고 하듯이 말이다.23) 원소적 형상이 그 자신의 확고한 형상을 버리고 전체와 동일하게 되어진단 말이다. 하지만, 이는 우선 원소적 형상이란 것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우선 토마스는 이러한 원소적 형상, 즉 중계자는 하나의 종 가운데 있지 않게 된다고 비판한다.24) 하나의 사물이 하나의 종에 있지 않고, 이 종에 있다가 저 종으로 위치를 옮기는 것은 토마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토마스는 아비첸나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아니다. 아비첸나는 원소의 형상이 가지는 존재론적 위치와 수적 동일성을 유지되지만, 그저 그것들이 가지는 성질이 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토마스는 근본적으로 아비첸나와 다른 길을 갔다. 왜냐하면, 그는 각각의 실체는 오직 하나의 실체적 형상만을 가진다고 하기 때문이다. A라는 합성체는 하나의 실체적 형상만을 가질 뿐, 그 성질이 달라진 물과 공기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다수 형상의 실체를 인정하지는 않는 것이다.25) 그러나 아비첸나는 원소의 실체적 형상이 가지는 존재론적 위치와 그것이 가지는 수적 동일성을 들며, 토마스의 논의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베로에스와 아비첸나의 논의는 형상의 유일성론과 다수성론이란 이름으로 각각의 전통을 이루게 될 것이다. 물론 조금은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들 양극단에 서기는 많은 이들은 원지 않았다. 토마스 역시 그러한 인물이다. 문제는 그러한 곳에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5.대안은 없는가?

 이 문제에 대한 중세적 대안은 쉽지 않다. 중세 자연학사의 대가인 마이어는 중세 철학자들이 이 문제에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중세의 해법은 크게 아베로에스와 아비첸나로 구분한다. 즉, 아베로에스와 토마스 등의 형상의 유일성론자와 아비첸나와 스코투스 등과 같은 형상의 다수성론자로 구분한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중세의 전통을 후에 아베로에스적 해법과 근대적 해법으로 나누어진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린다.26)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가진 형상과 질료에 의한 중세 아리스토텔레스 존재론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가진 한 명의 중세 철학자를 가정해 보자. 그의 이름을 네모(Nemo)라 부르겠다. 우선 그는 형상의 실재성을 거부한다. 단지 그것은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 실체적 형상은 단지 하나의 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원소의 형상도 그저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원자를 가정하며, 이것으로 사물을 설명한다. 그 원소의 결합에 특정의 형상을 개념으로 부여할 뿐이다. 그에게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토마스와 스코투스의 실재론을 거부하였다. 반면 그는 옥캄주의의 노선을 따라간다. 독일의 원자론자인 중기우스(Jungius)는 옥캄주의를 원자론과 관련하여 이해하였다. 왜냐하면 그에게 옥캄의 경제성의 원리이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 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홉스 등은 원자론에 대한 자신의 옹호 가운데 유명론적 전통과 경제성의 원리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옥캄 자신은 그렇지 않다. 그의 많은 논의가 원자론의 등장을 지지하지만, 그 자신이 그러한지는 회의적이다. 즉 옥캄주의와 옥캄 자신의 물질적 실체에 관한 이해는 구분되는 것이다.27) 옥캄의 영향 가운데 원자론을 전개한 중세 철학자는 누구인가? 그런 인물이 있다면, 그는 네모의 지적 동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물은 흔하지 않다.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다. 오뜨레꾸르의 니콜라스(Nicholas of Autrecourt)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옥캄의 영향력 가운데 이루어진 원자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아베로에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가지는 문제에 원자론적 해법을 제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가지적이지 못하고,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원자의 움직임으로 그렇듯 하게 설명하고자 하였다.28) 그러나 이러한 원자론은 서서히 아리스토텔레스 존재론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일면을 보여준다.

 근대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에서 벗어나 서서히 독자적 길을 가기 시작한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을 벗어나면서, 새롭게 개념을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네모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간 과도기의 철학자일 수 있을 것이다. 그 네모는 토마스와 스코투스 그리고 옥캄으로 넘어온 여정의 끝이며, 새로운 해법의 시작이다. 네모의 눈에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존재론이란 체계 속에서 자연 사물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길이 없어 보였다. 대안은 기존의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많은 대안이 있지만, 이들 대안은 항상 또 다른 대안의 등장을 피하기 힘들었다. 왜 일까?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하나의 벽 속에서 사고하고 대안을 구상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이었다.


6.아리스토텔레스를 떠나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떠나며, 근대 철학은 시작한다. 스코투스와 옥캄에 이르러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을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더니 근대에 이르러 이들은 새로운 틀을 마련하였다. 자연 사물을 이해하는 틀 역시 마찬가지이다. 많은 이들이 원자론을 수용하였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바쏘(S.Basso)가 그러한 인물이다.29)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 속에 있던 존재론과 자연 철학을 비판한다. 그러한 비판은 질료에 대한 비판 역시 포함한다. 자연스럽게 질료에 대한 비판은 혼합체에 관한 비판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비판은 『질료와 혼합체에 관하여』(De materia et mixto)에서 확인할 수 있다.30) 그의 답은 원자론이다. 이렇게 근대는 새로운 틀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이것이 중세의 최종적 결론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틀 속에서 다양한 철학적 발전은 이루었다. 존재론과 자연철학 그리고 논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틀 속에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도 어떤 경우에는 벽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예가 혼합에 그를 통하여 자연 사물의 구조에 관한 논의이다.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한 많은 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며, 이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대안으로 성립된 것이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어쩌면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의 틀 속에서 이 문제는 처음부터 하나의 난제였을지 모른다. 문제는 실체적 형상에 관한 그리고 형상과 질료에 관한 그들의 생각이 변화하거나 패기 되어야 한다.

 근대 철학은 많은 철학의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고 정의하였다. 이것이 중세의 관점에서 하나의 왜곡일지 모른다. 그러나 근대의 관점에서 이것은 자연스러운 역사적 귀결이다. 이미 위에서 본 아비첸나와 아베로에스에서 옥캄에 이르는 노선을 보면, 네모의 등장은 그를 뒤이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는 네모와 절대적으로 동일하지는 않아도, 그와 함께 설 수 있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오뜨레꾸르의 니콜라스가 그러하다. 그 뿐인가? 근대의 바쏘는 이러한 자연적 흐름의 마지막 형태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네모의 존재는 중세 철학의 타락이나 왜곡일 뿐인가 아니면,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의 벽을 벗어나려는 자연스러운 역사적 흐름인가? 사실 중세니 근대니 하는 것은 이후 현대에 역사를 매뉴얼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구분이다. 그러 하나의 철학적 흐름으로 이해한다면, 원자론은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속에서 자연 사물을 이해하려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렇게 등장한 원자론은 근대 자연 철학의 주된 논의에 자리 잡는다. 이는 근대 자연 철학의 주된 논의인 기계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자연 사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라는 중세 존재론적 화학적 물음은 중세 내부에 자연적으로 근대로 나아갈 가능태로 머물고 있었다. 즉 중세는 자기 가운데 근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1) R.Wood, M.Weisberg, "Interpreting Aristotle on mixture: problems about elemental composition from Philoponus to Cooper"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35 (2004), 681-706; R.Wood, M.Weisberg, "Richard Rufus's Theory of Miixture - A Medieval Explanation of Chemical Combination" Annals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2003), 282-292. 그리고 중세 화학의 일맥을 연구할 수 있는 연금술에 관한 연구서들도 볼 수 있다. P.Kibre, "Albertus Magnus an Alchemy" In Albertus Magnus and the Sciences - Commenmorative Essays 1980, ed. J.Weisheipl (Toronto:PIMS, 1980), 187-202; W,Newman, "Art, Nature, and Experiment among Some Aristotelian" In Texts and Contexts in Ancient and Mendieval Science, ed. E.Sylla et al. (Leiden:Brill, 1997), 305-317.


2) A.Maier, “The Theory of the Element and the Problem of their Participation in compounds” In On the Threshold of exact Science, ed. & trans. S.Sargent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1982), 125.


3) Thomas Aquinas, De mixtione elementorum, (Torino:Marietti, 1954), n.431. 이후 이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토마스 아퀴나스, 『원소의 혼합』, 유대칠 옮김 (http://blug.daum.net/ockham-thomas)을 사용하였다.


4) A.Maier, “The Theory of the Element and the Problem of their Participation in compounds”, 139-140.


5) 이 글에서 필자가 사용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중세시대 통용되던 일반적 이해 속의 아리스토텔레스에 한정된다. 필자는 고대철학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의 전공자들이 연구하는 논의 속의 역사적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하여 무지하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적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닐 수 있다.


6) Avicenna, Liber tertius naturalium: 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ed. S. Van Riet (Leiden: Brill, 1987), 67.


7) Thomas Aquinas, De mixtione elementorum, nn.431-432; 토마스 아퀴나스, 『원소의 혼합』, 유대칠 옮김, nn.3-4.


8) R.Wood, M.Weisberg, "Interpreting Aristotle on mixture: problems about elemental composition from Philoponus to Cooper", 683. 


9) Averroes, In de caelo et mundo 3, 67 (Venice: Juntas, 1562-74). repr. Frankfurt: Minerva, 1962.


10) Averroes, Sermo de substantia orbis, fol.3r 22-25 (1550: Venedig). 위의 인용문은 다음의 것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요셉 드 프리스, 『스콜라 철학의 기본 개념』 신창석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1997), 225.


11) Aristoteles, 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1, 10, 328a9-11; R.Wood, M.Weisberg, "Interpreting Aristotle on mixture: problems about elemental composition from Philoponus to Cooper", 683. 


12) Thomas Aquinas, De mixtione elementorum, n.434; 토마스 아퀴나스, 『원소의 혼합』, 유대칠 옮김, n.8.


13) Thomas Aquinas, In libros Metaphysicorum 7 1, 13, n.1588. (Roma:Marietti, 1950).


14) 같은 책, 7장, n.2.


15) Thomas Aquinas, De mixtione elementorum, n.439; 토마스 아퀴나스, 『원소의 혼합』, 유대칠 옮김, n.13.


16)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a q.76, a.4, ad 4.


17) P.King, "Scotus on Metaphysics"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Duns Scotus, ed.Th.Williams (Cambridge: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53-54.


18) Thomas Aquinas, In Sent. 4, 44,1,1,2 ad 3 (ed.Busa).


19) R.Wood, M.Weisberg, "Richard Rufus's Theory of Mixture - A Medieval Explanation of Chemical Combination", 285.


20) 토마스 아퀴나스, 『유와 본질에 대하여』 정의채 옮김 (서울:서광사, 1997), 7장, 81.


21) 같은 책, 7장, 77.


22) J.Wippel, "Metaphysics"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Aquinas, ed.N.Kretzmann et al. (Cambridge: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112.


23) Aristoteles, 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1, 10, 328a9-11; R.Wood, M.Weisberg, "Interpreting Aristotle on mixture: problems about elemental composition from Philoponus to Cooper", 683. 


24) Thomas Aquinas, De mixtione elementorum, n.435; 토마스 아퀴나스, 『원소의 혼합』, 유대칠 옮김, n.9.


25) J.Wippel, "Metaphysics", 112.


26) A.Maier, “The Theory of the Element and the Problem of their Participation in Compounds”, 124-142.


27) A.Goddu, “Ockham's Philosophy of Nature"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Ockham, ed. P.Spad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149.


28) J.Weinberg, Nicholas of Autrecourt (New York: Greenwood Press, 1969), 162; E.Grant, Physical Science in the Middle Aq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1977), 32.


29) L.Nielsen, "A Seventeenth-Century Physician on God and Atoms: Sebastian Basso" In Meaning and Inference in Medieval Philosophy, ed.N.Kretzmann (Dordrecht: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88), 297-370.


30) Ibid., 305-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