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교육철학
(『국가』와 『메논』 그리고 『파이돈』을 중심으로)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0 서론
어느 철학자나 그렇듯이 교육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물음만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하나의 전체적인 체계 속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교육이란 본시 하나의 인간에 대한 문제요, 하나의 국가에 대한 문제이며,
하나의 윤리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교육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단지 그가 생각한 교육이 무엇인가라는 하나
물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오, 그의 철학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여력이 없으므로
단지 그러한 것을 개괄하여 볼뿐이다.
그 어느 철학자가 교육의 중요성을 마다하겠는가마는 그 중에 플라톤은 특히 그러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에서 인간의 처음 상태를 "비이성적인 상태"( )라 한다.
그리고 그는 훌륭한 교육으로 "이성적인 상태"( )로 나아간다고 한다. 즉 그에게 인간을 이성적이게
하는 것은 교육 혹은 훌륭한 양육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욱 더 강한 여조로 『국가』편에서 이리 적고 있다.
"건전한 양육이나 교육이 이루어짐으로서 뛰어난 자질이 일어나고 또한 건전한 자질을 교육받음으로서 앞선 사람들보다 더 나음
사람으로 자란다."
이처럼 그에게 교육은 중요한 것으로서 단적으로 인간을 이성적이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그의 사상을 논하기 위해 그의 인간관과 진리관을 살피고 그의 인식론에 핵심을 이루는 상기를 다룰 것이다. 이를 통하여 그가 말한 교육을
다루고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그의 저서인 『메논』과 『파이돈』 그리고 『국가』와 『티마이오스』를 따라갈 것이다.
2.0 본론
그에게 무엇보다 교육이란 참된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에게 참된 것이란 참으로 있는 것이며, 이는 그의 철학을 그의 철학이게
하는 바로 그것, 즉 이데아를 말하는 것이다. 그에게 교육이란 결론적으로 이러한 이데아를 상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데아에 대한
상기를 다루어야 할 것이며, 상기의 주체인 인간의 영혼 그 중에서도 이성적 혼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우선 그의 사상을 가난히 개괄해 보기로
하자.
그에게 참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영혼이다. 그는 영혼과 육체를 서로 다른 존재로 이해한다. 육체와
영혼은 배와 선장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이처럼 영혼은 육체의 움직임과 그 외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영혼만이 그에게 참 존재이다. 육체는
그에게 영혼의 훌륭함을 막는 하나의 방해되는 요소이며, 마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파이돈』에서 육체를 마다해야하며, 영혼의 훌륭함을
더하는 것이 철학이라도 정의한 것이다. 그런 그는 영혼을 사멸되는 육체와는 다른 것이란 한다. 영혼은 영원한 것이며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은 육체의 생성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며 영혼은 육체에 들어오기 전에 이데아(
)를 보았다고 한다( ). 플라톤은 자신이 영혼에 들어오기 전에 본 것을 상기하며 교육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한 상기를 그는 바른 인식이라고 한다. 그는 감각적인 경험을 중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영혼이 올바른 것을 인식하려 하면
육체가 이를 기만한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기본 사상을 근거로그의 교육을 살피기로 하자. 그에게 바른 인식이란 단지 감각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성에 의한 것을 강조한다. 즉 이성이 무엇인가를 상기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기의 좋은 방법으로 교육을 이야기하며 이는 대화를
통하여 가능하다. 이러한 상기는 플라톤이 피타고라스의 영혼윤회를 받아드린 시기 이후에 드디어 자기 철학 가운데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처음 출처가 『메논』이다. 이 대화편에서 그는 단지 대화를 통하여 무지한 소년을 상기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영혼이 이미 본
것( )을 다시 생각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감각을 중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과 플라톤의 교육이 어떠한
차이를 가지는지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백지의 상태에서 교육으로 하나씩 무엇인가를 채우는 것이며 반면 플라톤은 이와 다르다. 그는
이미 본 것을 즉 교육을 받는 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 둘을 간단히 논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르치는 교육을 말했다면
플라톤은 일깨우는 교육을 논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교육 방식은 대화편이라는 그의 저술 형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어찌하던 그는 이성의 상기를
강조하였다. 그 과정을 『메논』을 통하여 알아보자.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논의를 주장하며 무지한
한 소년을 단지 대화를 통하여 상기시킴으로서 어려운 수학의 공식을 일깨운다.
"소크라테스 ; ... 영혼은 사멸하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여러 번 태어난 것이기에 이승의 것과 저승의 것을 모두 보았기에 무엇을 배우지 않은 것이 없네. 그리하여 그는 훙륭함에 대한 것이건 또한 다른 것에 대한 것이건 영혼이 이미 본 것을 상기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네...."
"메논 ; ... 오! 소크라테스님, 하지만 어찌하여 선생께서는 우리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단지 상기하는 것이라 하는지요. 선생께서 어찌하여 그러한지를 알려주세요?"
그리고 그는 소년을 그 실험대상자로 하여 상기를 보여준다. 단지 대화를 통해서만 소년이 어려운 수학을 공식을 일깨우는 것을 메논에게 보여준다. 즉 그는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단지 일깨워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리 말한다.
"소크라테스 ; 이보게나 메논, 어찌 생각되는가? 이 소년이 말한 것은 그 소년의 의견이 아닌 것이
있는가?
메논 ; 아닙니다. 그 모두가 그의 것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 ; 하지만 우리가 알 듯이 얼마 전에 그는
알지 못 한 것이 아니었는가?
메논 ; 그러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러면 이 의견은 단지 그의 안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여기에서도 사실 소년뿐 아니라 메논마저 상기를 시키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가 있다. 이 짧은 글에서 우리는 플라톤의 교육 방법론을 알 수 있다. 그는 이성의 상기를 강조하였다. 그는 그 상기의 수단으로서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방법인 대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라 여겼다. 사실 이러한 이유가 그가 대화편이라는 저술 방식을 고수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는 단지 가르치는 교육을 거부한다. 그는 학생에게 있는 무엇인가를 드러내려고 한다. 비록 이것이 신화적인 설명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가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그의 교육방법론인 상기(想起)에 대하여 논하였다. 이제 그러한 상기를 통하여 그가 자신의 교육이론을 어떻게 꾸며
가는지를 그의 주저인 『국가』( )를 통하여 살피기로 한다. 그는
이상의 내용을 『국가』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통하여 다시 한번 이를 확인한다. 그것은 결박당한 한 죄인이 동굴의 안쪽을 보고있으며
그는 오직 동굴 밖의 실재를 보지 못하고 그저 그림자만을 보고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에 이어서 그는 자신의 상기설에 바탕한 자신의 교육이론
혹은 교육철학을 제시한다. 그는 결박당한 죄인이라 비유된 어리석은 사람이 치유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박에서 풀려나 목을
뒤로하고 동굴 밖의 실재를 보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강한 실재의 불빛을 보면 그 사람은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러워할
것이라 한다. 그것은 참 있는 것으로 인한 눈부심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참 있는 것을 보고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짢아 할 것이라
적고 있다. 여기에서 플라톤은 익숙해짐( )이 필요하다고 한다. 즉
처음에는 그림자에 그리고 점점 나은 것으로 마지막에는 참 있는 것, 즉 이데아를 보게 하여 익숙해짐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이성에 의한 것으로 이루어지며 다시 말해 이데아를 보는 것은 이성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공적이건 사적이건 슬기로움을 바라는 이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즉 이러한 익숙해짐도 결국은 상기로서 가능한 것이며 이는 이성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성으로 이데아를 볼 때
슬기로워진다는 것이다. 즉 그에게는 이성 즉 이데아를 보는 이성이 강조되며 이를 훌륭하게 하는 것이 상기인 것이다.
그에게
교육이란 지식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데아를 이성을 통하여 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니고 있는 능력을 바르게
자리잡아주는 것이다. 이렇게 혼의 상태를 전화시키는 것이 그에게는 진정한 철학이며 동시에 참 있음(이데아)에로 오르는
것이다( ).
그러므로 상기를 교육의 중심에 두었고,
이데아를 보는 것, 즉 상기가 금방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교과교육을 설명한다. 이미 앞서 말한바
처음에는 그림자의 것을 그리고 나아가 결국 이데아에 이르는 교육이 나은 것이라 여긴 플라톤은 스스로 이데아에로 우리를 이끄는 학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처음에는 생성소멸과 관계하는 것을 논한다. 이는 체육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곧 이것이 그러한 학문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하학을 이야기하면서 이는 언제나 있는 것에 대한 학문이라 하며 높이 평가하고 아름다운
나라( )는 시민이 기하학에 능한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수학을 이야기하면서 수학은 이성에 의하여서만이 다루어지는 학문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은 이성을 결박에서 풀어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서 최선의 것을 바라보게 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앎 그 자체에 도달하는 것으로
변증술( )을 논한다.
이러한
것 즉 산술이나 기하학 그리고 변증술을 그는 자신이 찾는 그런 학문이라도 한다. 이러한 학문은 이성에 의한 것이다. 그에게는 이성에 의한 것이
무엇보다 중시되었다. 억견( )가 생성( )을
그 대상으로 한다면, 이성( )는 존재( )에 관계된 것이라는 것이라
한다. 그는 이러한 존재에 관한 이성을 올바르게 가진 자. 즉 교육에 합당한 자가 통치자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이성에
의하여 지배받듯이 한 국가도 그러하여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과 국가의 관계를 언제나 小人間과 大人間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그는 인간의 영혼을 이성의 부분과 용기의 부분 그리고 절제의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성의 부분을 강조하여 용기와 절제 두
마리 말을 이끄는 마부에 비유하였다. 이처럼 그는 이성에 의하여 가장 잘 교육되어진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 옮은 것이라 여겼다. 이는
철학자( )란 진리를 바라보기
좋아하는 자이며, 이런 이가 나라를 다스리던가 아니면 군왕이 철학자가 되던가 하여야지 나쁜 것이
종식된다( )고 그는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나라에 나쁜 일이 종식되는 것이란 불가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그의 교육이론은 우선 이데아에 대한 것과 이에 대한 한 개인의 참 지식의 수단인 상기를 다룸으로 논의가 시작하지만 결국은
철인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친다. 이는 교육이란 단지 개인의 문제도 아니며 국가의 문제도 아니라 모두의 문제이며 또한 참된 것에 대한
문제이며 인식론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3.0 결론
필자는 지금까지 플라톤의 대화편 『메논』과 『파이돈』 그리고 『국가』를 따라가며 그의 교육에 대한 논의를 살폈다. 이는 이미 서론에서 말한바 하나의 물음이 아니라 여러 물음이 동시에 다루어져야할 그러한 물음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간략히 소개하는 정도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에게 교육이란 단지 이성이 진리를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좋은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상기를 이야기한다. 이 상기는 그의 인식론과 교육의 주된 논의 대상이며 무엇보다 이 육체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 즉 이미 본 것( )에 대해 다시 생각해 냄이며, 아울러 이성( )이 그 이성적인 사유( )를 통하여 이성적인 것( )을 인식함이다. 이는 감각적인 것( )을 감각( )에 의해 감각된 것에 비하여 플라톤에게는 보다 더 진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기는 이성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짐이 필요하며, 여기에서 교과교육에 대하여 논의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이데아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며 이는 이성으로 가능한 것이고 이것에 의한 학문 즉 산술, 기하학 그리고 변증술을 강조한다. 이는 이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을 통하여 이성의 올바른 자기 자리를 잡음으로서 슬기로워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국가 역시 이러한 것의 확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데아를 바라는 것은 이성으로 가능하며 이러한 이성이 한 인간을 지배하듯이 그러한 것을 올바르게 가진 이가 국가를 다스림으로서 국가가 이성적이기를 바란 것이다. 이처럼 그의 교육이론은 『국가』라는 그의 대표작에 주된 논의로 등장하여 이것이 이성을 바로잡아 한 인간을 슬기롭게 하고 나아가 국가를 슬기롭게 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국가』의 많은 부분에서 교육을 강조하며 이는 그의 후기 자연철학적 대화편인 『티마이오스』에서도 드러난다. 이처럼 그는 줄기차게 교육을 강조한다. 그것은 그의 궁극적인 목표인 이데이의 바라봄이 바로 이것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하여 그가 꿈꾼 이상적인 국가가 가능하고 개인이 슬기로워지며 또한 국가가 슬기로워지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럼 그에게 교육이란 단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철학이 지향하는 바를 구현하는 하나의 초석으로 여기고 있음을 우리는 그의 대화편 전체를 통하여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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