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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유대칠의 교부학 공책 3 - 교부의 언어

3. 교부의 언어

 

로마제국이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나누어지고 교회도 결과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동방교회와 서로마 제국의 서방교회로 나누어지게 된다. 동로마 제국은 헬라어를 주로 사용했으며 서로마 제국은 라틴어를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은 고대 헬라스 철학으로부터 오랜 시간 이어온 지적 전통 속에서 당시 지중해 연안 사상의 중심지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초기 교부 문헌은 대부분 헬라스어로 쓰인 것이었고, 라틴어로 쓰인 교부 문헌은 2세기 말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155?~240?)’의 것으로 시작한다.

 

동방교회(동방 정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교회, 성공회, 개신교회)의 편에서 보면, 교부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라틴 교부’와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 교부’로 나뉜다. 흔히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고대와 중세 교부 문헌을 ‘라틴 교부 문헌(patrologia latina)’과 ‘헬라 교부 문헌(patrologia graeca)’으로 나뉘는 것도 교부의 구분에서 기인한다. 더 정확하게는 교부가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교부는 라틴어와 헬라어만 사용한 게 아니다. 즉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에만 교부가 있던 게 아니란 말이다. ‘오리엔트 정교회(Ecclesiae Orthodoxae Orientales)’에도 그들의 정통을 위한 교부들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리아어(Syriac), 아르메니아어(Armenian), 아랍어(Arabic), 콥트어(Coptic), 그으즈어(Ge'ez), 조지아어(Georgian) 그리고 슬라브어(Slavonic) 등과 같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오리엔트 정교회의 ‘오리엔트 교부 문헌(patrologia orientalis)’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원인 ‘시리아 정교회(ܥܕܬܐ ܣܘܪܝܝܬܐ ܬܪܝܨܬ ܫܘܒܚܐ , Ecclesia orthodoxa Syrorum)’의 교부 ‘안티오키아의 세르베루스(ܣܘܝܪܝܘܣ ܕܐܢܛܝܘܟܝܐ , Σεβῆρος, 459?(465?)~538)’를 보자. 그는 오리엔트 정교회의 성인이며 동시에 그들의 정통을 위해 애쓴 교부다. 콥트 정교회에선 2월 8일이 그의 축일이고, 시리아 정교회에선 9월 29일이 그의 축일이다. 서방교회인 가톨릭교회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교부이며 성인이듯이 세르베루스 역시 오리엔트 정교회의 편에선 그러하다. ‘에페소스의 요한(ܝܘܚܢܢ ܕܐܦܣܘܣ, Ίωάννης ό Έφέσιος, 507?~588?)’도 마찬가지다. 그도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원인 시리아 정교회의 정통을 위해 애쓴 교부다. 8세기 ‘달야타의 요한(ܝܘܚܢܢ ܕܐܦܣܘܣ , John of Dalyatha, 690?~780?)’도 그러하다.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교부의 ‘시리아 교부 문헌(Patrologia syriaca)’도 어찌 보면 참으로 당연하다. 그 언어의 교회 공동체도 분명히 정통을 위해 애쓴 교부가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흔히 서방교회에선 ‘암브로시우스(Aurelius Ambrosius, 340?~397)’,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대 그레고리우스(Gregorius PP. I, 540?~604)’를 ‘4대 교부’라고 한다. 동방교회에선 ‘대 바실리오스(Ἅγιος Βασίλειος ὁ Μέγας, Sanctus Basilius Magnus, 329?~379)’,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스(Γρηγόριος ὁ Ναζιανζηνός, Gregorius Nazianzenus, 329?~390?)’, ‘요한 크리소스토모스(Ιωάννης ο Χρυσόστομος, Joannes Chrisostomus, 349?~407)’, 이들 ‘카파도키아 교부(Καππαδόκες Πατέρες, Patres Cappadociae)’를 ‘보편 교부(公敎父, οἰκουμενικοὶ πατέρες, Patres Oecumenici)’로 여기고 있다. 여기에 라틴교회는 이들 세 명의 교부에 아타나시오( Αθανάσιος Αλεξανδρείας, Athanasius Alexandrinus, 296(298)?~373)를 첨가하여 공경하고 있으며, 교황 비오 5세(Pius PP. V, 1504~1572)는 1568년 ‘교회 박사(Doctores ecclesiae)’란 칭호를 부여하였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각 4명의 교부를 합하여 8대 교부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정통 신앙을 위해 애쓴 이들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리엔트 정교회에도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이니 헌신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교부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우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편에서 사유하며 교부를 헬라 교부와 라틴 교부로만 나누었다. 그러나 이들 교회와 구분되는 오리엔트 정교회의 오리엔트 교부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며, 헬라어와 라틴어 이외 시리아어와 콥트어 그리고 아르메니아 등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한 교부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에데사의 주교이며 시리아어로 글을 쓴 시리아 정교회의 교부 ‘에데사의 야고보(ܥܩܘܒ ܐܘܪܗܝܐ, Jacob of Edessa, 640?~708)’의 노력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교부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단지 교부학이란 이름으로 과거를 돌아보며 교부의 역사를 기억한 주체가 오랜 시간 동안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편에서 기억의 주체로 머물며 교부학을 만들어갔을 뿐이다. 그러면서 오리엔트 교부를 기억하지 않았을 뿐이다.

 

유대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