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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의자리

유대칠의 교부학 공책 2 - 교부의 조건과 정통들

2. 교부의 조건과 정통들

 

누구나 다 교부라 불리는 건 아니다. 교부로 불리기 위해선 네 가지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성(古代性, antiquitas)’, ‘교리의 정통성(doctrina orthodoxa)’, ‘교회의 인준(approbatio ecclesiastica)’, ‘삶의 거룩함(sanctitas vitae)’이 바로 그것이다.

 

교부는 ‘고대성’을 가진 인물이다. ‘사도 교부(Patres Apostolici)’인 로마의 주교 클레멘스(Clemens Romanum 30?~101?)에서 시작해 라틴 교부로는 대 교황 그레고리오(Gregorius Magnus, 540~604) 혹은 세비야의 이시도로(Isidorus Hispalensis, 560?~636)까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위해 애쓴 이들이며, ‘헬라 교부’로는 다마스쿠스의 요한(Ιωάννης ο Δαμασκηνός, Iohannes Damascenus, 676~749)까지를 교부라 한다. 교부의 시대는 다양한 이단 논쟁이 이어지며, ‘정통’이 만들어지던 시기다. 그 정통의 시기 이후, 10세기와 11세기엔 ‘페트루스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 1096~1160)’와 같은 인물이 등장해 교부의 오랜 성과를 돌아보며 서로 다른 다양한 교부의 가르침을 두고 고민하는 신학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한 『명제집(Libri Quattuor Sententiarum)』을 남겼다. 교부는 바로 정통이 정립하는 과정 동안 애쓴 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부는 ‘교리의 정통성’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교리의 정통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오랜 논쟁의 결과물이다. 즉 서로 다른 다수의 논쟁이 이어져 왔단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은 모두 교부에서 제외되는가? 그렇지 않다. 교부는 자기 신학을 저서로 남긴 이들이다. 그리고 교리의 정통성은 바로 그 저서 속 내용을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그 저서가 쓰인 시점이 아직 그 저서에 등장하는 내용이 모호한 상태로 있다면, 즉 아직 그와 관련하여 정통 교리가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쓰인 것이라면, 그것을 두고 이단으로 여기고 교부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4세기에 와서 정통 교리가 확정되었다면, 그 정통 교리와 다른 2세기와 3세기의 다양한 논의는 용인된다는 말이다. 정통 교리가 정해지고 소급 적용해 2세기와 3세기의 주장과 그 주장의 인물을 교부에서 제외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다른 이들이 왜 가톨릭교회의 교부로 인정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 교부는 ‘거룩한 삶’을 산 이들이어야 한다. 즉 이론만이 대단할 뿐, 강론만 대단할 뿐, 그 삶이 좋지 않다면, 교부로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인준’이 필요하다. 그냥 유명하다고 교부가 되는 건 아니다. ‘교부’란 말이 ‘교회의 부모’라는 말이니, 교회의 인정이 필요하다.

 

결국 사상사적으로 정리해보면, 교회의 ‘정통’이 만들어가던 시기, 정통을 만들어가던 바른 삶을 산 이들이다. 그런데 ‘정통’은 단수가 아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Concilium Chalcedonense)의 결과를 수용하는 서로마의 ‘가톨릭교회(Ecclesia Catholica Romana)’나 동로마의 ‘동방 정교회(Ανατολική Ορθόδοξη Εκκλησία, Ecclesia Orthodoxa)’ 그리고 칼케돈 공의회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알렉산드리아 콥트 정교회(Ϯⲉⲕ̀ⲕⲗⲏⲥⲓⲁ ⲛ̀ⲣⲉⲙⲛ̀ⲭⲏⲙⲓ ⲛ̀ⲟⲣⲑⲟⲇⲟⲝⲟⲥ, Ecclesia Orthodoxa Coptorum)’ 등이 포함된 ‘오리엔트 정교회(Προχαλκηδόνιες Εκκλησίες, Ecclesiae Orthodoxae Orientales)’ 모두 나름의 정통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리아 동방교회( ܥܕܬܐ ܕܡܕܢܚܐ ܕܐܬܘܖ̈ܝܐ)’의 편에선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로부터 이단이라 단죄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Νεστόριος, Nestorius, 381?~451?)’의 영향을 긍정적으로 받으며 자기 신학을 이어간 ‘마르 나르사이(Mar Narsai, 399?~502?)’는 ‘교부’다. 자기 교회의 정통을 위해 애쓴 인물이니 말이다. 또 콥트 정교회의 25대 교황인 ‘디오스코로스 1세(Διόσκορος Α΄ ὁ Ἀλεξανδρείας, Dioscorus I, ?~454?)’도 교부다. 칼케돈 공의회의 결과를 두고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와 길을 달리하였지만, 비-칼케돈 교회의 편에선 정통을 위해 애쓴 ‘교부’다. 흔히 우리는 ‘가톨릭교회’나 ‘개신교’ 그리고 ‘동방 정교회’와 같은 곳의 편에서 교부를 봐왔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단수가 아니며 복수이고, 그 복수의 수만큼이나 정통도 다양하다. 하나의 정통에서 다른 정통이 이단일 수 있지만, 각각은 각자에게 정통이고 그 정통을 위해 고대 애쓴 이들이 있다. 그들 모두를 교부학의 틀 속으로 불러들이면 교부학은 조금 더 큰 의미에서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역사와 사상을 함께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 될 거다.

 

유대칠

 

[본 글은 유대칠의 교부학 강의록을 기반으로 한 공책입니다. 무단 사용을 금하며 사용시 출처를 분명히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