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학
Patrologia
유대칠 씀
Pax semper filiae meae Edith!
2. 교부의 조건
원래 ‘교부’는 주교에 한정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점점 확대되어 사제와 평신도까지 확대되어 사용되었다. 이를 우리는 6세기 교황 젤라시오 1세(Gelasius I, ?~496)의 『젤라시오 규정집(Decretum Gelasianum)』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이긴 하지만, 사제도 주교도 아닌 평신도 아키텐의 프로스페르(Prosper Aquitanus, 390?~455?)가 교부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주교와 사제 그리고 평신도를 두고 교부라고 부르고 기억한단 말인가? 그 기준을 살펴보자.
우선 기준은 4가지다. ‘고대성(antiquitas)’, ‘정통성(doctrina orthodoxa)’, ‘삶의 거룩함(sanctitas vitae)’ 그리고 ‘교회의 승인(approbatio ecclesiae)’을 얻은 자다. 하나씩 살펴보자.
교회의 역사에서 보면, 고대(antiquitas ecclesiae)에 속하는 이들, 즉 고대 교회의 속하는 이들이다. 간단히 ‘고대성(antiquitas)’이다. 현대에도 ‘공의회 문헌’에서 우린 교부라는 명칭을 읽을 수 있다. 지금도 공의회 문헌에 참여한 이들도 ‘교부’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을 ‘교부학’이 궁리하는 연구 대상이라 보진 않는다. 교부학의 연구 대상은 대체로 1세기 말, 대략 95년경 「클레멘스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Κλήμεντος ἐπιστολὴ πρὸς Κορινθίους Αʹ)」을 쓴 로마 사람 클레멘스(Clemens Romanus, Κλήμης Ρώμης, ?~101?)를 시작으로 한다. 이로부터 2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흔히 ‘사도교부(Patres Apostolici)’의 시대라고 한다. 사도로부터 직접 배운 교부의 시대라는 의미에서다. 이어서 2세기 말에서 3세기를 325년 니케아 공의회(Σύνοδος τῆς Νικαιας, Concilium Nicaenum Primum) 이전 교부라고 하고, 4세기에서 8세기까지의 교부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교부라고 한다. 또 사도교부 시대 이후 교부를 ‘호교 교부(Apologetae)’라고 부르며 기억하기도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리스도교 안의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교회의 밖에서 교회 앞을 향한 오해와 비난에 맞서 그리스도 신앙을 변론한 인물이다. 대체로 2세기 중반 이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하지만 확장해서 볼 때는 카이사레아의 유세비우스(Ευσέβιος της Καισαρείας, Eusebius Pamphili 혹은 Caesariensis, 263?~339?)를 마지막 호교 교부로 보기도 한다.
사도교부(Patres Apostolici)로는 사도 페트루스의 제자이며, 로마교구의 주교였던 ‘로마 사람 클레멘스’,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였고, 『주님 말씀 풀이(Λογίων Κυριακῶν Ἐξήγησις)』을 쓴 ‘파피아스(Παπίας, Papias, 60?~130?)’,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사도 페트루스가 직접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서품 했으며‘가톨릭교회(ecclesia catholica)’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씨오(Ἰγνάτιος Ἀντιοχείας, Ignatius Antiochenus, 35?~107?)’,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스(Πολύκαρπος ὁ Σμυρναῖος, Polycarpus Smyrnaeus, 69?~155?)’가 있다. 또 사도 교부로는 헤르마스(Ερμάς, Hermas, ?~160?)의 『헤르마스의 목자(Ποιμὴν τοῦ Ἑρμᾶ, Pastor Hermae)』는 고대 교회와 사도교부 시대를 연구함에 매우 귀한 자료다. 정확하게 이 작품의 저자를 알지 못하지만, 이 문헌 자체는 매우 귀한 문헌이다. 또 하나는 『디다케(Διδαχή)』 혹은 『열두 사도의 가르침(Doctrina Duodecim Apostolorum)』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기억되는 문헌이다. 이 문헌 역시 사도교부의 문헌으로 연구된다. 『헤르마스의 목자』와 『디다케』 고대 교회, 대략 4세기까지 성서의 한 부분으로 읽히며 많은 신도에게 영향을 준 작품이다.
호교 교부(Apologetae)로는 『변론(Apologia)』을 쓴 ‘아테네의 아리스티데스(Ἀριστείδης Μαρκιανός, Aristides Atheniensis, 2세기)’가 있으며, 로고스(λόγος, logos) 이론으로 유명한 초기의 대표적 그리스도교 신학자이며 평신도인 ‘순교자 유스티누스(Ἰουστῖνος ὁ Μάρτυρ, Iustinus Martyr, 100?~165?)’, 유스티누스와 같이 탁월한 철학자이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호교 교부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Ἀθηναγόρας ὁ Ἀθηναῖος, Athenagoras Atheniensis, 133?~190?)’와 역시나 헬라스 철학에 능했던 ‘사르디스의 멜리토(Μελίτων Σάρδεων, Melito Sardensis,?~180?) 등이 있다. 그뿐 아니라, 리옹의 주교이며, 『이단에 맞서(Adversus haereses)』를 쓴 ‘이레네오(Εἰρηναῖος, Irenaeus Lugdunensis, ?~202)’도 호교 교부에 포함된다. 이교도와 그리스도교도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진 『옥타비우스(Octavius)』를 쓴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펠릭스(Marcus Minucius Felix, ?~250?)도 호교 교부에 속한다.
호교 교부가 아니지만 사도 교부 이후의 교부들이 있다. 어찌 보면 밖에서 오는 오해와 비판에 대항해 교회를 변론하고 안에서부터 요구되는 어느 게 더 올바른 신앙이고 교리인지에 대한 논의와 그 논의를 위한 애씀도 중요하지만, 교회 안에선 신앙 자체에 대한 보다 더 깊은 이해가 진행되면서 때론 몇몇 입장에서 교회와 충돌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길이라 여기며 틈틈이 자기 길을 가는 교부들이 있었다. 그렇게 2세기 호교 교부 이후 또 다른 교부의 시대가 시작된다. 천재적인 성서학자이며, 신학자이고 철학자인 오리게네스(Ὠριγένης, Origenes, 185?~253?)가 그러한 시대의 교부이며, 평신도 신학자이며, ‘삼위일체(trinitas’)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며 하느님은 ‘세 위격(tres Personae)’이며, ‘하나의 본질(una substantia)’이라고 설명한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155?~240?)가 있다. 테르툴리아누스 역시 호교 교부로 보기도 한다. 그리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사실 그런 구분보다 그냥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충실한 그들의 애씀이 중요하니 말이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테르툴리아누스만큼의 학문적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카르타고의 주교이며 깊은 영성을 가진 치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 200?-258)가 있다.
니케아 공의회 이전과 이후 다양한 이단과 논쟁하며 교회의 정통성을 유지하려 한 교부는 라틴교부 가운데는 대체로 대 교황 그레고리오(Gregorius Magnus, 540~604) 혹은 세비야의 이시도로(Isidorus Hispalensis, 560?~636)를 마지막 교부라고 본다. 그리고 헬라 교부 가운데는 다마스쿠스의 요한(Ιωάννης ο Δαμασκηνός, Iohannes Damascenus, 676~749)을 마지막 교부라 본다.
이렇게 사도 교부와 호교 교부 그리고 그 이후 교부들, 1차 니케아 공의회 이전과 이후 교회 내부의 이단과 갈등하며 논쟁하고 변론한 이 고대 교회라는 조건 속에서 활동하고 문헌을 남긴 이들을 교부라고 한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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