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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보기/이야기 중세철학

중세 유럽 이야기 1 - 중세 도시라면 막 생각나는 것들

중세 유럽의 도시들은 사실 아주 작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대도시들이 겨우 10만이고 프랑스의 큰 도시는 4-5만이며, 런던은 4만5천에서 5만 사이를 오갔습니다. 지금 제가 살아가는 대구 달성군 다사읍은 인구가 8만원입니다. 중세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런던보다 인구가 더 큰 도시입니다. 중세 유럽의 도시는 알프스를 기준으로 위아래, 위위 아래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래 이탈리아는 11세기는 100여개의 도시였지만 14세기는 30여개가 되었다. 많은 도시가 망한 것이 아니라. 도시들이 합병을 하면서 각각의 도시는 하나의 도시국가, 작은 국가의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알프스 위는 장원제의 지주인 영주가 큰 소리를 낸 곳이라면 아래는 작은 나라의 국왕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이들이 큰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에 이르러 황제는 지금의 독일에 살고 교황은 이탈리아 로마에 살았지만, 황제와의 대립을 위해 작은 왕과 같은 지방 권력과 야합해야했고, 그것도 아니면 황제에게 고개 숙이는 교황이 되어야했습니다. 이런 중에 교황이 프랑스로 가서 단단한 성곽같은 아비뇽 교황청에 있기도 했고, 여러 정치 세력들이 각각 교황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혼란 가운데 중세 이탈리아의 대학은 교황이나 황제 사이에서 나름 자유를 누렸습니다. 카를 대제의 제국의 화폐를 통일할 때도 이탈리아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이와 달리 다른 지방은 인구가 만명도 되지 않는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그저 장원에선 자급자족하고 살면 그만이었습니다. 독일에서 당시 가장 큰 도시인 쾰른이나 동유럽의 프라하는 14세기에 4만 정도였습니다. 15세기까지 2만5천을 넘는 도시는 많지 않았습니다. 노리치(Norwich)라는 도시를 봅시다. 도시의 중심 성은 법적으로는 국왕의 것이지만, 실상 지역의 교회 권력자인 주교나 베네딕트 수도회의 것이고 그 교회 권력이 도시의 권력으로 기능했습니다. 이런 지역의 세력들은 형식적으로는 교황의 말을 들을 것 같지만 자신에게 이러한 권력과 경제력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국왕 혹은 황제였습니다. 또 도시에선 수도원들이 도시 내부 시장과 같은 곳을 권할 하였습니다. 소설 "삼총사"를 보면 추기경이 국왕의 옆에서 권세를 누리를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도시 권력이니 당시 교회와 시민의 충돌에서 교회의 편을 들고, 다른 한편 국왕의 권력을 대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도 정리가 됩니다. 리옹을 볼까요? 처음엔 주교가 영주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대구주교가 대구시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감시할 사람도 없고 스스로 종교와 국가 권력을 모두를 가지고 얼마나 타락하겠어요. 희망원의 인권유린이나 공급횡령 같은 일은 중세에도 있었습니다. 이에 15세기 국왕의 힘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냥 둘 수 없었지요. 후기 중세 민중의 소리를 커지고 종교에 직접적인 개입을 시도하고 타락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던 것이지요. 중세철학은 이런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나중에 저의 책이나 글을 보세요. ㅎㅎ

유대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