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적을 때 아주 거대한 주제로 논문을 쓰는 이들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혹은 보편이란 무엇인가 혹은 진리란 무엇인가...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개고생을 하지만 거의 일반론을 어려운 이야기로 하다가 끝이 난다. 그냥 읽으면 유식한 척하는 정도의 수준이 대부분이다. 그냥 개론서에 나올 이야기를 가지고 나름 아주 강한 양념으로 맛을 낸다고 냈지만 다 쓸데 없는 소리 같다. 그런데 철학을 하면 이런 논문을 적어야 한다고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개인의 성향이지만 말이다.
나는 결국 내가 읽은 몇줄로 논문을 쓴다. 오캄의 지칭에 대한 논의 가운데 몇 줄을 가지고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 구절을 읽고 관련 논문들을 읽으니 나와 생각이 다르기에 적은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논문도 마찬가지다. 내가 읽은 것과 그들이 읽은 것이 서로 달라서 논문을 적었다. 나는 남의 논문을 읽을 때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는 마음보다는 조금 전투적으로 읽는 편이다. 싸울 것이 없으면 읽다가 치우기도 한다. 내가 생각한 것도 남이 생각한 것이 같으면 굳이 내가 논문을 적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가 고전을 읽고 가지게 된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해석이 있다면, 관련 논문이 있는지 확인한다. 내가 관심있다고 생각한 부분에 대한 논문이 하나도 없으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내가 쓸데 없는 헛일을 하거나 아니면 남들이 보지 못한 어떤 관심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후자다.
에크하르트도 결국은 그에 대한 한 줄을 두고 일어난 고민으로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에크하르트 전반에 대한 이해보다는 내가 고민하는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뿐이다. 얼마전 안 사실이지만 나의 에크하르트 논문이 어느 분에 의하여 인용이 되고 유대칠의 해석에 따르면... 이런 고마운 문구가 논문에 등장하는 것도 보았다. 단테에 대해서도 나는 단테 일반론이나 단테와 구원 혹은 단테와 인간 행복에 대하여... 뭐 이런 주제가 아니라, 신곡의 몇 줄을 가지고 논문을 쓸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가 한 철학자의 개론서를 쓰고 싶은 인물들이 있긴 하다. 오캄, 둔스 스코투스, 수아레즈 등이다. 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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