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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철학이야기/철학사전

오도 리갈두스(Odo Rigardus) - 중세 프란치스코회 출신 철학자들 2

오도 리갈두스 (Odo Rigardus1205/1210~1275)




13세기의 그리스도교 개혁자이기도 한 오도 리갈두스는 1205년 혹은 1210년 태어나 1275년에 임종한다. 그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의 신분으로 파리 대학을 다녔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많은 비슷한 상황의 사람믈과 마찬가지로 헤일스의 알렉산더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243년부터 1245년까지 롬바르두스의 <명제집>를 강의하였고, 1245년 9월부터 1248넌 초까지 라 로셀의 요한에 이어서 프란치스코 수도회 학교의 학장이 되어 이끌었다. 즉 그는 초기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교육에 있어서 분명 의미있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또 그는 당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사상 이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알렉산더 대전>의 저자로 한 몫을 했다. 그는 1248년 루엥(Rouen)의 대주교가 되었고, 1274년 리옹 공의회에선 교회의 입장에서 활약하였다. 철학자로 그의 모습에 대하여 자세한 논의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일부는 철학자 그의 모습은 그리 분명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헤일스의 알렉산더의 제자로 그의 <명제집 주해>가 그의 제자인 보나벤투라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며, 또한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개념을 아우구스티누스적 이론과 병합하려 하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헤일스의 알렉산더의 영향 이후로 줄 곧 이어지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중세 철학 형성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비첸나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우구스티누스주의 논리와 병합하려는 노력은 당시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상가에게 흔히 보이는 면이다.


유대칠 (오캄연구소 & 토마스철학학교)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