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라틴어 강좌
§ 3 라틴어 개괄
라틴어(lingua latina)는 기본적으로 이탈리아어족의 한 갈래다. 또 이탈리아어족은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다. 결과적으로 라틴어는 기본적으로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다. 인도유럽어족은 북인도, 근동, 유럽 전 지역의 어군(語群)을 가리키며, 18-19세기의 비교 언어학에 의하여 이들 지역의 언어가 단일한 고대어, 즉 조상언어에서 파생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등장하였다. 이 언어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서 현재는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히타이트어, 켈트어, 고대 게르만어, 라틴어 등을 비교하여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사전을 구성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발전하였다.
라틴어는 역사적으로 기원전 9-8세기 북쪽에서 이탈리아 반도로 남하(南下)하여, 라티움(Latium)에 정착한 이들의 방언이다. 이 방언을 사용한 이들은 기원전 8세기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 지방에 로마(Roma)를 창건한다. 이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의 대제국이 되면서 라틴어는 제국의 언어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언어학적으로 라틴어는 많은 고대 이탈리아 반도의 언어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라틴어는 이탈리아 북부의 켈트어 계통 방언과 또 다른 이탈리아어군의 언어인 에트루리아어(Etruscan language), 또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어 계통의 영향을 받았다. 차후 이 당시 고대 이탈리아 반도의 언어들에 대한 소개에서 참고하기 바란다.
라틴어의 문자는 고대 그리스어 문자와 페니키아의 문자의 영향을 받은 에트루리아어의 문자에게 파생되었다. 이 과정 역시 그리 간단하지 않다. 더욱 더 자세하고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여타 다른 인도유럽어족과 구분되는 ‘고전 라틴어’의 특징을 간단하게 말해 보겠다.
라틴어의 몇 가지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우선 라틴어는 크게 8 가지 품사(品詞)를 가진다. 그 가운데 4 가지 종류는 어미 등이 변화하는 ‘변화사’인 명사, 형용사, 대명사, 동사이며, 남은 4 가지 종류는 변화하지 않는 ‘불변화사인’인 부사, 전치사, 접속사, 감탄사다.
또 라틴어는 같은 인도유럽어족이지만 영어나 독일어 등과 다르며, 우리말과 같이 관사(冠詞)가 없다. 정관사도 부정관사도 없다. 영어는 an apple와 the apple가 구분되지만 라틴어는 이러한 구분이 없다. 또 현대 영어의 어순(語順, word order)은 기본적으로 주어 + 술어 + 동사이지만, 고대 라틴어는 주어 + 목적어 + 술어가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확답할 순 없다. 라틴어로 된 많은 문학 작품에선 다양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라틴어는 어순이 자유롭기에 어떤 고정된 구문의 형태를 가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학습하기 편하다.
어순은 분명 자유롭다. 그 근거는 굴절 때문이다. 그래서 라틴어는 굴절을 강하게 한다. 강한 굴절로 인하여 어순이 굳이 정해지지 않아도 단어 어미가 가지는 문법적 기능과 성격은 정해진다. 그런 이유에서 어순은 자유롭다. 하지만 형용사와 분사와 같은 것은 일반적으로 명사의 뒤에 온다. 그리고 아름다움 혹은 크기(양) 혹은 성질 등을 나타내는 수식어는 명사에 선행한다. 관계사절은 기본적으로 영어와 같이 선행사에 뒤에 온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고정되어 어순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법칙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라틴어 명사는 수(numerus)와 격(casus)의 변화를 가진다. 우선 라틴어 명사는 격의 다양한 변화, 즉 격을 결정하는 다양한 어미변화를 가진다. 이러한 변화를 격변화(declinatio)라고 한다. 라틴어 수는 단수(singularis)와 복수(pluralis)가 있다. 그러나 고전 그리스어나 산스크리트어와 같이 양수(혹은 쌍수)를 가지진 않는다. 원형 인도유럽어족, 즉 고(古) 인도유럽어도 8격이다. 하지만 라틴어는 6격이다. 6격은 주격(nominativus), 호격(vocativus), 목적격(accusativus), 소유격(genitivus), 여격(dativus), 탈격(ablativus)이다. 고(古) 인도-유럽어에 존재하는 처격(locativus)은 몇 단어에만 남아있다. 예를 들어, Roma에서 Romae와 domus에서 domī가 그러한 것이다. 이와 같이 단지 몇 단어에 남아있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7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문법책에선 처격을 포함하지 않는다. 또 사라진 구격(instrumental case)은 부사 형태의 어미 -ē로 남아있다. 이 두 격이 거의 문법적으로 큰 힘을 가지지 못하게 됨으로 8격은 6격이 되고 일반적인 라틴어 문법책에선 다루어지지 않는다. 라틴어 형용사는 명사를 수식할 때 명사에 수와 격을 일치시킨다. 이는 현대 독일어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라틴어 명사는 격과 수와 함께 성을 가진다. 이도 독일어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코이네(Koine) 그리스어는 가지지 않지만, 고전 그리스어는 ‘단수’와 ‘복수’ 이외에 ‘양수’(혹은 쌍수)를 가진다.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역시 쌍수를 가진다. 그러나 고전 라틴어는 쌍수를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어와 달리 관사가 없으며, 또한 굴절어(屈折語)라는 특징이 잘 반영되어 어순(語順)이 자유롭다. 라틴어 명사와 형용사의 성은 남성(masculinum )과 여성(femininum ) 그리고 중성(neutrum)이 있다.
라틴어는 크게 고대 라틴어(Latina antiqua)와 고전 라틴어(Latina classica) 그리고 민중 라틴어(Latina Vulgata)로 구분할 수 있다. 고대 라틴어는 고전 라틴어 이전에 존재하던 라틴어다. 기원전 3세기 이전의 라틴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고전 라틴어는 로마의 문학가들에 의하여 시작된 라틴어로 키케로(Cicero) 등에 의하여 확립되고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는 5세기까지 사용된 라틴어다.
고대 라틴어와 고전 라틴어는 일정의 차이를 가진다. 예를 들어, 고대 라틴어는 고전 라틴어와 다른 격변화의 어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격어미인 -os와 -om이 고전 라틴어에선 -us와 -um이 된다. 그 뿐 아니라, 고전 라틴어는 격변화에서 고대 라틴어의 s가 r로 전환된다. 예를 들어, 고대 라틴어에선 honos, honoris인데 고전 라틴어에선 honor, honoris가 된다. 물론 예외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 이외에도 철자의 구성에서도 oi>oe, ei>ē>ī 와 같이 단모음화가 진행된다.
고전 라틴어는 고전 라틴 문학에서 보이는 라틴어다. 고전 라틴어는 라틴 문학사적으로 황금기(Latinitas aurea)와 백은기로 구분된다. 황금기는 기원전 약 70년에서 기원후 약 18년까지이며, 뒤이은 백은기는 기원후 약 18년에서 약 133년까지다. 황금기는 공화정이 몰락하고 아우구스투스가 집권한 시기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많은 고전학자들은 바로 이 시기를 라틴 문학의 황금기로 여기고 있다. 반면 백은기는 이보다 못한 문학의 시기로 여겨졌다. 어찌 보면 다소 불합리한 관점과 기준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백은기 동안 아주 다양한 문학 형식이 생겨났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유명한 유베날리스(Juvenalis)와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문학 작업을 한 페르시우스(Persius) 등도 있다. 그렇기에 이를 백은기라고 하는 것은 다수 부당해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렇게 구분하고 있다.
고전 라틴어와 함께 중요한 것이 ‘민중 라틴어’다. 민중 라틴어는 기원후 1세기 경 지중해 연악의 사람들이 사용한 대중 언어로 4세기 경 제국의 언어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민중 라틴어는 당시 여러 민족들의 방언과 혼합되면서 다양한 라틴어계통의언어들, 즉 로망어를 낳는다. 민중 라틴어는 학술어, 외교 언어 그리고 가톨릭교회 언어로 존속된다. 하지만 르네상스에 이르러 민중 라틴어가 아닌 고전 라틴어를 복원하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하면서, 민중 라틴어는 가톨릭교회의 언어로 축소된다.
교회 라틴어와 스콜라 학자들의 라틴어(Latina Scholastica)가 된 민중 라틴어는 발음에서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와 세네카(Seneca) 그리고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가 사용한 고전 라틴어와 달랐다. 흔히 고전학을 연구하며 익히게 되는 라틴어는 ‘고전 라틴어’다. 우리나라는 많은 경우 신학교에서 신학생을 위해 만든 교재들이 상당하다 보니 교회 라틴어, 즉 민중 라틴어의 발음이 교재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고전학과에서의 라틴어는 고전 라틴어이며, 따로 교회 라틴어로 표기되지 않는다면 고전 라틴어가 가르쳐진다. 발음에서 자세히 하겠지만, 발음에서 regina coeli에서 고전 라틴어는 g가 거칠고 c는 k와 같이 발음된다. 그러나 민중 라틴어 혹은 교회 라틴어에선 g가 부드럽게 발음되고, c는 ch와 같이 발음된다. 우리가 흔히 성당에서 혹은 종교 음악 감상에서 듣게 되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발음은 교회 라틴어에 근거하며, 이것은 민중 라틴어에서 기원한다고 할 수 있다.
라틴어는 비록 사어(死語)이지만, 서구를 대표하는 언어다. 동아시아가 한문으로 대표되며, 이황, 이이, 정약용, 이익, 최한기 등의 철학자들이 국경을 넘어 모두 한문을 기반으로 사유하였다면, 유럽은 라틴어를 기반으로 사유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가까이는 칸트와 라이프니츠, 그리고 스피노자 등의 철학자까지 많은 저작은 라틴어로 남기고 그 가운데 사유했다. 그러니 라틴어는 사어라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과 그 존재의 무게감은 여전히 활어(活語)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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