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수아레즈 (Francisco Suarez, 1548-1617)
유 대칠
(토마스 철학 학교)
수아레즈의 인물 됨
수아레즈는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신부이며, 철학자이고, 신학자이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스콜라 철학의 황금기 이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스콜라 학자 가운데 하나다. 스페인의 그라나다(Granada)에서 태어났으며, 16 세의 나이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철학과 신학을 연구하며 가장 존경 받으며 이후 가톨릭 학자와 개신교 학자들에게 모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몇 안 되는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다양한 주제의 광범위한 작품을 남겼다. '법에 대한 논의'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논의' 그리고 '형이상학'과 '신학'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특히 그는 국제법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의 주저인 <형이상학 논고>(Disputationes metaphysicae, 1597)는 17 세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넓게 읽혀진 철학 혹은 형이상학 작품이었다. 즉 그는 광범위한 작품을 남겼으며, 또한 그 작품들의 담긴 사상은 이후 큰 영향력을 가졌다.
그의 생애 대부분은 열정적인 철학자와 신학자의 삶이었다. 그런 그의 별명은 그의 이러한 삶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비범하고 신심 있는 박사'(Doctor Eximius et Pius)였다. 교황 그레고리 8 세는 로마에서 이루어진 그의 첫 강의에 참석하였고, 교황 바울 5 세는 그를 영국의 제임스 1 세의 오류를 논박하기 위해 불렀다. 또한 스페인의 필립 2 세는 그를 대학의 명성을 더해주기 위해 코임브라(Coimbra) 대학에 보냈으며, 또한 그가 바르셀로나(Barcelona)의 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대학의 박사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예의를 다해 그들 학과의 옷을 입고 나와 반겨 만났다. 이와 같이 그를 살아있는 동안에도 여러 현안에 참여함은 물론이고 열정적인 연구로 존경을 받으며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포르투갈(의 리스본 혹은 코임브라)에서의 죽음 이후, 생전보다 그의 명성은 더욱 더 커졌다. 그는 이후 대표적 학자들인 위고 글로티우스( Hugo Grotius)와 근대 철학자인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그리고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1679년 교황 오니센트 11 세는 65 가지의 '결의론' 관련 명제를 금지했다. 이는 수아레즈와 에스코바르 (Escobar) 그리고 그 이외 예수회 학자들의 것으로 부터 취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사상은 이와 같은 파문이란 조건 속에서 더 이상 가르쳐질 수 없었다. 이러한 파문은 수아레즈의 결의론자(casuist)의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수아레즈는 분명 중세 스콜라 철학의 말기 그리고 근대 초기에 있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수아레즈의 철학
수아레즈의 형이상학
수아레즈를 지금 우리가 아는 수아레즈로 있게 한 것은 그의 형이상학 떄문이다. 그런 수아레즈에게 형이상학은 근본적으로 '실재적 본질'(realis essentia)과 '실존'(existentia)에 대한 학문이다. 이는 대체로 개념적 존재자보다는 실재적 존재자를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질료적 대상보다는 비질료적 대상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는 본질과 실존은 신의 경우에 있어서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유한한 존재자의 본질과 실존은 실재적으로 구분된다고 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 이외 다른 철학자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는 사실 유한한 존재자들의 본질과 실존은 개념적으로 구분될 뿐이라고 한다. 즉 실재적 구분은 거부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직 논리적으로만 구분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그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분명한 갈림이라고 하겠다.
보편자에 대한 논의를 보자. 그는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의 실재론과 오캄(William Ockham)의 유명론 사이길을 가려 한다. 그의 입장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실재론의 그것보다는 유명론의 그것에 더 가깝다. 그는 그런 이유에서 간혹 '온건 유명론자'(moderate nominalist)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진면모 혹은 전체라고 볼 순 없다. 대상적 정밀(praecisio obiectiva)을 인정하는 것은 그를 온건한 실재론자(moderate realist)로 분류할 수 있게 하기도 하기 떄문이다.
그는 오직 실존의 세계 가운데 실재적 단일성은 개별자만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편자는 '실재의 부분 외부에'(ex parte rei) 실존한다고 주장함은 하나의 불가분 형상(one indivisible form)의 순수한 우유로 개별자를 바꾸어버리는 것릴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수아레즈는 비록 소크라테스의 인간성이 플라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일지라도, 그것들은 하나 그리고 동일한 인간성을 실재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형상적 단일성'들이 있다고 한다. 앞서 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경우에선 인간성'들'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적 단일성들은 개별자가 존재하는 만큼 그 만큼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자들은 실재적인 단일성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며, 오직 본질적이 혹은 개념적 단일성을 구성한다.("ita ut plura individua, quae dicuntur esse ejusdem naturae, non sint unum quid vera entitate quae sit in rebus, sed solum fundamentaliter vel per intellectum.") 형상적 단일성은 정신 혹은 이성의 임의적 창조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성의 모든 행위 이전에 실재의 본성 가운데 있는 것이다.(in natura rei ante omnem operationem intellectus.)
그의 형이상학 저작은 상당히 체계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의 형이상학 저작은 중세 사상의 실재적 역사와 고민을 한 몸에 체계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토마스주의 (Thomism), 스코투스주의( Scotism) 그리고 유명론이란 것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이 세 가지 흐름은 다소 과격적하게 말하면 중세의 주된 형이상학적 입장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중세 무슬림 철학자들과 스콜라 철학자들의 저작을 연구하고 이를 풀이하기도 했다. 이러한 체득이 그를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철학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열정은 그 자신을 그의 시대에 가장 뛰어난 형이상학자로의 명성을 누리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선을 따르는 이들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독립적인 새로운 철학적 조류, 즉 수아레즈주의(Suarezianism)를 낳았다. 수아레즈주의는 다음의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1. 존재자의 고유한 구체적인 존재성에 의하여 개체화의 원리가 설명된다.
2. 질료의 순수 가능태란 주장을 거부한다.
3. 지선의 직접적 인식 대상으로 개별자를 인정한다.
4. 피조물은 존재와 본질 사이에 실재적 구분을 가지지 않으며, 동일한 사물을 개념화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수아레즈는 <형이상학 논고>에서 존재자를 분류한다. 이는 이후 예수회 철학자들이며 16 세기와 17 세기 프로테스탄트 스콜라 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페드로 다 폰세카(Pedro da Fonseca)와 그 이외 철학자들과 신학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 <형이상학 논고>의 2 번째 부분 28-53 논고에서 수아레즈는 '무한한 존재자'(ens infinitum), 즉 신과 '유한한 존재자'(ens finitum), 즉 피조물을 구분한다. 이 구분, 즉 존재자의 첫 구분은 무한한 존재자와 유한한 존재자의 구분이다. 이러한 구분은 다르게 말해서 '스스로 있는 존재자'(ens a se)와 '다른 것에 의하여 있는 존재자'(ens ab alio)의 구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두 번째 구분은 '필연적 존재자'(ens necessarium)와 '우연적 존재자'(ens contingens)의 구분이다. 두 번째 구분은 '본질을 통하여 있는 존재자'(ens per essentiam)와 '분유를 통하여 있는 존재자'(ens per participationem)로 말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구분은 '창조되지 않는 존재자'(ens increatum)와 '창조된 존재자'(ens creatum)의 구분이다. 마지막 구분은 '순수 현실태(actus purus)로 있는 존재자'와 '가능태로 있는 존재자'(ens potentiale)의 구분이다. 이러한 수아레즈의 존재자에 대한 구분은 결국 첫 번째 구분, 즉 유한한 존재자와 무한한 존재자의 구분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수아레즈의 신학
신학에서 수아레즈는 몰리나 (Luis Molina)의 이론에 가깝다. 몰리나는 예수회의 학자이며, 인간의 자유 결단과 신의 예지를 조화하고자 하였다. 수아레즈는 이러한 몰리나의 관점을 더 조직적 이론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은총과 특별한 선택에 관한 하나의 교의적 이론이 되게 하려 했다. 그는 신이 자신의 예지에 의하여 인간의 상황에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은총을 부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신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의존성과 인간의 자유 결단을 조화하려는 시도, 즉 몰리나의 시도에 근거한 것으로 합의론(congruism)이란 이름으로 통용되었다.
몰리나에게 시작된 이러한 논의는 1613년 예수회 전체로 확대되었다.
수아레즈의 법과 국가 그리고 교회
수아레즈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사회적 본성을 가진다고 본다. 그리고 이는 신에 의하여 최고로 놓여졌다고 보았다. 이러한 본성은 법을 만들 가능태 역시 포함한다. 정치적 사회가 형성될 때, 그 국가의 권위는 신적인 것이 아닌 인간에게서 기인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회의 본성은 관련된 인간에 의하여 선택된다. 그리고 그들의 본성적인 법률적 권력은 통치자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그 힘은 그 국민에게서 기인하기에, 국민은 그것을 되돌릴 권리를 가지기도 한다. 즉 통치자에 대항하고 바꿀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오직 통치자가 그들에게 악하게 행할 때이다. 국민들은 통치자를 죽이는 것을 참아야 하지만, 만일 정부가 국민을 억업하고 죽이려 한다면, 국민은 국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권리를 가지며, 그들은 악덕한 통치자를 죽일 수 있게 된다.
수아레즈의 작품들
수아레즈의 저작 역시 다른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 재판되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형이상학 논고>(Disputationes Metaphysicae, 1597)는 17 세기 포르투갈의 예수회에 의하여 출판되었다. 그리고 18 세기 23 볼룸으로 구성된 베네치아판( Venice edition)과 19 세기 후반에 나온 28 불롬으로 구성된 비베판( Vivès edition)이 있다. 그 가운데 비베판은 1965 년에 재출판되었다. 그리고 아직 수아레즈에 대한 현대 비판본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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