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브링클리 (Richard Brinkley, 대략1379 사망)
유 대칠
(토마스 철학 학교)
리차드 브링클리는 옥스퍼드에서 활동한 영국의 프란치스칸 수도회의 철학자이며 신학자, 특히 논리학자다.
브링클리은 1350 년과 1373 년 사이 옥스퍼드 대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의 성공은 그를 좋은 박사(Doctor Bonus) 혹은 유명한 박사(Doctor Valens)란 칭호가 가능하게 했다. 그의 가장 주된 철학적 작업은 <논리학 대전>이다. 이는 수 백여 가지의 수사본으로 남아있다. 브링클리의 신학은 그의 <명제집 주해>(Commentum super Sententias)의 단편을 포함하여 다루어진다. 이 저작은 스테판 가루뎃(Stephen Gaudet)에 의하여 요약된 형태로 남아있다. 이러한 요약된 형태를 담고 있는 수사본은 <큰 질문들>(Quaestiones magnae)과 <짧은 질문들>(Quaestiones breves)을 포함하고 있다. 이 신학적 담론 가운데는 철학적으로 생각할 것이 있으며, 그의 철학을 복원함에 많은 도움으로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요약된 형태도 아니고, 완전히 소실된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스콜라학의 논고>(Distinctiones scholasticae)가 그것이다. 그 이외에 <브링클리와 빌링톤의 신학 질문들>(Quaestiones theologicales Biligam et Brinkel)가 있다. 전자는 16세기 인물인 존 베일(John Bale)이 그 저작을 언급하였으며, 후자는 프라그 대학의 도서관 도서 목록에서 언급되어 소실 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베일에 의하여 언급된 다른 소실된 저작으론 <결정들>(Determinationes)이 있는데, 이는 실상 브링클리의 저작이 아니라, 캠브리지 대학의 프란치스칸 수도자인 포빌의 윌리엄(William of Foville)의 것으로 추정되며, 브링클리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베일이 이야기하는 <명제집 강의>(Lectura super Sententias)는 사실 앞서 말한 <명제집 주해>(Commentum super Sententias)와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저작 이후 그는 <논리학 대전>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재론에 근거하여 유명론 혹은 개념론을 논박하였다. 그리고 오캄의 <논리학 대전>을 대체하여 이제 신학과 논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참고서를 마련하기 위하여 <논리학 대전>을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저작은1. '명사(terminus)에 관한 것과 2. '보편자에 관한 것 그리고 3. '범주에 관한 것과 4. '지칭 그리고 5. '명제와 6. '궤변 그리고 마지막으로 7. 'obligatio'에 대한 논의로 구성된다.
그의 이러한 논리학적 논의 가운데 궤변과 관련되는 논의(sophisticated theories)에선 눈에 뛰는 진보를 보이며, 이러한 논의는 현재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애럼 위드햄(Adam Wodeham)과 월터 채톤(Walter Chatton) 사이의 논의를 이어간다. 브링클리는 리차드 빌링햄(Richard Billingham)과 리차드 페리브리게(Richard Feribrigge)의 견해를 반대한다. 이들은 명제가 의미하는 것은 실재, 심적 행위 혹은 단순하게 주어를 의미 대상의 양태(modus)이라고 한다. 브링클리는 이를 반대한다. 그는 강화된 의미론적 존재성의 필요성은 거부한다. 그러면서 그는 명제의 일차적인 대상은 그 명제의 그 명사에 의하여 의미된 세계 가운데 일치된 실재라고 한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삭소니의 알베르투스와 위클리프 등에게 알려진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지칭론은 전체적으로 실재론의 입장에서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그는 단순 지칭은 하나의 명사가 영혼 외부의 독립된 보편자를 지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인간은 종이다”에서 ‘인간’과 같이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은 두음절이다”에서 ‘인간’과 같은 질료적 지칭을 두고 하나의 명사가 그 자체를 지시할 때 가능하다는 견해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모든 지칭은 관계를 요구하며, 어떤 것으로 이러한 관계에서 그 자체와 관계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주의 실재적 존재, 즉 영혼 외부의 존재성을 긍정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시대에 속한 다른 이들의 존재론적 혹은 논리학적 입장을 비판한다. 특히 그는 직관적 인식(notitia intuitiva)에 대한 오캄주의자들의 견해를 반박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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