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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보기/장미의 이름 읽기

장미의 이름 주인공 윌리엄의 철학적 입장

3.

 

유명론자 윌리엄의 존재론적 입장을 보자. 적어도 그는 분명 옥캄을 추종하는 유명론자이다. 소설에서 그는 로저 베이컨을 스승으로 모시며, 옥캄을 친구라고 칭한다. 그러면 그는 옥캄의 진의를 잘 아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거기에 윌리엄은 동일한 유명론자 혹은 개념론자인 뷔리당에 대하여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글을 인용해 보겠다.

 

파리 대학 총장이되어 세도로 치자면 날아가는 새로 떨어뜨릴 만한 뷔리당

 

이러한 윌리엄의 뷔리당에 관한 논의의 진의엔 뷔리당의 세도에 관한 비하와 조롱이 있다. 왜인가? 그것은 뷔리당이 파리의 교수로 옥캄의 가르침을 금지한 인물 가운데 한명으로 있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다. 즉 윌리엄은 뷔리당보다 옥캄에 더 가까운 철학자이며, 이 글에선 친구 사이로 표현되니 분명 그러할 것이다. 세도에 의하여 친구 옥캄의 뛰어난 철학을 금지하고서도 동일한 유명론을 들먹이는 뷔리당이 윌리엄의 맘에 들었을 리가 있었겠는가. 하여간 윌리엄은 유명론자이다. 그는 말의 발자국을 두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말의 발자국을 보고, 말을 추론한다. 그런데 이 발자국은 단지 말이 지나간 하나의 상징이며, 어떤 의미의 기호이다. 이것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말의 존재를 추론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은 간지 말에 대한 흔적일 뿐이다. 윌리엄은 이러한 논의를 진행하며, 중세 철학의 전문 용어를 사용한다. 한번 읽어보자.

 

눈 위에 찍힌 발자국과 남은 흔적은 말이라고 하는 동물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이다. 그리고 이 기호의 기호는 우리가 대상을 가지지 않을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호를 의미라고 읽어보자. 그러면 기호의 기호는 의미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이 의미를 지향으로 읽어보자. 그러면 의미의 의미는 지향의 지향이 된다. 중세 후기, 중세 무슬림 철학자인 아비첸나의 철학이 서구에 알려지면서 사용된 전문 용어, 바로 제일 지향과 제이 지향이 여기에서 등장한다. 윌리엄은 하나의 발자국을 자세히 보면 어떤 특정의 말인지 알게 된다고 한다. 즉 하나의 기호는 영혼 외부의 한 존재에 대한 기호이다. 그런데 이 기호의 기호는 바로 이러한 개별적 존재의 기호들에 대한 기호, 즉 보편자인 것이다.

보편자란 우리가 대상을 영혼 외부에 현실적으로 가지지 않아도 그 개념에 의하여 서술되어지는 모든 개별자를 포함한다. 이러한 보편자를 두고 어떤 철학자는 실재성을 부여하며 실재론을 전개하지만, 윌리엄은 옥캄의 존재론에 근거하여 이러한 보편자를 단지 기호의 기호에 지나지 않으며 구분되는 존재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정의한다.

눈 앞에 한 여자가 있다. 이를 두고 여자라고 하는 것은 한 여자에 대한 의미이며, 기호이다. 이것은 개별자가 아니다. 엄밀하게 그 여자 혹은 이 여자이다. 이것은 제일 지향 혹은 첫번째 기호라고 하자. 그러나 그냥 여자라고 하면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여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선 제일 지향이나 첫번째 기호들에 대한 제이 지향이며, 기호들의 기호인 샘이다.

결국 윌리엄은 소설의 첫 머리에서 자신의 존재론적 입장을 매우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바로 발자국의 예를 통하여 말이다. 결국 이러한 윌리엄은 그의 제자의 증언처럼 보편자는 단지 개념 혹은 이름으로 치부하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자에 치중한다. 바로 이러한 존재론적 입장이 그가 경험론에 근거하여 개별적 자연물을 깊이 관찰하며 개별자에 관심을 가지는 배경이 된다.

발자국은 결국 말의 존재를 추론하게 하는 하나의 기호이며, 이젠 사라진 말은 그저 발자국만을 남긴다. 발자국은 그저 말의 기호이다. 장미의 이름, 기호, 개념은 장미가 사라진 후에 기억 속에 이름으로 남는다. 말이 발자국을 남기듯이 말이다. 결국 첫 머리의 이러한 논의 속에서 우리는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주인공 윌리엄의 철학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