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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보기/장미의 이름 읽기

왜 소설은 '장미의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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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왜 하필 소설의 제목은 ‘장미의 이름’인가? 에코가 처음 구상한 제목은 ‘수도원의 범죄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다. 그런데 왜 그는 장미의 이름으로 제목을 정한 것인가? 우선 고민해야하는 것은 장미가 의미하는 것이다. 과연 장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소설이 생물학 소설이 아닌 이상 이 장미가 생물체 장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사실 매우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만 가정해 본다면, 장미는 지금 장미로 존재하는 한에서 장미라는 것이 참이지만, 이 장미도 시간이 지나면 썩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결국 한줌 먼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때 장미의 존재는 그저 이름으로만 남겨질 뿐이며, 어떤 존재적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결국 진리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변화하며 남는 것은 이름뿐이란 것이다. 이를 또 다르게 생각해 보자. 장미란 나의 영혼 외부에 존재를 두고 나는 장미라고 명한다. 그렇게 명하는 그 시간에 나는 분명하게 진리를 말하고 있다. 나의 눈엔 장미가 보이고, 나의 망막에 미추어진 장미는 결코 무궁화가 아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망막을 걸쳐 나의 머리 속 혹은 영혼 속에 남는 장미란 하나의 상(像)이다. 나는 그 이후 장미가 사라져도 기억에 의존하여 그 장미와 유사한 모든 것을 장미라고 부를 것이다. 결국 우리가 그렇게 지키려고 애쓰고 싸워온 진실하게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도 결국 어느 시점에 존재했던 것에 지나지 않으며, 영혼 속 한낱 상, 즉 이름으로만 남을 뿐이게 된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주인공 윌리엄 수사는 영국인이며, 프란치스칸이고 옥캄의 경험론적 사유에 의존한 14세기 지식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러한 설정들에 의하면 주인공 윌리엄은 유명론자 혹은 개념론자라 귀결된다. 철학사에 지식을 가진 이라면, 영국인이며 옥캄을 추종하는 프란치스칸이 가진 존재론적 입장은 분명 이렇게 귀결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린 중세 존재론과 의미론 그리고 인식론에 관한 복잡하고 힘든 논리를 제시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차후로 미룬다. 지금은 아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고 요약하는 것에 목적이기 때문이다. 

에코는 자신의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에서도 제목의 분명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진정 좋은 제목은 하나의 의미를 가지며 독자를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혼란을 주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혼란 가운데 본인은 주인공의 철학과 소설의 제목을 연결해 보았다.

결국 남는 것은 이름뿐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그렇게 진리이고 참된 것이라고 믿어온 것도 결국은 이름으로만 남겨질 것이라는 이야기...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은 이러한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