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역은 이후 1장을 시작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토마스 철학 학교 유대칠 학장. 이 번역은 PL.64를 라틴어 본으로 삼아 번역하였으며, 구분 번호는 그 라틴어를 참고하여 따랐습니다.
보에티우스의 "인격과 두 본성에 대하여" 본문
유대칠 옮김
(토마스철학학교)
1장
/1341B/그러므로 본성(natura)은 1)물체적인 것 혹은 2)실체적인 것, 즉 물질적인 것과 비물체적인 것, 혹은 3)어떤 방식으로도 긍정되어지는 모든 것으로 이야기되어진다. 그러므로 본성은 세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되므로, 의심의 여지없이 세가지 방식으로 정의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모든 사물에 대한 본성 논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정의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포함하는 것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있다. "본성은 그것들이 존재함으로 어떤 방식에서 지성에 의하여 파악되어질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정의에 의하면 우유와 실체가 정의되어진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지성에 의하여 파악되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어떤 방식에서 더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신과 질료는 지성으로 완전하게 이해될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에서 남은 다른 사물의 결핍으로 파악되어질 뿐이다./1341C/ 실로 이러함으로 인하여 '무' 그 자체는 '어떤 것'을 의미하지만, 본성을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존재함으로"이란 것이 더해진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비-존재를 의미한다. 실로 모든 본성은 존재한다. 그리고 만일 모든 사물에 대한 본성을 이야기한다면, 본성의 정의는 우리가 위에서 말한바와 같다. 이러한 본성이 실체만으로 이야기되어진다면, 모든 실체는 물질적인거나 비물질적이므로, 우리는 본성의 정의를 이러한 의미로 제시한다. "본성은 행하거나 당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것 가운데 행하며, 물질적인 것으로 부터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함은 신에 속하고 다른 것은 신적 실체에 속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본성의 이러한 의미의 정의를 가진다. 이는 실체에만 적용되어진다./1342A/ 이 정의는 또한 실체의 정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본성이란 명칭은 실체를 지시한다면, 우리가 본성을 기술할때, 실체의 정의는 지시된 기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그리고 다른 학파의 견해와 같이 단지 실체의 본성만을 가지는 것으로 하기위해 만일 우리가 비물질적인 것을 거부하며 본성이란 명칭을 물질적인 것에 한정한다면, 우리는 단지 그 단어가 물체에 적용되는 것을 수용하는 이와 같이 본성을 정의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정의는 다음과 같다. "그에 따르면 본성은 운동의 원리이다(motus principium). 이는 우유를 통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 운동의 원리라고 말되는 것은 모든 물체가 고유한 운동을 가짐으로 이러한 것이다. 마치 불이 상향운동하며, 흙이 하향운동을 하듯이 말이다. 동일하게 본질적으로 운동의 원리는 본성을 제시하며, 우유적으로는 아니다. /1342B/목재 침대는 필연적으도 아래로 놓여지며, 우유적으로 아래로 놓여져지지는 않으므로 그러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로인하여 목재는 흙이고, 중량과 무게에 의하여 하향운동을 하는데, 왜냐하면 (흙힌) 목재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침대라서 하향운동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흙이기 때문이다. 즉 침대인 흙의 우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재는 본성적으로 있다고 우리가 말하듯이 일어나며, 참으로 침대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본성은 금과 은의 상이한 본성에 관하여 말하는 것에 따라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지며, 그 가운데 사물의 속성을 지시하기 원하므로 말이다. 본성의 이러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본성은 사물에 형상을 주는 종차(specifica differentia)이다. 비록 본성이 상이한 방식에서 말되거나 정의되어질 때, 네스토리우스와 같이 가톨릭도 궁극적 정의에 따라 그리스도 가운데 두 가지 본성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동일한 종차가 신과 인간에게 적용될수 없기 때문이다./134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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