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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장의 고개넘기/유학장의 눈...풍경...

서당의 훈장 같은 철학자가 되고 싶다.

실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들은 정말 조선의 변화를 원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 그냥 그들의 한 면만을 아주 많이 강조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사회의 개혁을 위한 강렬한 욕구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최한기의 철학도 김용옥식의 강조나 박종홍식의 강조나 그것도 아니면 북한 철학 연구가들이 이야기하는 식의 강조나 나의 눈에 전부 필요 이상의 과대한 강조다.
나는 개인적으로 실학파라며 조선 후기 지식인 몇몇을 해석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고 싫어하는 면이 강하다. 언젠가 한 철학 강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를 달리 이야기한다면서 날 조롱하였다. 그의 근거는 그냥 교과서였다. 최한기도 정약용도 읽지 않은 인물이었다.
교과서가 준 지식, 그 관념은 무섭다.
관념은 그렇게 현실을 지배한다.
나는 실학자들의 실학이나 조선 선비들의 뜨거운 성리학적 사유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성리학적 지식 없이 그냥 대충 유학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는 정도이면서 글모르는 이들에게 한글이나 한문도 가르쳐주고 돈을 주면 천민이든 힘 없는 양반이든 선생이 되어주는 조선 후기 서당의 훈장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요즘 최제우가 대단한 성리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 그의 아버지도 성리학자이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그는 훈장 출신이다. 훈장을 찾는 사람들은 깊은 성리학적 지식을 얻어 과거에 나아갈 사람보다는 일상의 삶 속에서 글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나 글을 모르는데 공문서를 작성해야하는 사람들, 제판에 사용될 문서를 대서해줄 사람들이다. 심지어 훈장은 자신의 한문실력으로 풍수지리책을 읽어 좋은 땅을 정해주는 지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훈장은 실용적인 지식인이었다. 최제우도 전봉준도 훈장 출신이다.
서원이나 향교 그리고 성균관에서 글을 가르치는 이들과 배우는 이들에게 글공부는 실용적이다. 학파에 속함은 자신의 정치적 노선과 무관하지 않았다. 공부의 목적도 결국은 관직을 얻는 것이다. 지금 수능 공부를 해서 대학을 들어가고 법률가나 의사가 되려는 것과 나의 눈에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훈장을 찾아 배우는 이들은 이런 꿈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이들이다.
이런 이야기들도 잘 아는 전문가의 눈엔 어리석은 돌대가리의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요즘은 훈장이 필요 없다. 철학을 시작하면서 라틴어 몇 줄, 독일어 몇 줄, 프랑스어나 고전 그리스어 몇 줄을 읽으면 이미 누구와도 같이 더불어 생각을 나누는 어떤 이가 아닌 스스로 홀로 철학자라 생각하고 돌아다니며 타인을 평가하고 조롱한다. 훈장은 필요 없지만, 여전히 서원과 성균관의 선생은 필요하다는 요즘, 나는 서서히 사라질지 모른다. 농담이 아니다. 진담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도 나는 나의 길을 담담히 가야 한다. 그것이 나다.

토마스철학학교 유대칠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