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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첸나(avicenna) 정리 - <토마스철학학교 철학 사전>

아비첸나 (Abū ʿAlī al-Ḥusayn ibn ʿAbd Allāh ibn Sīnā, 페르시아어 پور سينا Pur-e Sina(ˈpuːr ˈsiːː) "시나의 아들" c. 980 ~ 1037) : 원래 아랍인이며, 아랍의 원래 이름은 이븐 시나(Ibn Sīnā)이다. 하지만, 흔히 라틴어화 된 이름인 아비첸나(Avicenna)로 많은 서구 학계에 많이 알려졌다. 그의 저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치유의 서>는 거대한 철학 작품이며, 동시에 과학적인 백과사전(百科事典)이었다. 또 다른 그의 대표작은 <의학 전범>(The Canon of Medicine)은 대부분 중세 유럽 대학의 기본 교재로 사용되었다. 심지어 루벵(Leuven)이나 몽펠리에(Montpellier)의 대학에선 17세기인 1650년에 이르기까지 기본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의학 전범>은 기본적으로 겔렌(Galen)과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의 원리에 따라서 의학의 완벽한 체계를 잡아 이를 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과는 의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의학을 넘어 그는 철학과 신학 그리고 천문학과 심리학, 논리학 등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매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러한 백과사전적 지식으로 아비첸나는 당시 아랍 지방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된다. 당시 그리스-로마의 지식은 상당 부분 이슬람 사회로 넘어와 있었다. 예를 들어, 중기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주의까지 이미 넘어와 나름 이슬람 철학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의 번역을 넘어 이를 주해하며 그들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철학색을 만들어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알 킨디(Al-Kindi), 알 파라비(Al-Farabi)와 같은 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아비첸나가 자란다. 그의 대부분 저작은 아랍어로 작성되었다. 사실 당시 지중해 연안의 학문언어는 아랍어 그리고 일부는 페르시아어였다. 사실 아랍 지방의 학자들이 당시 지중해 연안의 학계를 주도하였고,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유럽은 이후 이를 수용하고 번역하는 형편이었다. 아비첸나 역시 대부분 아랍어로 저술을 남겼고, 작품 가운데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일부 책에서 그는 순수한 페르시아어로 글을 적고 있다. 아비첸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아랍어로 주해하였고, 이는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유럽에 널리 읽혀지고 연구되었다. 또 매우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비첸나가 살아가던 당시 중세 이슬람 세계에선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가 조화를 위한 충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충돌은 이 둘을 어떤 형태로 조화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조화의 분위기는 아비첸나의 철학에서도 뚜렷하게 확인 가능하다. 그는 이러한 조화를 대체로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성공은 그를 12세기까지 이슬람 철학을 이끄는 주도적 인물이 되게 해 주었다. 이러한 성공은 이슬람을 넘어 서유럽에로 이어진다. 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많은 이들도 결국은 그의 영향을 뿌리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였다. 이와 같은 중세 유럽에서 아비첸나의 성공적인 영향력은 특히 영혼의 본성에 대한 문제존재(existentia)와 본질(essentia)의 관계 문제에 영향을 많이 주게 된다. 그리고 이들 문제들은 서유럽 학계의 핫이슈였다. 즉 아비첸나는 서유럽의 핫이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었고, 그 논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그의 철학의 일부는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수용되지 못했고, 1210년 파리 대학에서 금지된다. 그러나 그러한 금지에도 그의 영향력을 중세를 넘어 근대에 이른다. 중세 서유럽을 대표하는 알베르투스 마뉴스(Albertus Magnus),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등은 물론이고 근대 철학자인 데카르트(Descartes)에 이르기까지 아비첸나의 영향력을 대단했다. 이러한 대단한 영향력 가운데 형이상학에 한정해 우선 살펴보자. 아비첸나는 알-파라비로부터 존재에 관한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流出說, emanationism)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그는 전통적인 초기 무슬림 신학자들과 달리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거부한다. 우주는 어떤 시작점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우주는 신적인 존재의 자연스런 작품이라 주장한다. 이 신적 존재인 순수 선은 질서정연하고 선한 우주를 만듬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주는 시간적으로 신적인 존재를 앞서지 않는다. 아비첸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논의를 전개한다. 이는 중세 유럽에 전해진다. 그 논증은 이렇다. 존재가 있다. 우리가 감각 경험으로 익히는 존재자들의 존재는 필연적이지 않다. 우연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연적 존재자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자기 외부의 존재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다. 눈에 보니는 존재로부터 이러한 원인의 사슬을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는 다른 것에 의하여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것의 존재 원인이 되는 존재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것, 그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필연적 존재자(wajib al-wujud bi-dhatihi). 그리고 이것은 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신과 유사한 것이다. 하지만 아비첸나는 철학자들의 신과 종교의 신을 동일한 것으로 보진 않는다, 철학자들이 논의는 신은 어디까지나 존재자의 원인, 즉 필연적 존재자로 신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우연적 존재자(contingents) 가운데 존재(wujud, existence)와 본질(mahiyya, essence)을 구분한다. 이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존재자들은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인간으로 존재하거는 존재자이거나 혹은 동물로 존재하는 존재자 혹은 무생물로 존재하는 존재자...등 이다. 이와 같은 존재는 어떤 본질이란 형상을 통하여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존재자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존재자는 우연적 존재자이며, 이런 존재자는 존재본질로 구성된다. 필연적 존재자는 그 자체로 참이다. 한편 우연적 존재자는 그 자체로 거짓이며, 그 자신 이외 다른 것에 의하여 참이다. 필연적 존재자는 자신이 스스로의 존재 근원이며,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자는 그 자체로 존재하며, 존재 이외 다른 본질을 가지지 않는다. 신플라톤주의의 일자(wahid ahad, one)는 스스로 필연적 존재자이며, 서로 구분하기 위한 종차(fasl, differentia) 없이 스스로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아비첸나는 일자와 필연적 존재자는 어떤 류(jins)개념도 없으며 정의(hadd)도 없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반대(did)도 없다. , 성질, 관계와 시간, 상태, 장소, 양 등의 범주로부터 구분된다. 즉 존재는 양으로 성질로 관계 등으로 서술되지 않으며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류와 종차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아비첸나는 자연학에서 알 비루니(Abū Rayhān al-Bīrūnī)와 논쟁하였다. 비룬니는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자연 철학에 비판적이었다. 한편 아비첸나와 그의 제자인 알 마수리(Ahmad ibn 'Ali al-Ma'sumi)는 비룬니의 비판적 저술에 대하여 부정적이었고, 그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응수하였다. 자연 철학에서 그의 운동에 관한 입장은 이후 관점과 추진력 이론의 선구인 뷔리당(Jean Buridan)의 임페투스(Impetus)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아비첸나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알베르투스 마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둔스 스코투스 등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을 넘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철학이 가지는 영향력을 대단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와 본질의 구분과 둔스 스코투스의 이것임(haeceitas)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매우 넓은 영역에서 그의 영향력을 진행되었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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