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첸나의 『치료』(al-Shifā) 소개서1)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3세기 이후 중세 스콜라 철학을 공부한 이라면 누구나 아비첸나란 거물을 걸쳤을 것이고, 그의 그 대단한 책 『치료』의 명성을 익히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어리석게 중세 철학을 공부하는 이에게 이는 여러모로 베일 속에 있다. 이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우선 이 책은 아비첸나의 중기 저작이다. 중기라고 하면, 이는 1020-1027년 사이의 저작을 말한다. 참고로 중기 이후 아비첸나는 동방철학의 시기(1027-1029)와 후기(1030-1034)를 걸친다. 『치료』와 같은 중기의 저작은 『구원』(al-Najāt) 등이 있다.
『치료』은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당시 아비첸나가 이해한 아비첸나적 아리스토텔레스의 총체가 드러난 저작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곳에서 당시 그가 파악하고 고민한 모든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적 영역을 집대성하였다. 『치료』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을 나열해 보겠다.
1. 논리학부분(Manṭiq)
1.1 이사고게(Madḫal)
1.2 범주론(Maqūlāt)
1.3 명제론(‘Ibāra)
1.4 분석론전서(Qiyās)
1.5 분석론후서(Burhān)
1.6 변증론(Jadal)
1.7 소피스트적 논박(Safsaṭa)
1.8 수사학
1.9 시학(Ši'r)
2. 자연학부분(Ṭabī‘īyāt)
2.1 자연학(Samaā‘)
2.2 천체론
2.3 생성소멸론
2.4 기상학(Ma‘ādin)
2.5 영혼론(Nafs)
2.6 식물학
2.7 동물학
3. 수학부분(Riyāḑīyāt)
3.1 기하학
3.2 천문학
3.3 산술
3.4 음악(Mūsīqā)
4. 형이상학(Ilāhīyāt)
수학이나 수학에 음악을 분류하는 등은 조금 익숙하지 않지만, 중세적 전통에서 음악과 수학의 상관관계를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수학부분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아리스토렐스의 저서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며, 실재로 그러하고, 그에 관한 그의 입장과 견해가 각각의 부분을 채우고 있다. 그 가운데 『치료』의 「형이상학」에서 우리는 그의 주된 상품인 필연적 실존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그 저작 연대를 따라가 보자.
1014(1021?)년 하마다(Hamaḏān) 거주시기: 「자연학」작성 시작
1015-1017(1022-1024?)년 하마다 거주시기: 「이사고게」, 「자연학」마무리, 「천체론」「생성소멸론」「기상학」「영혼론」「식물학」「형이상학」
1024?년 하마다 거주시기: 「분주론」, 「명제론」, 「분석론전서」, 「분석론후서」, 「변증론」
1017-1020(1024-1027?)년 이스파한(Iṣfahān) 거주시기: 「소피스트적 논박」, 「수사학」, 「시학」, 「기하학」, 「천문학」, 「산술」, 「음악」
1020(1027?)년 : 「식물학」, 「동물학」
<※()가운데 연도는 주즈자니가 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8년에 걸쳐 완성된 것이 『치료』이다. 『치료』의 「소개글」을 작성한 주즈자니(Jūzjānī)는 아비첸나가 『치료』의 저술을 마쳤을 때, 40세였다고 적고 있다. 비록 주즈자니가 소개하는 연도엔 많은 문제가 있지만, 40세였다는 것은 믿을 만한 것으로 보인다. 아비첸나 1037년에 죽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그는 58세에 죽었다. 그러면 그는 980년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으며, 만일 이러한 논의가 정확하다면, 주즈자니가 이야기하듯이 1027년이 아닌 1020년에 『치료』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8년에 걸쳐 30대 초반에서 40세에 이르는 동안 완성된 이 저작은 하나의 대전(summa)이다. 조선의 철학자 이황은 당시 주자의 가르침을 요약하여 정리하는 『주자소절요』를 적었고, 유학의 가르침을 간단히 도식화한 『성학도설』을 남겼다. 아비첸나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가르침은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을 더하며 『치료』를 남겼다. 아비첸나 자신은 『치료』를 “요강”(Jumla)이라 불렸다. 그리고 이러한 아비첸나의 요강은 중세 유럽과 무슬림 철학에 있어 하나의 길이 되어 주었다. 즉 이 저작은 그 후로 오랜 시간 영향력을 가지고, 철학사의 길이 이어지는 고전이 된다.
특히 그의 존재론적 사유는 토마스를 비롯한 유럽의 중세 철학자들에게 하나의 충격이었고, 매우 빠른 속도로 유럽의 대륙에 펴져갔다. 그의 사후 곧 그의 사상은 라틴어로 유럽에 유입된다. 알베르투스(1200-1280)는 자신의 철학 곳곳에서 아비첸나를 가져온다. 스코투스(1266-1308)의 아비첸나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수용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론적 사유에서 아비첸나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영향력은 르네상스시대에도 이어진다. 그뿐 아니라, 그의 영향력은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를 넘어 유대교 철학에도 이어진다. 그리하여 유대 아비첸나주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영향력의 중심엔 그의 주저 『치료』가 놓여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우리의 철저한 이해한 아비첸나의 철학에 한 걸음 다가서는 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1) 황재원군을 생각하며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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