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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철학이야기/학교와 학장의 동정

한겨례신문 - 유대칠 신성한 모독자: 중세를 관통한 '이단'의 사상사

중세를 관통한 ‘이단’의 사상사

등록 :2018-02-01 19:40수정 :2018-02-01 20:00

신성한 모독자-시대가 거부한 지성사의 지명수배자 13
유대칠 지음/추수밭·1만6000원

가톨릭교회의 성인이자 중세 기독교 최대의 신학자로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도 한 때는 ‘이단’이었다. 죽은 지 3년째였던 1277년 파리와 옥스퍼드에서 그의 주요 이론들이 이단으로 단죄당했고, 1286년에도 옥스퍼드에서 다시 이단 판정을 받았다. 1323년에야 그는 이단 혐의를 온전히 벗고 다시 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시성됐다. 그 뒤 그의 사상은 가톨릭교회의 ‘정통’으로 자리잡았다.

서양 중세철학을 연구하는 유대칠 오캄연구소장은 자신의 책 <신성한 모독자> 서문에서 이처럼 ‘이단’과 ‘정통’을 오간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를 꺼낸다. 이들뿐 아니라 많은 선구적 사상가들이 한때에는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지은이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단의 외침 없이 정통의 역사는 존립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이단의 길을 걸었던 인물들을 다시 돌이켜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시대가 거부한 지성사의 지명수배자” 13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상이 되는 시기는 서구의 중세 1000년을 지나 근대 초기에 이른다. 흔히 생각하듯 중세는 신의 지배와 인간의 복종만 있었던 ‘암흑기’가 아니라, 이단으로 단죄되는 것을 무릅쓰고 사상으로 사상에 도전했던 인물들이 수놓았던 시기였다. 지은이가 꼽은 ‘신성모독자’ 13명의 명단은 에리우게나(810?~877)처럼 상대적으로 낯선 인물들부터 이븐 시나(980~1037), 이븐 루시드(1126~1198) 같은 이슬람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 스피노자(1632~1677) 등을 아우르는데, 그들이 어떤 생각 때문에 이단으로 몰렸는지, 이단으로서의 삶이 어떠했는지 등 핵심을 꼭꼭 눌러담았다.

1195년 재판을 받는 이븐 루시드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1195년 재판을 받는 이븐 루시드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에리우게나는 위(僞)디오니시오스의 글들을 번역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인간의 미래를 모두 예정해두었다는 코트샬크의 주장에 대항하여, 그는 ‘선한 신’을 강조하며 신은 누구에게나 구원의 기회를 열어준다 주장했다. 그러나 교회는 ‘천국은 모두의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이단으로 보고 금지했다. 이성에 근거해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제1원인’을 생각해냈던 이븐 시나는 ‘신을 이성의 틀 속에 구속했다’며 이단으로 배척당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신을 발견해냈지만, 이 때문에 이단으로 단죄당했다.

저마다의 삶과 철학은 다르지만, ‘신성한 모독자’들은 대체로 공통적인 방향을 바라본다. 현실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적인 힘에 대한 비판, 이성과 같이 인간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따위다. 지은이는,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한때에는 이단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겨보자고 제안한다. 결국은 ‘다른 생각’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만든 동력이었다는 것.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라며, “‘다름’이 곧 ‘우리’로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