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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철학이야기/학교와 학장의 동정

유대칠 학장이 경향신문에 나왔습니다. 왜 공부하는 삶을 사느냐고 묻는다면...


“암흑기의 철학, 지금 우리 현실에 딱”…“고통받는 다수의 처지, 바뀔 수 있게”
기사입력 2016.10.23 21:21
최종수정 2016.10.23 21:25 
ㆍ왜? ‘공부하는 삶’을 사느냐고 묻는다면…

중세철학 연구자 유대칠씨가 서울 서강대 인근 인문카페 ‘엣꿈’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중세철학 연구자 유대칠씨가 서울 서강대 인근 인문카페 ‘엣꿈’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돈 없이는 학문도 생각할 수 없는 시대다. ‘돈 안되는’ 대학의 인문학과는 사라지고, 청소년 독서도 공부가 아니라 입시 수단이 됐다. ‘인문학 열풍’이라고들 하지만 상품화돼 버린 인문학, 인문학 상업주의에 대한 우려 또한 더 커지고 있다. 먹고살아가는 현실은 엄혹하다. 하지만 끝내 공부를 놓지 않는 이들이 있다. 부조리한 현실, 시대의 아픔을 공부로 분석하고 또 그 성과를 나누고 싶어서다. 중세철학 연구자 유대칠씨(38), 마르크스주의 교육활동가 한형식씨(49)가 그렇다. 안정적 기반 위에서 연구하고 발표할 수 있는 강단 학자는 아니다. 공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게를 꾸린다. 다르게 살아보라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이들은 한번도 지금 자신의 삶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중세철학 연구자 유대칠씨

유대칠씨는 10대 때부터 인간 삶의 여러 고민들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학과와 철학과를 두고 고민하다, 철학과를 선택했다. 첫 만남은 칸트였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가 스무 살의 그에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선물했다. 그는 칸트에 흠뻑 빠졌고, <순수이성비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목회자로서의 삶도 저 멀리 사라졌다.


칸트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칸트 등 독일 철학자들은 라틴어로 사유하고 글을 썼다. 라틴어를 공부하면서 그의 관심도 자연스레 중세철학으로 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후 다니던 학과가 없어졌다. 소집해제 6개월 전, 박사 공부를 위해 한창 복학을 준비하던 때였다. 막막했다. 폐과는 대학이라는 공간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혼자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유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광고지를 돌리고 벽보를 붙였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번역일을 했다. 최근엔 모교인 대구가톨릭대에서 시간강사 자리를 구했지만, 신분 특성상 언제까지 강의를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씨는 한번도 ‘공부하는 삶’ 이외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골방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으로 끝나는 삶은 두렵고 불안하다. 시대가 사람을 아프게 한다면, 철학은 아프지 않은 삶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유씨는 자신이 공부한 철학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유씨의 공부를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그는 요즘 서울 서강대 인근 인문카페 ‘엣꿈’에서 ‘중세 여성-철학의 정원을 거닐다’란 주제로 강연을 한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한 달에 한 차례씩 중세철학 강연에 이은 것이다. 내년 출간을 목표로 첫 책 <철학의 대전환>도 집필 중이다. 유씨는 중세철학을 통해 한국의 현실을 고민하려 한다. 중세는 흔히 ‘암흑기’로 평가받는다. 암흑의 시간이기에 철학 또한 절실했다. 유씨는 “지금의 한국 또한 암흑기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래서 유씨는 중세철학을 공부한다. 암흑의 시기를 이겨내고 생존한 그들의 사유와 통찰을 공부하면서, 지금 한국에서 공부하는 자신의 철학 또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교육활동가 한형식씨가 ‘낮은책들 총서’ 출판 취지와 공부하는 이유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yaja@kyunghyang.com

마르크스주의 교육활동가 한형식씨가 ‘낮은책들 총서’ 출판 취지와 공부하는 이유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yaja@kyunghyang.com


■마르크스 교육활동가 한형식씨

데모하려고 대학에 갔는데, 웬일인지 한형식씨가 입학한 1986년 이후로 좌파 학생운동은 쇠락하기만 했다. ‘6월 항쟁’까지만 해도 뭔가 되려나 보다 했는데, 사회는 오히려 우경화됐다. 한씨는 “날이 갈수록 쇠락해가는 좌파 운동권이 처음엔 당황스러웠다”며 “하지만 오기가 생겼고, ‘나라도 계속 해야겠다’ 싶었죠”라고 대학 시절을 회고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고 한씨는 고향 대구로 내려갔다. 먹고살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학원 강사, 개인 과외, 재고 의류를 컨테이너째로 가져와 파는 ‘땡처리’…. 한때는 ‘일수’ 걷는 일을 다니기도 했다. 대구에서의 몇 년에 걸친 이런 생활은 공부를 하기 위한 ‘자금’을 모은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외환위기 사태 직후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그에게 여전히 의미가 있었다. 비록 한계가 있다 해도, 자기가 공부한 사상 중 그만큼 현실을 잘 설명하는 것도 없었다. “제대로 한번 공부해보자”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 공부 모임을 알리며 함께 공부할 이들을 찾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학생, 대학원생들은 그저 지나쳐갔다. 아무도 모임을 찾지 않아, 빈 강의실을 지키다 나오는 일도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한두 명씩 뜻을 같이하기 시작했고, 공부 모임은 궤도에 올랐다. 10년이 지난 2007년에는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새움)이라는 이름까지 걸었다.

새움은 이달 말 <경제무식자들>을 시작으로 출판사 나름북스와 함께 ‘낮은책들 총서’ 시리즈를 펴낼 계획이다. 출간 비용의 절반은 새움에서 마련한다. 새움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한씨가 운영 중인 대구의 칼국수 집 수익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씨는 “일하는 보통 사람도 공부하고, 책 쓰고, 가르치고 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씨는 여전히 새움 세미나에 참가하고, 때로 마르크스주의 강연도 한다. 총서 출판도 강연의 연장선상이다. “고통받는 다수가 있고, 고통의 크기는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들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이론적이든, 자기 처지를 바꿀 수 있는 수단을 여러 측면에서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씨가 말하는 ‘낮은책들 총서’ 출판의 목적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32121015#csidxc816976fd5eb887be7d029287de703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