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 세계 존재론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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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 세계 존재론의 이해
-크립키와 루이스의 논의를 쫓아서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1. 들어가면서
가능 세계가 철학의 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라이프니츠(Leibniz)부터이다. 그러나 현대 철학을 하는 우리에게 이 논의가
본격적으로 논의의 대상으로 부각하게 된 것은 양화 양상 논리(quantified modal logic)를 위한 형식적 의미론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가능 세계 존재론을 크립키(S.Kripke)와 루이스(D.Lewis)의 논의를 정리하는 가운데 그 이해의 폭을 넓히려 한다.
'가능 세계'란 이 현실 세계가 되었을 수도 있었던 모든 방식이다. 현실 세계에서 모세는 이집트에서 유대인을 탈출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가능 세계에서 모세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를 모세라고 할 수 있는가? 모세란 이집트에서
유대이을 탈출시킨 인물인데, 이 모세에 관한 기술이 사라진다면, 모세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가능 세계의 모세가 존재한다면,
탈출을 시도하지 않은 모세와 현실 세계의 모세는 어떠한 관계인가? 루이스는 현실 세계의 나와 가능 세계의 나는 가능 세계의 어떤 존재보다 나와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가능 세계의 나와 현실 세계의 나와의 관계를 이해한다. 여기에서 루이스는 유사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크립키는 이와
다르다. 그는 유사성이 아닌 동일성에 집중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를 이해해야한다. 고정
지시어는 모든 가능 세계 가운데 동일한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 지시어 이론에 의하여 크립키는 모든 세계의 동일성 문제를 해결한다.
크립키와 루이스는 이렇게 서로 다른 길에서 가능 세계 존재론을 전개해간다.
2. 크립키와 동일성
크립키는 그의 {이름과 필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소학교 시절에 확률 계산을 하였을 때, 실은 벌써 그때 '가능 세계'의 집합과 상봉한 것이다. 주사위 둘이 만들어 내는 36개의 가능한 사태는 말 그대로 36개의 '가능 세계'이다. 36개의 소규모 세계 중에서 오직 하나만이 '현실 세계'이다.
우리가 배운 확률은 가능 세계와 관련된 것이다. 즉 가능 세계란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가능성을 가진 모든 세계이다. 그러면 어느 가능
세계에선 구약의 모세가 이집트에서 유대인을 탈출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치 주사위의 경우에서 35개의 다른 가능 세계와 같이 말이다. 그러면
모세는 이집트에서 유대인을 탈출시킨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일 이러하다면, 프레게(Frege)와 러셀(Russel)의 이름은 기술에
의하여 도입된다는 것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그리고 개별자란 일단의 성질들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A라는 성질을
가진 하나의 개별자를 가정하자. 크립키는 이 개별자와 A라는 성질의 집합이나 다발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러면 성질이 없이 다른 가능 세계에서
이 개별자를 어떻게 이 개별자라고 할 것인가?
프레게와 러셀은 고유 명사는 고정 지시어가 아니고, 이를 대치할 수 있는 기술
어구와 동의어라고 한다. 그러나 크립키는 이를 거부하고, 이미 논의한 대로 고정 지시어를 통하여 문제를 풀어간다. 만일 '모세'가 '이러 저러한
일을 한 사람'을 의미한다면, 역사상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모세를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기술 어구가
지칭체를 고정적으로 확정하고, 이에 의하여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모세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한 것인가? 크립키는
유대인을 탈출시키지 않았다는 반사실적 상황에서도 모세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모세는 이집트의 궁전이 더 좋았을 수도 있고,
종교적 결심과는 상관없이 살았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 세계가 모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크립키는 이야기한다.
크립키는 고정 지시어 이론을 도입함으로 모든 가능 세계 가운데 고정 지시된 대상을 동일한 것이라 한다.
3. 루이스와 유사성
루이스는 동일성 관계가 아니라, 유사성 관계로 풀어간다. 루이스에게 다른 가능 세계의 한 개별자는 현실 세계의 개별자와 어떤
관계인가? 크립키는 동일성으로 해결해간다. 그러나 루이스는 유사성의 관계로 해결해간다. 그에게 '현실적'(actual)이란 '지금', '여기'와
같은 지표적인 용어(indexical term)와 관련된다.
그에게 다른 세계란 현실화되어지지 않는 다른 가능성들이다. 이러한
다른 많은 가능 세계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세계라고 루이스는 말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라고 하는 우리의 세계는 그런 이유에서 현실
세계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현실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가능 세계의 한 개별자에게 그 세계는
'지금 여기'라고 불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는 "모든 세계는 그 자체로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모든 세계는 동등하다"라고
한다. 그렇기에 루이스는 우리가 거주하는 하나의 세계와 다른 가능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게 다른 가능
세계에서의 나는 현실 세계의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루이스는 가능 세계의 나와 현실 세계의 나를 동일성의 관계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유사성의 관계를 말한다. 현실 세계의 나와 가능 세계의 나는 중요한 측면에서 그리고 관계에서 유사하다. 가능 세계의 그 어떤 존재보다 현실
세계의 나와 유사하다. 가능 세계는 존재하며, 그 가능 세계에서 모세는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궁전에 안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모세는 탈출을 시도하였으며, 바다를 가른 인물이다. 루이스는 이 둘의 동일성이 아닌 이 둘의 유사성에 집중한다. 즉, 가능 세계의 모세는
다른 어떤 존재보다 현실 세계의 모세보다 유사하다는 것이다.
4. 간단 정리
루이스는 가능 세계의 존재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연히 지금 여기의 세계에 살게 되었고, 이는 충분히 다르게 될 수 있었다.
즉, 모세는 현실 세계에서 탈출을 시도한 인물이지만, 존재하는 다른 가능 세계에서 모세는 종교심이 없을 수도 있으며, 또 다른 가능 세계에는
종교심이 있다고 해도, 현실에 만족해하며 궁전 생활을 즐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가능 세계들과 현실 세계의 모세는 서로 매우 유사한
존재이다. 이러한 유사성에 의하여, 각각의 가능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모세들의 관계가 설명되는 것이다.
크립키는
루이스와 다르다. 크립키는 가능 세계가 존재하며, 각각의 가능 세계와 현실 세계에 모세들을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동일성으로 설명한다. 현실
세계의 모세와 가능 세계의 모세는 가능 세계의 다른 어떤 존재보다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둘은
모두 가능 세계의 존재를 긍정하지만, 그러한 서로 다른 가능 세계 내의 개별자의 관계에 관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 두 이론은
각각 힘든 난제를 가지고 있다. 필자와 같이 이해력이 부족한 이에게 크립키의 동일성과 루이스는 모두 힘들기만 하다. 모세가 버려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으며, 이집트의 공주의 손에 의하지 않고, 다른 이의 손에 의하여 자라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 모세는 이집트에에
유대인을 탈출시킨 인물이며, 바다를 가른 인물이다. 러셀의 이론에 의하면, 정확하게 하나의 X가 있고, 이에 관하여 X는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인물이며, 그리고 X는 바다를 가른 인물이라고 함은 타당하다. 이리 본다면, 러셀의 기술 이론(theory of description)에
의하면, 모세라는 속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존재하며, 그 사람은 오직 하나만 있고, 그 사람은 이집트에서 유대인을 탈출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가능 세계의 긍정에 의하면, 모세가 각각의 가능 세계에 존재하며, 크립키에 의하여 각각의 가능 세계의 모세는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모세라는 어떤 사람이 존재하며, 그는 이집트에서 유대인을 탈출시키지 않을 수도 있으며, 궁전에서 호화롭게 살아갔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
각각의 가능 세계에 각각의 모세가 있고, 그가 가진 속성은 서로 다를 수 있게 된다. 모세는 한 가능 세계에선 이집트에서 탈출한 인물이지만,
다른 가능 세계에선 이것이 거짓이고, 단지 안락하게 이집트의 궁전에서 살아간 인물이며, 또 다른 가능 세계에선 이집트의 왕족이 아닌 다른 이가
강가에서 아기 모세를 주워서 전혀 다르게 평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갔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각각의 다른 세계에 사는 서로 다른 술어로 서술되는
모세의 동일성은 어디에서 구해지는 것인가? 어쩌면 모세가 처한 상황의 유사성으로 이들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모세는 지금 이곳에선
이집트에서 유대인을 탈출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다른 가능 세계 가운데 모세는 유대인을 탈출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루이스는 이 둘의 모세
사이에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유사성의 관계로 이해한다. 그 두 모세는 유일성의 관계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면에서 매우 유사한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매우 애매하다. 그러나 이러한 애매함의 상당 부분은 이 둘의 동일성이란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이곳의 현실 세계에서 필자, 즉 유대칠은 이 글을 적고 있는 사람이지만, 또 다른 가능 세계의
유대칠은 이 글을 적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이 둘은 동일성의 관계가 아니며, 단지 이 둘은 유사성의 관계로 이해된다. 이 둘은 서로 동일성을
가지지 않으며, 단지 유사성을 가진다. 그러나 필자의 눈으로 보자면, 동일성도 무시할 수 없는 이론이다. 현실 세계의 모세와 가능 세계의 모세는
모세라고 지시되어지는 궁극적 대상에서 어떤 동일성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가능 세계의 모세가 비록 현실 세계와 다르다고 하여도, 그것이 모세라도
지시되는 어떤 존재의 부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 둘 가운데 하나에 서기가 힘들다. 그것은 필자에게 아직 확고한
견해가 없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이 둘에 관하여 비판이나 적극적인 긍정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차후를 기약하며 여기에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