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학의 자리

플라톤의 국가 5권 정리

유학장 2005. 5. 10. 16:55
플라톤의 『국가』5권

유대칠 정리

공산사회(共産社會)와 철인왕(哲人王)에 대하여

<공산사회에 대하여-혼인과 자녀의 공유>

449b Sokrates는 Adeimantos와 Polemarkos가 잘못된 정치체제와 혼(混)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묵살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449c-d 그 이유는 Sokrates가 앞서 논의한 것(423e-424a)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하며, 정치가와 관련하여 여자의 공유(koinonia)와 그에 따른 결혼 및 출산 그리고 그렇게 출생한 자녀에 대한 교육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한다. Sokrates는 이러한 성가심을 피하려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국가에 매우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450b-c Sokrates는 그들의 요구한 논의가 엄청나게 많은 논의거리를 야기함을 이야기하지만, Glaukon은 다시 한번 더 소크라테스에게 수호자들에게 처자와 관련된 공유는 어떠한 것이지 그리고 출생과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촉구한다.

 이에 대하여 Sokrates는 다시 한번 그러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강조하며, 이러한 논의는 의문의 여지가 많으며, 언급하여도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믿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 하여도 그것이 최선인지를 의문할 것이라 한다.

450d 이러한 이유에서 Sokrates는 이야기를 망설인다.

 Glaukon은 이에 대하여 결코 우리는 선생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적개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맘놓고 이야기하라고 격려한다.

450e 하지만 Sokrates는 만일 스스로 그 이론에 확신한다면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 앞에서 하는 것이 좋은 것이나, 이와 같이 스스로도 의심스러워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알림으로서 자신만 진리에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같이 그렇게 될 까봐 두려워한다고 한다.

451c 이제 Sokretes는 남성극이 끝내고 여성극을 하는 바와 같이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자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태어나고 또 그렇게 교육을 받지 않은 이는 처자(妻子)를 바르게 소유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논의의 어딘 가에서 남자를 수호자로 삼았다고 한다.

451d 이제 출생과 그에 상응하는 양육을 규정하여 그 일관성을 유지하고 그러한 것이 우리에게 적합한지는 논하고자 한다.

 암컷은 출생만을 담당하고 수컷은 양떼를 지키는 일을 담당하듯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암컷과 수컷은 일에 있어서 공동으로 한다고 한다.

451e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에 같은 양육과 교육이 필요하다.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말이다.
 
452a 이미 남자는 시가와 체육을 교육해야한다고 했으니, 여자에게도 그러해야한다. 하지만  이일이 관습에 어긋나서 실제로 실행되면 우습게 보일 것이라 한다.
 
452b 그러나 사람들의 농담이나 놀림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된다고 한다.

452d-453a 눈으로 볼 때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도 논의를 통하여 드러난 최선의 것에 의하여 사라진다. 악이 아닌 다른 것을 우스운 것으로 삼는 이는 어리석은 자이며, 선한 것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고 이를 목적으로 삼는 이도 역시 어리석은 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가 가능한지 아닌지, 여성의 인성이 남성의 인성과 함께 모든 일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전쟁은 어디에 속하는지를 논하고 한다.

 그를 위해 우리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론을 제시한다.

453b-c 소크라테스는 반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처음 국가에 대한 논의에서 본성에 따라 그 하는 일이 구별되어야한다고 했다. 그러면 여성과 남성은 그 본성이 다르고 그에 따라 그 역할이 구별되어야한다. 그런데 같은 일을 수행해야한다는 것은 자가 당착이다.

453d 글라우콘은 이러한 반론에 당황해 하며,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이야기하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수영장이건 바다이건 빠지면 혹시 돌고래가 바다에서 구해주는 것은 기대하는 맘으로 헤엄을 쳐야하듯이 이도 마찬가지로 해결의 노력을 시도해야한다고 한다.

453e 분명 서로 다른 본성은 서로 다른 일을 해야한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는 그 본성이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야하며, 그러면서도 서로 같은 본성의 일을 해야한다고 우린 주장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반론은 이를 향한 것이라 한다.

454a 논박술(antilogike techne, 모순논법)의 힘은 대단한데, 그 이유는 논해지는 것(to legomenon)을 다양한 형태(kata eide)에 따라 고찰하지 않고 오히려 이름만 가지고 얘기 된 것과 반대된 것을 서로 대화가 아니라 말싸움으로 찾으려 하게 하기 때문이다.

454b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같은 본성을 가진 것은 같은 일을 수행해서는 아니 된다고, 논쟁적으로 이름만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본성과 서로 같은 본성의 종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본성에 따라서 일을 분배할 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지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454c 예를 들어 대머리와 장발인 사람이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자문해야한다.  만일 그러한 것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 반대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대머리가 제화공이 되면 머리숱이 많은 이는 그것을 못하며, 또 만약 숱이 많은 이가 제화공이 되면 대머리는 그것을 하지 못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글라우콘은 이는 우스운 이야기일 뿐이라고 한다.

454d 소크라테스는 이는 그렇게 우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 논의의 처음부터 우리는 본성의 차이를 모든 종류의 차이라고 하였고, 이에 따라서 개인이 하는 일에 영향이 있을 것 같은 차이만을 의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자 의사나 여자 의사나 혼에 있어서 같은 본성(성향)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의사와 목수의 차이는 전적으로 다르다.
 
 남녀가 어떤 기술이나 일에서 본질적으로 차이를 가진다면 이에 따라 그 일도 적당히 배치되어야한다. 그러나 그 차이가 여자는 낳는 것이고 남자는 낳게 하는 것이라면 이런 차이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454e 그러기에 수호자의 아내에게 동일한 일을 주어야한다는 것은 계속 논의 될 수 있다.

455a 이제 나라의 조직과 경영에 관련하여 남녀의 본성이 같은가 같지 않은가를 논하려 한다.

455b 본성이 알맞은 이와 본성이 알맞지 않은 이는 전자는 쉬이 배우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455c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점은 과자를 굽는 것 그리고 채소를 삶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에 있어서 여성은 그의 본성에 알맞은 것이다. 많은 점에 있어서 그것이 어느 쪽이든 다른 쪽에 다른 쪽을 능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것도 여자이기에 여자에게 그리고 남자이기에 남자에게 속하는 일은 없고, 오히려 본성적으로(kata physin) 양쪽에 나누어져 있어서 여자는 본성적으로 모든 직업에 한 몫하고 남자도 역시 그러하다. 다만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는 것뿐이다.

455e 그렇기에 남자에게 모든 일을 주고 여자에게 주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여자도 의술이 타고난 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가 있고,
어떤 이는 시가(詩歌)에 타고난 이가 있고, 그렇지 못한 이가 있다.

456a 또한 어떤 여자는 체육에 능하나 다른 여자는 그렇지 않으며,
어떤 여자는 지혜를 사랑하나 또 다른 여자는 그렇지 않으며,
어떤 여자는 격정적이지만 또 다른 여자는 그렇지 않으며,
어떤 여자는 수호자적인 기질이 있지만, 또 다른 여자는 그렇지 않다.

여자고 남자고 간에 나라의 수호와 관련해서는 그 본성이 한결 같은 것인데, 한편은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456b 어떤 특성을 가진 여성은 그와 같은 특성의 남성을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남자 수호자의 아내들에게는 시가와 체육을 교육받게 하는 것이 본성에 맞는 것이다.

456c 이렇게 만들어진 법(nomos)은 본성에 알맞은 것이며(kata physin), 공상과 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의 것은 오히려 본성에 맞지 않다.
 
 이상의 논의는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제 그 유용성에 대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남자를 수호자로 만드는 교육은 여자도 수호자로 만들 것이다.

456d 모든 사람은 같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으로 생각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서 수호자는 제화공보다 나은 사람이다.

456e 교육을 받은 수호자는 가장 훌륭한 시민이다. 또한 수호자의 아내도 가운데 가장 좋은 여자들로 된다.

 나라를 위해서는 나라 안게 최선의 남녀가 많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가나 체육이 이런 일을 이룰 것이다.

457a 소크라테스는 이런 법을 제정하는 것이 최선의 법이라고 한다.

 수호자들의 아내는 옷 대신에 덕으로 옷을 입은 것이기에 옷을 벗어야하며, 수호에 관련해야하나,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457b 최선의 것을 위해서 옷을 벗고서 체육을 해야하고, 이를 보고 웃는 이는 '설익은 웃음의 열매를 따는 이'(진짜 웃음이 아닌 것을 웃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진짜 왜 웃는 지 모르는 이이다.

457c 남녀 수호자는 모든 일을 공동으로 해야한다.

457d "남자는 여자는 공유해야하고, 어떤 여자도 남자와 사사로이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 자녀도 공유하고 부모가 자기 자신의 자녀를 알아보지 못하게 해야한다."
 이것은 최선의 것이다.

458a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논의의 가능성과 유용성의 문제에 있어서 가능성은 나중에 살피고, 이러한 논의가 실현되는 것이 나라와 국가에 어떤 유용성이 있는지를 먼저 다루고자 한다.

458b-c 통치자는 지시를 내리는 이이다. 수호자는 지시를 받는 이이다. 입법자는 남자를 선발하듯이 여자도 선발해야하며, 이들은 유사성 본성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공동식사를 하고 공동으로 주거를 한다. 개인적으로 소유하지는 못한다.

458d 체육이나 그 밖에 양육에 있어서 어울리게 되고, 필연적으로 서로 어울리게 되고, 성적인 관계도 유도된다.

458e 그러나 서로 무질서한 성적 관계는 행복한 이들이 사는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에, 혼인을 가장 성스러운 혼인으로 가장 유용한 혼인으로 되어야한다.

459a 그러면 무엇이 그러한 혼인인가?
사냥개가 좋은 혈통끼리 짝짓기를 하듯이 그렇게 해야한다. 좋은 혈통은 좋은 새끼를 낳는다.

459b 그것도 늙어서가 아니라 최대한 절정기일 때 좋은 새끼를 낳는다. 다른 동물도 이러한 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라면 통치자들이 최상급이어야만 할 필요성이 더욱 더 크다.

459d-e 최선의 남자는 최선의 여자와 그리고 변변찮은 남자는 변변찮은 여자와 관계를 가져야하며, 전자의 자식은 필요하지만 후자의 자식은 나라에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는 통치자만이 알아야하는데, 수호자가 반감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460a 혼인의 수는 통치자가 결정하며, 이는 전쟁, 질병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을 고려하며 남자의 수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460b 전쟁에서 뛰어난 이는 자주 선적 관계를 허락하여 이러한 성향의 아이를 많이 출산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출산된 아이는 담당 관리가 넘겨받는다. 이는 남자일 수도 여자일수도 있다. 그것은 관직을 여자도 남자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460c 뛰어난 자들의 자녀는 나라의 특정 보호구역으로 데려가야 하며, 열등한 이들의 자녀는 밝힐 수 없는 은밀한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 뛰어난 아이를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말이다.

460d 어머니들이 젖을 줄 때에는 자녀들이 모르게 해야하며, 젖이 모자랄 때는 유모를 대어야한다. 그러면 산모들을 대신해서 유모와 양육자가 돌보기에 수호자들의 부인들은 자녀를 기르는 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461a 출산의 절정기에 미달되거나 넘어선 자들의 아이는 남년 제관의 의식이나 기원도 없이 어둠의 무절제에서 나온 산물이다. 이는 올바른 일이 아니다.

461b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난 이들은 부모와 조부모를 제외하고는 관계를 자유로이 허락하지만, 그에 따라서 자녀가 태어나도 양육하지는 않는다.

461e 수호자들에게 아내의 공유(koinonia)란 바로 위와 같은 이러한 것이다.

462a 입법자가 법률을 제정할 때 목표는 최대선(to megaston agathon)이 무엇이며, 최대악(to megaston kakon)이 무엇인지를 자문하는 것이다.

462b 모든 시민이 최대한으로 비슷하게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나라를 단절  시키지 않는다.

462c '나의 것'(to emon)이나 '나의 것이 아닌 것'(to ouk emon)이 사라진다면, 남의 것에 대해서 그러할 것이다.

462d-e 그러면 시민들은 한 사람의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다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것이다. 이러한 것은 훌륭한 법질서를 갖춘 나라에게 필연적인 것이다.

463a 다른 나라에도 평민과 통치자가 있다. 이들은 통치자를 시민들(polites)이라고 부르면 또한 다른 많은 나라는 절대군주(deopotes)라 부르며, 민주적인 나라는 이를 통치자(ho archen)이라 부른다.

463b 우리의 나라에서는 시민이라는 말 이외에 통치자를 구원자 혹은 조력자(보조자)라고 한다.

통치자는 평민을 부양자나 보수를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통치자가 평민을 노예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통치자들 서로를 동료 통치자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나라는 통치자들은 서로를 동료 수호자라고 한다.

다른 나라는 동료 통치자 가운데 누군가를 친척이라 하고 다른 이는 남이라고 한다. 그리고 친척은 제 집안 사람이라 여기고 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463c 하지만 우리의 나라는 수호자들 가운데 서로를 그렇게 할 수 없다. 누구를 남으로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만나는 모두를 형제 자매로 또한 부모로 여긴다.

463d 그리고 그것에 알맞은 것을 법을 정하여 모든 행동을 행하도록 할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하면 그렇지 못하면 불경한 이가 될 것이다. 동시에 신과 인간에게 은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버지가 할 말이라면 어려서부터 들려 주어야한다.

464a 시민들이 공유하는 것을 내 것이라고 할 것이다. 공유하기에 이들은 즐거움 또한 고통을 공유할 것이다.

464b 이렇게 되면 우리가 동의한 바와 같이 고통과 즐거움이 최대선이 되는 것이며, 최대선의 원인이 보조자들에 있어서 처자(妻子)의 공유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464c-d '내 것'이 사라지면, 나라의 분열이 사라지고, 동일한 것을 목표로 고통과 즐거움을 최대한으로 공감(homopatheia)하게 될 것이다.

465b 서로 간에 분열이 사라지면, 서로 갈라진 위협이 없어질 것이다.

465c 그러면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에게 아첨할 것이 없을 것이고, 빚을 지지 않아도 될 것이고,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465d 이러면 올림픽에서 우승한 듯 행복할 것이다.
이와 같은 나라의 수호자들은 살아서도 상을 받고 죽어서도 걸맞은 무덤을 가질 것이다.

465e-466a 누군가는 이러한 수호자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데, 가질 수 없기에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살피겠지만 수호자는 한 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이 나라의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이이다.

466b 만일 그러한 욕심을 내는 수호자는 더 이상 수호자가 아니다.

<공상사회에 따른 자녀 교육>

466d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남성과 여성의 본성에 따라서 서로의 일을 행해야한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공동관여가 가능하다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를 논해야한다고 한다.

466e 소크라테스는 전쟁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아이들 가운데 건장한 아이는 모두 전쟁에 데리고 가야한다. 이는 다른 분야에 있어서 장인들이 자신들이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미리 견학시키듯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467a 동무들도 자신의 새끼가 보고 있으면 더욱 더 잘 싸운다고 소크라테스는 이야기한다.  

467b 그러자 글라우콘은 질문한다. "전쟁은 항상 이기는 것이 아니며 만일 이기지 못할 경우 아이들 마저 잃게 되기에 다른 시민 모두가 재기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위험을 무릅써야한다면 그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한다.

467c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는 위험을 이겨야하며, 만일을 대비하여 아이들의 안전 대책이 있으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위험할 정도의 전쟁은 그들이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467d 이러한 전쟁에는 평범한 지휘자가 아니라, 경험과 연령이 있는 지휘자가 임명되어야한다.  

467e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승마(乘馬)를 가르쳐야한다. 그러면 장차 자신의 일을 견학하기도 좋고 위험하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다.

468a 전쟁시 전열에서 이탈하거나 무기를 버리고 도망간 자는 농부나 그 밖에 것으로 강등해야한다. 그러나 적을 생포한 자는 이를 선물로 그에게 주어야한다.

468b 또한 전쟁에서 큰공을 세운 이는 그와 같이 출전한 청소년들에게서 한 사람 한 사람 영예의 관을 씌우도록 해야한다.

468c 그러면 서로 그러한 위치에 뽑히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 자들은 혼인의 기회를 많이 주어 그러한 자식을 많이 낳게 해야한다.

468e-469b 출전 중에 전사한 이에게는 수호신과 같이 그러한 사람을 대해야한다. 그리고 그를 경배해야 한다.

이어서 적에 대한 태도를 논해보자.

469c  노예를 같은 헬라인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고, 야만인을 삼아야한다고 한다. 그러면 전쟁은 자기들끼리가 아니라 그 방향을 이방인으로 돌일 것이다.

470a 같은 헬라인의 무기를 앗아서 그것을 신전에 봉헌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며, 신전을 더럽히는 일이다. 그리고 헬라인의 가옥에 불을 지르거나 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470b 전쟁과 내란은 다른 것이다. 전쟁은 나라의 밖에의 적에 대한 것이고 내란은 나라 안의 싸움이다. 전자는 이방인을 향한 것이고 후자는 같은 민족을 향한 것이다.

470c 이방인은 본성적으로 적이다.

470d 그러나 헬라인은 그러한 것이 아니며, 이러한 싸움에서는 어느 쪽도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승자가 패자에게 가옥을 빼앗는 것은 애국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보모와 부모를 유린하는 것이다.

471a 이러한 것은 내란이지 전쟁이 아니다. 이는 화해하게 될 사람들로서의 불화로 인한 것이다. 선의로 돌아가면 결국은 적이 아니라, 잘못을 시정해주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들을 멸망하게 하기 위함은 아니다.

471b 같은 헬라인들은 국토를 유린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옥을 파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란이라는 불화의 해결해서는 그 내란의 장본인만을 벌주어야한다.

471c 이제 우리의 나라에 국토를 유린하지 말고 가옥을 불태우지 말라고 법으로 정하도록 하자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哲學者王에 대하여>

471c-e 글라우콘은 그러한 국가의 조직이 이루어지면 매우 용감히 싸우고 여자와 남자도 같이 일선에서 일하며, 강력한 군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그러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소크라테스에게 미루어둔 문제인 그러한 것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 것인지를 답해달라고 한다.

472b 소크라테스는 먼저 올바름(dikaiosyne) 그리고 올바르지 못함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여기에 왔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올바름이 무엇인지 발견한다면 올바른 사람은 그 올바름이라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며, 정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더 가까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472c-d 소크라테스는 우리의 논의가 완전히 올바른 사람이 있다고 하고 그것에 대한 본을 갖기 위함이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그것에 더욱 가까워지면 우리의 운명과 그러한 이의 운명과 같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논의는 이러한 것이지 그러한 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한다.

 화가가 가장 아름다운 이의 본보기를 그렸다고 하자, 그 그림의 사람이 실제 생길 수 있는지를 입증하지 못해도 그 화가는 훌륭한 화가이다.

472e 우리의 논의는 그러한 본을 말로써만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훌륭하지 않은 나라는 아니다.

473c 이러한 나라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변혁이 필요하다고 소크라테스는 이야기한다.

473d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 통치를 허거나 지금의 왕이 철학을 공부하여 철학자가 되어야한다고 한다,"

474b-c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철학자에 대하여 정의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가 무엇을 사랑한다고 하며, 그것은 일부를 사랑함이 아니라 정부를 사랑함이다.

475b 또한 어떤 것을 욕구 한다는 것은 그것의 일부를 욕구함이 아니라, 전체를 욕구함이다.

"철학자도 지혜를 욕구 하는 이로써 일부 지혜(sophia)를 욕구 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 지혜를 욕구 한다."

475c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475e 그는 기술을 배우는 이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이를 닮은 것일 뿐이다.

 진정한 철학자는 진리(aletheia)를 관조하는 사람이다.

476b 그러나 듣기를 좋아하는 이나 보기를 좋아하는 이는 아름다운 그 자체(auto to kalon)의 본성(physis)을 볼 수는(idein) 없을 것이다.

476c 아름다운 것은 믿으면서 아름다움 그 자체를 믿지 않는 이는 꿈을 꾸는 이와 같다. 또한 어떤 것을 닮은 것을 닮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게 닮아 보이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476d 반면 그것 자체(auto)에 대하여 인식(gnome)이라 함은 옮은 것이지만, 관여된 것에 대한 것은 억견일 뿐이다. 억견은 가지지만 인식이 없는 것은 건전한 맘에 있는 것이 아니다.
 
476e 인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이다. 무엇인가가 없다면 아무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 무엇은 어떤 것인가? 그는 존재하는 것(on)을 인식하는 것인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은 것(me on)을 인식하는 것인가?

477a 단연코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은 완전하게 인식되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인식 될 수 없는 것이다.
존재하면서(einai) 존재하지 않을(me einai) 수도 있는 것은 순수하게 그리고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지 않는 것 '중간'에 있다.

477a-b 존재자(on)에서 인식(episteme)이 생기고,
비 존재자(me on)에서 무지(agnoia)가 생기고,
중간의 것에서 무지(      )와 인식의 중간의 것이 생긴다.
이 중간의 것이 억견이다.
인식은 능력이다.
그리고 이 인식은 존재자와 관계한다.

477e 인식은 가장 강력한 능력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분명 인식과 억견은 다른 것이다.

478a 이 둘은 본성상 다른 일을 한다. 인식은 실재(實在)와 관계하여 일하고, 억견은 억견을 가지게 되는 것에 관계한다. 그리고 인식의 대상과 억견의 대상 역시 다르다.

478b 실재(實在)는 인식의 대상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to me on)은 억견의 대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없는 것(無)이다.

478c 인식보다 억견이 어둡지만 이는 무지보다는 밝은 것이다.
이에 따라서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과 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 중간의 것이 나타날 것이다.

479a '아름다운 것 자체'는 언제나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아름다움의 어떤 형상(idea)이다.

479e 많은 아름다운 것을 보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는 보지 못하는 이를 따르는 이는 많은 아름다운 것을 보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는 보지 못한다. 이는 모든 것에 대하여 억견은 가지지만 인식을 가지지는 못하는 것이다.

480a 이에 반하여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이)는 각각의 실재 자체를 반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