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의자리

유대칠의 교부학 공책 1 - '교부'는 누구인가?

유학장 2024. 9. 22. 22:36

유대칠의 교부학 공책

Introductio ad Patrologiam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1. ‘교부(敎父, Patres Ecclesiae)’란 누구인가?

 

신의 계시(啓示)는 ‘성서(聖書, Sacra Scriptura)’와 ‘성전(聖傳, Sacra Traditio)’으로 되어 있다. 이중 성서는 흔히 알 듯 신약(新約)과 구약(舊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성서를 알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직접 읽는 거다.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관련된 주해서를 읽거나 공인(公人)된 강의를 들으면 된다. 하지만 성전, 즉 ‘거룩한 전통’을 알고자 할 때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은 막막하다. 그런 성전 공부에 있어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게 교부의 가르침을 읽고 연구하는 거다. 성전의 주요 기둥을 교부의 가르침으로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신교회는 ‘가톨릭교회’나 ‘동방 정교회’ 그리고 ‘오리엔트 정교회’에 비해 성전에 향한 관심이 크지 않다. ‘오직 성서(Sola scriptura)’라는 루터의 외침에서 알 수 있듯 ‘성서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오랜 시간 동안 신앙과 관련된 다양한 고민을 궁리한 신앙 선배의 가르침이 지금의 그리스도교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Αυγουστίνος Ιππώνος, 354~430)와 오리게네스(Ὠριγένης, Origenes, 185?~253?) 그리고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155?~240)의 고민이 지금 그리스도교인의 고민에 방해가 되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좋은 참고서가 될 순 있겠다. 개신교회의 신자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교부학(敎父學, patrologia)은 오직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만 유익할까? 그런 것도 아니다. 굳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지구촌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믿어온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자 할 때 교부의 가르침은 제법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역사와 사상 그리고 예술 등을 이해하려 할 때, 교부학은 큰 도움이 될 거다. 지금도 그리스도교는 세계 수많은 이들이 믿고 있는 종교이기에 현재 진행 중인 종교와 관련된 많은 문제를 이해함에도 도움이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교부에 관한 공부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든, 가지지 않은 이든, 모두에게 나름의 유익이 될 거다. 분명히.

 

‘교부’는 ‘교회의(Ecclesiae) 아버지(Patres)’, 즉 ‘교회의 부모’와 같은 존재다. 사실 ‘교부’라는 말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말이다. 처음 ‘교부’라는 말은 ‘주교(主敎)’에 한정해 사용했다. 지금도 ‘공의회 문헌’을 보면 문헌을 결정하고 반포한 ‘주교’를 ‘교부’라 적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교부학’을 공부하며 부르는 ‘교부’는 ‘주교’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교부’라고 부르는 이들은 사도(使徒, apostolus)의 제자인 ‘사도 교부(Patres Apostolici)’를 시작으로 ‘라틴 교부’로는 대 교황 그레고리오(Gregorius Magnus, 540~604) 혹은 세비야의 이시도로(Isidorus Hispalensis, 560?~636)까지 ‘헬라 교부’로는 다마스쿠스의 요한(Ιωάννης ο Δαμασκηνός, Iohannes Damascenus, 676~749)까지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그리스도교가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따라야 하며 어떤 점에서 유대교와 다른지 설득하던 이들이다. 그 시간 무엇이 ‘정통’인지 신도에게 설득하고 무엇이 ‘정통’이 아닌 ‘이단(異端, Haeresis)’인지 설명함과 동시에 이단과 다투던 이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부는 정통의 길을 다지고 안내하던 이들이다. 고대 교회사나 고대 신학사를 공부할 때 ‘영지주의(Gnosticismus)’ 등과 같은 이단과 다투던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는 모두 ‘교부’다. 그 시절, 신도를 설득하여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에 빠지지 않게 돕고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설득하던 이들은 대체로 ‘주교’였다. 그러니 그 시절은 ‘주교’가 곧 ‘교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주교가 아닌 이들이 이와 같은 일을 아주 훌륭히 수행하며 신자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에 교부인 히포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비록 주교가 아니지만, 교회와 신자에게 큰 도움을 준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를 ‘교부’라 불렀다. 그리고 레랑의 빈첸시오(Vincentius Lerinensis, ?~445?)가 쓴 『비망록(Commonitorium)』에선 하나의 교회, 하나의 신앙 가운데 머물며 정통을 위해 애쓴 이라면 신분이 무엇이든 교부로 존경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주교’ 아닌 ‘사제’나 ‘평신도’도 ‘교부’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도 ‘주교’가 아니다. 심지어 ‘사제’도 아니다. ‘평신도’다. 평신도지만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고민하던 문제를 두고 깊이 궁리하며 나름의 논리로 정통을 다지고 설득한 인물이다. 그러니 그를 교부로 기억하는 거다. 그가 평신도라 해도 그를 교부로 기억하고 부르는 건 조금도 과한 일이 아니다.

 

예수 이후 예수의 제자인 사도는 각 지역에 교회를 세운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는 곧 여러 가지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각 교회는 사도의 편지에서 길을 찾았다. 사도는 편지로 어려움 속 힘겨운 각 신도를 올바른 길로 안내했다. 하지만 이런 사도 역시 곧 이 세상을 떠난다. 사도가 떠난 자리, 사도를 대신해 각 교회를 올바른 길로 안내한 이들은 사도의 제자이며 사도의 뒤를 이어 주교가 된 이들이다. 즉 ‘사도좌(使徒座, Sedes Apostolica)’에 앉은 이들이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는 사도 안드레아가 세웠고,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복음사가 마르코가 세웠으며, 안티오키아 교회는 사도 베드로가 세웠다고 한다. 또 이스라엘 교회는 사도 야고보가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로마교회로 사도 베드로가 세웠다고 한다. 이들 교회는 모두 사도좌를 이어가고 있는 주교가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가톨릭교회, 즉 로마교회를 이끄는 교황을 사도 베드로의 사도좌를 계승한다고 보고 있으며, 같은 이유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를 이끄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Patriarchae Oecumenico Constantinopolitano, Οἰκουμενικὸς Πατριάρχης Κωνσταντινουπόλεως)’는 사도 안드레아의 사도좌를 계승한다고 본다. 사도의 시대 이후, 사도좌에 앉은 주교는 사도가 세운 각 지역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이때 그리스도교회는 힘겨운 박해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교회의 규모는 사도의 시대보다 더 거대해졌다. 지중해 인근 전체 지역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확산되어 갔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히 로마제국의 눈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 신흥종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 즉 박해와 확산이 함께 이루어지던 바로 이 시기, 교회는 자신을 변론해야 했다. 이런저런 오해(誤解) 가운데 자신의 신앙이 로마제국 사람에게 나쁜 것이 아니란 걸 설득해야 했다. 또 자신의 신앙이 유대교 신앙과 어떻게 다른지도 설득해야 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고민이 깊어졌고, 다양한 그리스도론이 등장하고 논쟁한 시기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구분하는 분기점이었기에 그리스도에 관한 고민은 곧 자기 자신의 신앙에 관한 고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구약의 예약이 이루어진 존재로 예수를 바라보는 해석이 등장하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구분시켰다. 이런 논리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단순한 신흥종교가 아닌 이미 오랜 시간 믿어온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진 종교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당시 교부는 자신을 향한 다양한 오해와 자신의 신앙이 무엇이며 무엇이 정통인지를 궁리하고 이를 교회의 안과 밖을 향해 설득해야 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정통 신앙이 만들어져 가던 시기, 교부는 바로 그 시기 다양한 논쟁 가운데 정통을 만들어가며 설교하던 이들이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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