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보기/이야기 중세철학
철학사에 대한 단상... 개감동 중세철학 1 - 보론
유학장
2017. 10. 8. 00:57
역사란 쓰는 사람의 역사 의식의 반영이다. 결국 역사의 평사란 역사를 쓰는 이의 것이란 말이다. 누군가의 철학사를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시선에서 그의 역사 의식의 반영을 읽어간다는 말이 된다. 동아시아엔 도통이란 개념이 있다. 도통은 유학에서 도학 전수의 계통으로 도학 전승의 일관성과 계통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정학과 이단을 구분하는 수단이 된다. 공자는 맹자로 맹자는 주희로 주희는 이황으로 넘어갔다는 이가 있고, 주희에서 이이로 그리고 이이에서 송시열을 걸처 권상하로 넘어갔다는 이도 있다. 이 도통의 외부는 이단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그 도통을 정학이라 보는 시선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그 시선의 외부엔 또 다른 생각들이 있다. 유학의 다른 갈래인 양명학이 있고, 노장학이 있으며 불학과 서학도 있다. 어떤 것을 정학이라 칭하고 그 외부를 이단이라 보는 이들의 시선 속에서 역사는 정학과 이단으로 구분된다. 여기에서도 역사는 그 역사를 쓰는 이들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에 보인 것이 된다.
사실 아주 순수한 철학의 흐름에서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는 차이가 없다. 어디까지가 고대이고 어디까지가 중세인지를 알 수 없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후기 철학자들의 문제 설정은 중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보편의 문제와 인식 타당성의 문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유입되면서 중세철학이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중세란 시간에 순수한 철학은 없단 말이 될 수 있다. 중세를 떠나 서로마교회든 동로마교회든 아니면 아랍의 이슬람이든 페르시아의 이슬람이든 그것도 아니면 유대교든 지중해 연안 많은 종교는 그 종교를 신앙으로 가진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철학이 신앙의 노예로 신학의 수단이 아닌 독립된 위상에서 다루어질 수 있었다면, 혹은 철학과 신학의 차이를 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여 가장 순수한 지성의 자발적 사고를 신앙의 계시와 나누지 않는 사고가 가능했다면, 조력자가 아닌 지성이 인간이 가진 가장 소중한 본질이라 믿고 그 지성의 자발성을 따른 이들이 있었다면, 고대와 중세는 같다. 중세의 철학자도 고대의 고민과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철학이라 부른 것이다.
하지만 철학사를 쓰고 기록한 이들이 교회에 속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교회와 신학의 역사가 중세 철학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것에서 벗어나려 한다. 순수한 철학사의 가능성을 보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