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철학사

유암브로시오의 유라시아의 철학들 3 - 그리스인의 인간 이성 독립 운동

유학장 2014. 7. 10. 06:35

<이 글은 유대칠에게 모든 권한이 있기에 출처에 대한 공개 없이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출처를 분명한 인용 등의 사용은 허락합니다.>


유암브로시오의 유라시아 철학들 3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지음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그리스인의 인간 이성 독립 운동!


굳이 우리가 철학의 등장을 말하지 않아도, 그 이전부터 인간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인간 자신이 막막하게 여겨지는 지점에서 즉 '이성의 한계'에서 인간은 쉽게 '신비의 영역'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신, 즉 종교적 담론으로 이를 설명하였다. 이집트인들도 자신의 학문적 성과로 피라미드를 만들었음을 알고있다. 그리고 그들의 미이라를 통해 그들의 해부학적 지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기하학과 천문학에 있어서도 분명 상당한 성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뿐인가? 그보다 더 오랜 과거, 수메르인은 또 어떠한가? 그들도 분명 나름의 학문적 성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신을 가정하여 신이란 수단으로 우주와 자신을 파악하려 하였다.


그러나 유라시아인들이 서서히 스스로를 스스로의 관점으로 규정하기 시작한다. 신의 창조 없이 우주를 설명하려 노력한다. 분명 그들도 어느 정도 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은 신이란 존재의 가정 없이 우주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형상은 유라시아 전반에 등장한다.


그 가운데 크세노파네스(Ξενοφάνης, Xenophanes, 기원전560-478)가 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를 다룰 때 항상 등장하는 엘레아 학파의 시조이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남부 엘레아 사람이 아니고, 지금의 터키 서부 해안에 있는 이오니아 지방의 콜로폰 사람이다. 이곳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엔 헤라클레토스가 태어난 곳이며 신약 성서에도 등장하는 에페수스(Ephesus)가 있다. 이곳은 지금도 사도 요한의 무덤이라 알려진 곳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십자가 사건 이후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에페수스에 살면서 그의 복음서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 또한 철학자에서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이들이 활동한 곳이 바로 이오니아 지방이다. 당시 터키 서부는 참 대단한 곳이다. 한때 이 지방은 철학의 공간이었고, 많은 신학적 담론이 탄생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크세노파네스를 엘레아 학파의 시조로 보는 것은 플라톤의 대화편 <소피스테스> 때문이다. 이곳에서 크세노파네스는 엘레아 학파의 시조로 등장한다. 그리고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그의 <형이상학>에서 엘레아 학파의 파르메니데스의 스승으로 크세노파네스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인가에 대하여 현대에 들어 많은 의문이 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크세노파네스가 당시 종교적 사고, 즉 많은 인간 이성의 한계 앞에서 신이란 수단으로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여 인간 이성에 근거한 학문적 세계관을 형성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많은 이들 앞에서 신이 어떠하고 인간이 어떠한지를 노래하였다. 이 노래를 통하여 그는 자신의 고민과 그 고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예를 들어, 당시 많은 고대인들은 태양을 신으로 생각하였다. 태양은 단순한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다. 그러나 크세노파네스는 그것은 일종의 자연 현상이라 규정하였다. 이것은 이후 아낙사고라스가 태양을 뜨거운 돌덩어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신성 모독이었다. 실재로 아낙사고라스는 이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할 뻔 했었다. 지금의 우리와 다르게 당시 이러한 논의 자체는 분명 혁명적이었다. 인간이 인간의 눈으로 신이란 도피처 없이 철저하게 합리적 세계를 그려보고자 한 것이다. 크세노파네스 또한 인간이 인간의 기준으로 신을 형성화하여 믿는 그러한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마치 이후 독일의 철학자 포이에르바하가 종교를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는 종교를 비판하였다.


크세노파네스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듯이 서서히 인간이 인간의 관점, 즉 이성으로 우주를 보려고 한다. 종교 무용론으로 보기 보다는 쉽게 생각하면, 종교 없이 인간 이성으로 구성되는 독자적인 영역에서의 학문이 가득하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은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이 종교 문헌이나 종교적 황홀경 속에서 물리학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인간 이성으로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이 우주를 이해하게 하고, 인간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인간 이성의 독립 운동이 과거 유라시아에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6세기다. 터키 서쪽 해안 그리스 식민지인 밀레토스엔 참 대단한 그리스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우주를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우주, 그 거대한 것이 어떤 '원리'로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원리만을 알수 있다면, 그것은 우주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 원리는 어떤 의미에서 우주의 본질, 혹은 우주의 '민낯'일지 모른다. 탈레스는 그 원리, 즉 그리스어로 arche를 '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들으면 조금은 엉뚱해보이지만, 지금 21세기의 우리가 아닌 거의 2600년 전, 그들의 조건에서 생각해보자. 인간은 정자, 즉 액체에서 기인하는 듯이 보일지 모른다. 나무는 물이 없으면 죽고 인간 역시 대부분, 피 즉 물이다. 물이 없는 우주는 생각하기 힘들지 모른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기원전 585-528)는 '공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지금의 조건이 아닌 그들의 조건에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는 물이나 공기와 같이 하나의 형태로 규정되지 않는 '무규정자'라고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주를 이와 같은 하나의 원리로 파악하려 했다. 이러한 가운데 사모스에서 이탈리아 남부로 이주한 유명한 철학자가 등장한다. 바로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71-496)다. 그는 영혼의 윤회를 믿었다. 그리고 우주는 수학적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사실 지금도 지구에서 화성으로 우주선을 발사할 때 화성과 지구의 회전 속도를 감안하여 계산해서 낸다. 이것은 화성과 지구가 어떤 수학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수학적 질서가 없다면, 미리 이 속도로 이 방향으로 보내면 화성에 보내에 내릴 것인지 알 수 없고, 보낼 수도 없지 않은가? 너무 빨리 가도 걱정이고 너무 늦어도 걱정일 것이니 말이다. 어떤 경우엔 수학적 관념이 실재를 지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여성의 신체를 8등신으로 보려는 것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 존재의 몸을 수학적 단위인 몇 kg으로 파악하는 것도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수학적인 어떤 것으로 파악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뿐인가? 한 사람의 사고 능력을 IQ와 같은 수학적 수치로 파악하려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피타고라스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린 우주를 수학적으로 파악하고, 수학의 원리에 따라서 판단하고 규정하고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잔혹했다. 이들은 이성적 수, 즉 유리수(a rational number)만을 인정하였다. 정수로 비례로 이성이 합리적으로 파악 가능한 유리수 이외 수란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를 따르던 히파르소스가 무리수(an irrational numbet)를  발견한다. 그러자 그를 물에 빠뜨려 죽여버렸다. 피타고라스는 어찌하였든지 이 우주를 수학적으로 파악하였고, 수학적 모습이 바로 우주의 참 실체라고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Herakeitos 기원전 540? - 480?)는 수와 같은 영원하고 불멸한 무엇이 아니라, 우주의 참 실체는 변화라고 보았다. 물론 그 역시 이 우주로 무질서한 변화로 가득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변화 가운데는 어떤 질서가 존재한다. '불'과 같이 모든 것을 태우지만 그 태워진 것을 다시 무엇인가를 위한 거름이 되지 않는가? 우주도 이와 같다고 보았다. 소멸시키고 생성하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 불교 <아함경>에 등장하는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생긴다는 이야기과 같이 이 우주는 변화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두 개가 아닌 하나이다. 생성과 소멸이 둘이 아니란 말이다.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가운데 일어나는 변화는 인간에게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하나에 집착하게 되면, 그것의 소멸이 나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주의 이성, 로고스는 이러한 변화 가운데 하나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근원에서 나와 다시 근원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며, 로고스의 관점에선 이 둘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로고스의 관점에선 태어남도 죽음도 둘이 아닌 하나이다. 하지만, 원효와 '일체유심조'와 같이 인간의 이성이 선과 악을 판단하여 괴로워한다. 더 좋고 덜 좋은 것으로 구분하고 더 바른 것과 덜 바른 것으로 구분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로고스의 관점, 즉 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은 그저 바르고 좋은 것일 뿐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우주의 참 모습을 구하려고 했을 때, 그리고 고민하고 불이라고 했을때, 그는 그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기원 그 이상의 것을 구하려고 했다. 존재론적 참 모습이다. 그 참 모습을 통하여 우주가 어떻게 참으로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고, 그에 따라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참되게 살아갈 것인지 우주의 참 모습을 알게 됨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감각하는 우주는 변화하지만 그 이면에 참된 것은 감각이 아닌 이성으로 구할 수 있는 로고스이며, 로고스에 대한 인식이 참다운 인식이다. 우리를 참다운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우주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대부분이 인정하는 바였다. 피타고라스도 헤라클레이토스도 모두 인정하는 바였다. 그리고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15?-445?)가 있다. 그는 감각이 아닌 이성으로 진리를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불멸의 진리를 추구했다. 그는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이성만의 진리이며, 이 이성만의 존재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고, 불가분(不可分)인 것이며, 불변부동(不變不動)의 것이다. 하지만 감각으로 지각하는 것은 서로 다르고 변로하는 생성소멸의 시간과 공간 가운데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러한 감각의 지각이 오류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성 사유의 대상은 존재라고 한다. 사유와 존재의 일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유 자체가 되지 않는다. 사유가 된다는 면 존재한다. 그에게 비-존재란 공허하다. 사유 대상인 존재는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며, 영원히 고정된 것이다. 우리가 다양성을 경험하는 것, 존재와 비-존비를 구분하는 것은 감각의 오류로 가득한 환상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참 우주는 우리의 감각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것을 초월해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우주에 대한 합리화 과정이 감각으로 느껴지는 자연을 벗어나려는 과정인 것 만은 아니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원전 490-430)는 우주가 흙, 공기, 물, 불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사랑(당기는 힘)하고 미워함(미는 힘)으로 우주의 많은 만물이 존재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은 사랑의 힘이다. 참으로 이성적인 고민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면 감성적인 접근으로 보이기도 한다. 엠페도클레스가 생각한 것과 같이 중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은 4 가지 원소로 우주가 구성된다고 보았다. 엠페도클레스가 이야기하는 이들 4가지 요소는 굳이 그리스뿐 아니라, 유라시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물론 그 구원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성리학은 수화목금토라는 5행에 의하여 만물이 생성된다고 한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5행은 제법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생각한 원소들 그리고 원리들은 그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이나 불 혹은 공기나 흙 그 이상의 존재론적 의미를 가진다. 마치 성리학자들의 5행과 같이 말이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500-428)를 보면 이를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신으로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자연 현상에 대하여 종교가 아닌 인간 이성에 의존한 합리적 접근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철학적 태도는 당시 신성 모독죄라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게 되고, 결국은 사형을 선고 받는다. 하지만 그 이후 그의 행방에 대해선 여러 이견이 있다. 그는 물이나 불과 같은 하나의 성질을 가진 하나의 원리가 아닌 무한히 다양한 원소로 이루어진 원소를 이야기한다. 이것을 두고 종자(spermata)라고 한다. 하나의 종자 가운데 여러 가진 성질이 있고, 그 성질 가운데 어떠한 성질이 우세한가에 따라서 차이를 갖는 다양한 사물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종자 원소가 서로 결합하고 분리하는 것은 '이성'(nous)의 작용이라 한다. 이 이성은 종자 원소들의 무리에 최초의 일격을 가한다. 이에 의하여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이 소용돌이로 부터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보았다. 종자와 이성에 의하여 아낙사고라스는 우주의 생성과 그 생성된 우주 가운데 성질의 다양성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하였다. 고대 지중해 연안을 이해하는 자료를 우리에게 준 플루타르크는 아낙사고라스가 "우주의 작용이 신의 심리에 의존하는 운이나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이성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두드러지게 주장한 철학자라고 했다. 철학사가들은 그를 유물론자, 무신론자 등으로 기록한다. 성질의 다양성을 설명함으로 우주 내부의 다양한 성질을 가진 다양한 존재들에 의하여 설명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또한 이들 원소가 어떻게 생성의 관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이성'을 통하여 설명해 본다. 합리적으로 말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아낙사고라스의 제자인 아르켈라로스의 벗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크라테스를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즉 그도 아낙사고라스의 영향을 어떤 식으로든 받았다고 보았다. 실재로 아낙사고라스와 소크라테스는 모두 재판을 받고 유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또 하나 다른 인물은 소크라테스와 동시대 인물인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기원전 400-370)이다. 그는 아톰(atom), 즉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것, 요즘 말로 '원자'를 이야기한다.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며, 그 자체로 빈 공간 없이 가득 찬 것이다. 그리고 소멸되지도 않으며 생성되지도 않도다. 즉 불멸한 존재다. 이들 원소들에 의하여 불, 물, 공기, 흙이 생성되며, 이로부터 모든 것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또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영향 속에서 영원하고 불멸한 것이 우주의 궁극 존재라고 보았지만, 그와 달리 변화와 운동을 긍정한다. 허공에 가득한 원자들, 즉 태초에 허공에 가득한 원자들이 있었고, 그 원자들의 결합에 의하여 우주의 모든 것이 생성되고, 이들 원자의 분리에 의하여 소멸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이후 에피쿠로스(Epicuros 기원전 341-270)의 철학에 영향을 준다. 그는 감각 세계는 허공 가운데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원자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데모크리토스도 에피쿠로스도 모두 유물론자이다.


많은 이들은 소크라테스나 소피스트 이전 철학자들은 자연에 관심이 있었고, 이후에 드디어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다. 솔찍하게 나는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자연에 대하여 그저 저기 있는 자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것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대하여 나름 합리적인 시야를 가지려고 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에겐 자연의 외부에 인간이 있지 않다. 자연의 외부로 인간을 몰라낸 것은 근대 이후다. 고대인들은 자연의 외부에 인간을 두지 않았다. 그들이 자연 철학자라는 말은 인간을 비롯한 우주 전체에 대한 합리적 사고를 시작했다는 말이다. 과연 이 우주에 참으로 있는 것, 즉 진짜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단 말이다. 진짜 있는 것, 진짜 있는 우주의 원리, 눈에 보이는 것은 변화해도 그것은 변화하지 않는 어떤 원리, 탈레스는 물이라고 하고,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라고 한 그 원리, 그것을 왜 궁리하였겠는가?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다. 참으로 있는 것을 안다면, 참으로 있는 그 우주의 원리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그가 생각한 삶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주고,이것은 그의 영향을 받은 에피쿠로스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리고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가 소피스트들에 영향을 주며 이어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자연에 대한 고민은 인간에 대한 고민을 포함한다. 아낙사고라스도 인간의 합리적 우주관을 주장하며 사형을 선고 받았고, 크세노파네스 역시 신으로 설명하는 우주가 아닌 인간 이성으로 파악하는 우주 즉 학문으로의 우주에 대한 인간 사고를 주장한다. 우주의 다양한 현상은 신의 변덕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그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이들의 이해, 모든 것은 신이 만들었고,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면 그만이며, 병이란 것도 신의 저주라는 식의 사고에서 서서히 이들은 이성적 존재로의 인간이 가지는 위상을 확인하고, 신이란 이름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시야로 우주를 보려고 한다. 즉 인간 이성이 신이란 이름이 아닌 스스로의 독립된 위상에서 우주를 보려고 한다. 이렇게 이성의 독립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왜 스스로의 시야로 우주를 보려고 하는지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의 관점으로 우주를 보고, 참으로 있는 우주의 참 모습을 존재론적으로 파악한 후, 그 우주의 구조에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초월적인 '이데아'라면 그거기에 충실하면 그만이고, '원자'라면 역시 그것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