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킨디(Abu Yusuf Yaqub ibn Ishaq al-Kindi, 803-873)
<이 글은 토마스 철학 학교의 장기적인 프로젝트인 중세 무슬림 철학자 연구와 그 연구의 나눔의 한 부분이다. 앞으로 더욱 더 많은 보완이 이루어질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 글은 1차분이며 차후 수정되면 꾸준히 수정된 것을 올릴 것이다. >
알 킨디
유 대칠 (토마스 철학 학교 & 인문학 대안 공간 틀 밖)
알 킨디(Abu Yusuf Yaqub ibn Ishaq al-Kindi, 803-873)는 아랍족의 첫 번째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다른 많은 무슬림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백과사전적 지식인이었다. 그가 다룬 다양한 주제들은 산수, 기하학, 천문학, 의학, 약학, 정치학... 등에 이른다. 그는 소크라테스(Socretes)와 플라톤(Platon)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그의 주해자인 아프디시아스의 알렉산더(Alexander Aphrodisias)의 철학을 익혔고, 연구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과정 가운데 그는 고유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학에서 그는 신-플라톤주의노선과 신-피타고라스노선을 향한 이론에 익숙했다.
그는 당시 많은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우주를 위계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위계적으로 더 높은 것이 더 낮은 것의 원인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인과적 관계로 우주를 이해하고자 했다. 이러한 위계화된 인과성에 근거한 우주의 이해는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유출론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기원을 거기에 둔다. 더 낮은 원인은 더 낮은 우주의 결과이며, 모든 더 높은 위계의 존재들이 더 낮은 것에 영향을 준다는 발상, 그리고 더 낮은 것이 더 높은 것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발상, 이와 같이 우주를 인과적 관계로 연결된 전체이며 위계적인 유기체로 이해한 것, 이 모두가 그가 가진 신플라톤주의적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이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 미래 사건을 예언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즉 천문학에서 혜성의 위치와 같은 것이 우리 세계의 것과 가지는 인과적 관계를 통하여 예언을 이론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은 모든 우리 가운데 개별적인 것으로 부터 우주 전체의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모든 대상들이 우주의 거울이란 발상으로 이어지게 했다. 차이라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작은 소우주(microcosm)이며, 다른 거대한 이 우주의 체계는 대우주라는 것이다(macrocosm).
알 킨디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이는 고대와 중세의 많은 철학자들이 공유하는 점이다. 알 킨디는 물리적 우주를 설명하기 위하여 5 가지 본질(essences)을 이야기한다. 이는 그의 『다섯 본질에 관하여』에 자세히 기술되어있다. 이 5 본질에 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과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지식에 근거한다. 그 개요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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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료. 질료는 다른 4 가지 본질을 수용하는 것이다. 만일 질료가 사라지면 남은 다른 본 질들도 제거되고 만다. 질료 없이 다른 본질들인 어디에도 수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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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 형상은 두 종류이다. 첫째는 질료로 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사물에 대해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성질, 양, 장소, 시간과 같이 아리스토텔레스 범주의 형식으로 사물을 서술함에 등장한다. 두번째는 그것에 의하여 형상을 가지지 않은 질료로 부터 하나의 사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 없이 질료는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며, 질료는 오직 이 형상을 취함으로 하나의 사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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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운동은 6 종류이다. 2 가지는 실체(substance) 가운데 있는 것으며, 생성과 소멸(generation and corruption)로 이야기된다. 그리고 2 가지는 양(quantity) 가운데 있는 것으로 감소와 증가(increase and decrease)로 이야기된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성질(quality) 가운데 있는 변질이며, 다른 것은 장소(place) 가운데 있는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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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시간은 운동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정의에 의하면 시간은 기본적으로 운동의 헤아림이기 때문이다. 운동은 다양한 순간의 변화 순간을 수반하며, 그 순간은 전과 후로 나누어 헤아리는 것이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은 연속되 수로 표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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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간은 몸체일 수 있는 어떤 것이 놓여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또한 공간은 몸체를 감싸는 표면(surface)이기도 하다. 그러나 몸체가 떠난다고 해서 공간이 존재하기를 멈추는 것은 아니다. 빈 공간은 곧장 다른 몸체, 즉, 공기, 물과 같은 것에 의하여 채워지기 때문이다.
『다섯 본질에 관하여』 가운데 등장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라 해도, 그는 기본적으로 신플라톤주의와 무관할 수 없는 철학자이다. 비록 그가 분명한 아리스토텔레스노선을 따르는 철학자라고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신플라톤주의노선에 의해 마련된 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라고 믿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이란 저작은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플라톤주의의 수장격인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의 일부를 풀이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알 킨디의 철학엔 신플라톤주의가 녹아있다. 그리고 그 용해의 부분은 매우 넓다.
그의 유출이론을 보자. 철학사를 익힌 인물이라면, 유출이론은 신플라톤주의노선과 나뉘어지지 않는 부분임을 알것이다. 알 킨디 역시 이에 대한 자기 고민을 통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세계와 신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유출이론을 가져온다. 신은 세계를 의지 행위(act of volition)를 통하여 창조하지 않았다. 왜인가? 만일 그렇다면, 신의 의식과 의지를 함축하게 된다. 이 양자는 절대성를 고려한다면, 일종의 제한(limitation)이다. 앎이란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대상이란 것은 인식 주체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인식 주체에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신은 절대적 존재이며, 무한한 존재이다. 그런 신의 존재 외부에 어떤 존재가 설 자리는 없다. 의지란 것은 어떤 바람(desire)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신이 부족한 상황일 때 외부의 어떤 대상을 바람을 의미한다. 이 역시 신의 절대성과 무한한 존재라는 정의에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창조를 우리 인간이 책상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대안이 요구된다. 그 대안으로 그는 유출이론을 수용한다.
그에게 우주는 신으로 부터 유출된 것이다. 무한한 존재의 이러한 유출은 태양으로 부터 빛의 유출과 같이 혹은 삼각형으로 부터 삼각형의 속성이 유출되듯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신으로 부터 이 세계가 직접적으로 유출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중개적인 영적 작용자, 즉 신학적으로 천사와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중개적 영적 작용자들은 다양한 위계를 가진다. 낮은 위계의 것은 더 높은 것으로 부터 유출되며, 더 낮은 것을 유출시킨다. 영적 작용자의 마지막 단계와 물질 세계의 사이에 세계-영혼이 마지막 연결고리로 등장한다.
인간 영혼은 세계 영혼으로 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가정된다. 현실적으로 인간 영혼은 신체와 묶여진다. 하지만 영적 본질에서 인간 영혼은 신체와 분리되며, 세계 영혼의 초감각적 영역에 속한다. 알 킨디는 이러한 맥락으로 어렵지 않게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설명할 수 있었다. 육체로 부터 분리된 그리고 세계 영혼으로 돌아간 영혼은 불멸하며 단순하고 혼합되지 않은 실체가 된다고 그는 믿었다.
인간 영혼의 구원은 다소 플라톤적 노선을 따른다. 그는 플라톤과 같이 일종의 상기설을 수용했다. 인간은 초감각적 실재 가운데 그것의 본래적인 존재를 상기하고 기억한다고 믿었다. 본질적으로 인간 영혼은 신체와 분리된 것이라 믿었기에, 그는 인간이 이 감각계에서 편안하게 제집과 같이 감각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에 의존하는 육체적 욕구도 인간의 온전한 행복을 구현한다고 보지 않았다. 온전한 인간 영혼은 변화 도상에 있는 이 세계의 감각적인 것으로 온전한 행복을 구현하지 못하며, 영원하고 불변한 것을 열망함으로 온전한 행복을 구현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원하고 불면한 것은 감각이 아니라, 이성과 영적인 것으로 얻어진다고 보았다. 인간 영혼의 참된 행복과 구원은 그렇기에 이성과 영적인 삶에서 얻어지며, 이는 다르게 말해서 철학과 종교 그리고 도덕적 활동과 학문적 연구에서 얻어진다고 보았다.
알 킨디의 인간 지성에 관한 논의는 그의 『지성론』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저작은 아프로디시아스의 알렉산더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 주해』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알 킨디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지식은 신체(감각) 혹은 영적인 것(지성)이 요구된다. 감각은 개별바 혹은 질료적인 것을 파악하며, 지성은 보편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인식한다. 왜냐하면 감각은 오직 육체적인 것에 의존하며, 지성은 영적인 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인간을 인간으로 특징지우는 지성은 다시 네 가지로 분류된다. 1. 능동지성('aq; zahir, active intellect), 2. 가능지성('aql hayyulani, potential intellect), 3. 습득지성('aql mustafad, acquired intellect), 4. 행위 가운데 지성('aql zahir, intellect in action).
위의 4 가지를 하나 하나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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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지성. 능동지성은 우주의 보편적 지성이다. 이는 플로티노스가 이야기하는 누스(nous), 필론의 로고스(logos) 그리고 플라톤의 보편자 세계(the world of the universals)와 같다. 또 이는 사고의 근본적 법칙, 수학 공리, 영원한 진리, 영적인 진실성의 원천이다. 신비가의 조명과 예언가의 계시 그리고 시인의 영감과 학자와 철학자의 이론도 바로 이로 부터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능동지성의 이러한 원리는 철학자의 순수 이성과 예언가의 계시 그리고 성인의 직관을 설명하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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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지성. 수동지성은 능동지성의 영역 가운데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를 수용하는 수용능력과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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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지성. 영원한 진리의 습득은 수동지성을 습득지성으로 전환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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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가운데 지성. 시인의 경험을 보면 시인의 그 경험은 수동지성과 관련된 영감의 형태로 능동지성으로 부터 그에게 오며, 그 영감을 습득지성으로 전환시킨다. 시인은 언어로 영감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습득지성을 현실화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임무이다.
알 킨디의 지성 이론은 이후 많은 무슬림 철학자들에게 전해지며, 풍부하고 다양하게 발전되어가며, 유럽의 중세 철학으로도 이어져 다루어져 간다.